brunch

매거진 Abgrund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Monochrome blues Jun 19. 2019

이번엔 '진짜'라고요.

그렇게 한 번 살아보겠습니다.

   퇴고의 과정을 거치지 않은 채 이야기하는 ‘나의 삶’은 두서없고 무의미하다. 이야기의 반절 이상은 ‘연기자의 일상’이라서. 본인의 평범함을 납득하고, 그동안 꽤 많은 일을 '연기’해왔다고 인정하는 데만 삼십 년이 걸렸다. 남들과 다르고 싶었으나 딱히 내세울 구석이 없어서. 흉내 내는 쪽을 택했다. 연기가 계속되자 나름의 플롯도 생겨버렸으며, 종국에는 어디까지가 연기이고 현실인지 혼란스러웠던 적도 있었다. 늘 그렇듯 거짓은 더 큰 거짓으로밖에 덮을 수 없으니. 


   어떤 계기에서든 두터운 알을 깨고 나온 것까지는 좋았다. 무언가를 연기하기 위해서는, 그만큼 소비되는 에너지를 채우기 위해 자존감마저 갉아먹어야 했으니. 하지만 알을 깨고 나온 병아리에게 닥친 딜레마는 진짜 ‘나’와 꾸며진 ‘나’ 사이의 경계를 종잡을 수 없다는 점에서부터 발생했다. 무언가를 원할 때면 정말 본인의 의지에서 비롯된 욕구가 맞는지 가늠하기 어려웠다. 남들 눈에 그렇게 보이기를 바라는 것일 수도 있으니까. 실제로도 그랬었고. 사실 꾸민 모습까지 본인이라 품고 간다면 더없이 깔끔해질 일이다. 하지만 그 면면이 ‘남에게 보이고 싶은 나’였음을 알아버린 이상에야 구렁이 담 넘어가듯 얼버무리고 지나갈 수는 없다. 인정하고, 의식하며 살아야만 한다. 아직은 나와 꾸며진 나를 결벽적으로 구분하는 이유에 솔직해질 수 없지만. 나만은 그 이유를 알기에 그래야만 한다.


   거짓으로 진짜를 가려온 삶 속에서 목표나 목적같이 진지한 이야기는 부담스럽다. 여태껏 외면하는 법에만 익숙하여 직시하는 일은 어렵다. 진짜를 피하고 도외시해왔던 사람에게 진실만큼 몸에 맞지 않는 옷은 없어서. 새빨간 거짓말에 속아 수많은 군중 앞에 벌거벗은 채로 등장해버린 임금님이었으므로. 그럼에도 나의 것이라 믿고 싶은 삶이 있다면, 오랫동안 내 입을 통해 나왔던 단어들이라 믿는다. ‘기획’, ‘글’, ‘사진’, 그리고 ‘커피’. 최소한 나와 어울리는 옷들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해왔던 단어들이다. 


   기획자. 기획자의 꿈을 갖는 데는 찰나의 시간으로 충분하였지만, ‘기획’이란 단어가 박힌 명함을 가지기까진 꼬박 3년이 걸렸다. 물론 명함을 갖게 된 순간부터 진짜 시작이었지만. 사실 처음 품었던 목표는 ‘기획자’가 아니라 ‘스티브 잡스’ 같은 사람이었다. 막상 꿈에서 깨고 보니 내가 되고 싶은 사람은 사업가라던가 인사이트가 넘치는 천재쪽이 아니었기 때문에 지금은 최대한 오랫동안, 잘하는 기획자로써 남고 싶다. 잘해야 본전인 기획 업무의 특성상, 남들과는 다른 경쟁력을 갖기 위해 ‘데이터’를 품고 산다. ‘사용자’와 ‘경험’을 공부해온 사람 치고는 딱딱한 결론이지만. 창의력보단 분석력을 타고 났으며, 개발이나 ‘머신러닝’ 같은 분야에도 한 발씩 걸쳐놓은 상황이기 때문에. 실제 업무에서도 어떻게든 써먹어보려 남들보다 한 발자국 더 걸어본다. 공부하고 일하며 벼려가는 과정이 당장의 목표다.  


   사진과 글은 한 몸과 같다. 현상과 실제를 표현하는 수단으로써 우연히 골라잡은 도구였지만. 잘 쓰고, 찍으며, 담아내고 싶다. 두 번째 직업을 갖게 된다면 둘 중 하나, 혹은 둘 다 관련되었으면 한다. 어쭙잖게 잘한다는 소리보단. 단 한 장의 사진, 한 줄의 글이라도 본인을 대표할 수 있는 무언가를 손에 넣길 바란다. 일단 좀 더 제대로 익히는 일이 먼저고, 그다음 둘을 엮어보려 한다. 지금은 글을 써놓고 어울리는 사진을 고르거나, 사진에 대한 단상을 적어보는 정도지만. 여행 에세이와 같은 방식으로써, 작가의 이름을 내거는 일이 가장 가까운 목표다.  


   커피는 문득 정신을 차려보니 이미 내 옆에 와있었다. 생각 없이 마시다 보니 남들의 곱절을 소비한다. 이왕이면 맛있는 커피를 찾아다니려다 보니 배우는 지경까지 와버렸다. 카페 주인이나 바리스타가 어울린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면 기분이 좋다. 가능하다면 두 번째, 혹은 세 번째 직업이어도 좋겠지만. 꼭 그 길이 아니더라도 커피에 미친 채로 살고 싶다. 이미 당장 할 수 있는 일은 웬만큼 다 해보았기에. 커피에 질리지만 않으면 된다. 커피를 더 이상 받아줄 수 없는 몸이 되지 않도록 건강도 챙겨야겠고. 


   의미 없이 지나온 시간이 남들보다 길었으므로. 그들보다 더 진지하게 살아야만 한다. 치열하게 고민해야 한다. 일단은 갖고 싶은 단어들을 믿는 일에서부터 시작해보자. 나를 믿어보자. 지금까지는 흘러가는대로 살다보니 손에 잡히는 단어들이었다면, 이제는 아니기에. 진심이든 진심이 되었든, 지금은 '진짜'이기에. 내 이름 석자 앞뒤로 저 단어들을 붙였을 때 어색하거나 부끄럽지 않을 수 있게. 그렇게 한 발자국을 또 떼어본다.



해당 게시글은 공대생의 심야서재, 일과삶 작가님께서 운영하시는 '나를 찾아가는 글쓰기' 과정을 들으며 작성한 글입니다. 


https://brunch.co.kr/@worknlife/230


매거진의 이전글 지극히 사적인 단어로써의 행복.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