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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nochrome blues Oct 26. 2019

10월에, 신해철.

We are the children of the darkness

   완벽한 타인을 위해 울어본 경험이 몇 번이나 될까? 가족이나 연인, 친구 때문에 흘려본 적은 있지만 타인을 위한 기억은 드물다. 슬픔과 눈물 사이엔 큰 허들이 있으니까. 연예인의 죽음에 슬퍼해본 적은 많다. 다만 딱 두 번만 눈물까지 흘려보았다. 마왕 신해철과 데이빗 보위. 그들의 죽음 앞에선 메마른 감정의 골에도 강물이 넘실거렸다. 그들은 이 생애에 있어 단순한 뮤지션이 아니었다. 그들의 이름은 하나의 의미이자, 추억의 한 페이지였다.


   마왕과 데이빗 보위에는 공통점이 있다. 그들을 떠올릴 때면, ‘후회’란 감정선이 깊게 깔린다. 손에 꼽을 만큼 좋아하는 뮤지션들임에도 라이브 공연 한 번을 못 갔다. 아니, 안 갔다. 매번 이런저런 이유로 다음을 기약했다. 지금 보지 않더라도 언젠간 만날 수 있을 줄 알았다. 늘 기다려줄 거라 자만했다. 그러다 영영 만나지 못하게 되었지. 덕분에 미루는 습관은 거의 고칠 수 있었다. 일 년에 한두 번 가던 콘서트나 록 페스티벌은 등가교환 마냥 흥미를 잃었지만.


   신해철과 데이빗 보위 사이에는 차이점이 있다. 이름에서 오는 무게가 다르다. 데이빗 보위를 위해 울었던 적은 단 한 번뿐이다. 그의 죽음을 알게 된 순간, 딱 한번. 하지만 마왕은 횟수를 세길 포기했다. TV에 생전의 모습이나 목소리가 흘러나오면 눈물을 장전한다. 매년 10월 즈음이 되면 그가 생각나 마음이 여려진다. 누군가는 장국영을 그리워하며 만우절에 슬퍼할 수 있겠으나, 나에게 10월 한 달은 우울함이 자욱하게 깔리는 기간이다.


   마왕의 엄청난 골수팬은 아니었다. 그냥 가벼이 그의 노래를 즐겨 듣던 낙엽 같은 사람이었다. 다만, 마왕은 단순한 뮤지션 그 이상의 의미로써 다가온다. 그는 삶이란 벽 한편에 그어진 성장의 흔적이다. 키가 큰 느낌이 들 때마다 연필을 들고 엄마를 부른 뒤, 벽에 그어달라 해서 얻어낸 일기장이었다. ‘영혼기병 라젠카’란 만화의 주제가로 시작했다. 새벽녘 라디오에 흘러나오던 그를 들으며 학창 시절을 보냈다. 그의 생각과 말투, 행동을 따라 하던 그때였으며, CD플레이어와 mp3에도 노래가 가득했다. 사춘기 즈음부턴 키를 재어 달라 보채지 않게 되듯, 그를 찾는 시간도 뜸해지긴 했지만. 그와 이렇게 빨리 헤어질 줄 알았다면 한 번이라도 더 연필을 쥐어보았을 텐데.


   나에게 2014년은 내내 춥고 시린 해였다. 그때부터 이미 취업문은 좁았고, 인생의 방황은 절정을 찍었다. 뭐 그리 잘난 인생이라고 유난을 떨다 결국 부러져버린 해였다. 전공은 죽어도 살리기 싫어 다른 쪽을 기웃거렸다. 지금은 다르지만 그때만큼은 불시착해버린 종이비행기 신세였다. 다른 선택지가 없어 도망치듯 대학원에 입학했던 2014년 9월은 유난히 스산했다. 하루하루가 추웠다. 마왕이 죽던 10월 27일도 그랬다.


   학부 때와 다른 전공을 선택한 탓에 밤늦게까지 연구실에서 빠져나올 수 없었다. 며칠 전부터 위중하단 기사는 보았었지만 그냥 툭툭 털고 일어나리라 생각했다. 아니, 별 생각이 없었다. 그의 죽음은 무언가 비현실적이었으니까. 어릴 적 락스타의 죽음은 한 번도 맞이해본 적 없었으니까. 하지만 실시간 검색어에서 마왕을 보았을 때부터 불안해졌다. 차마 그의 이름을 클릭해보기 무서웠다. 몇 번씩 누르려다 손을 뗐다. 결국 마우스 버튼에 힘을 주어 현실과 마주했다. 그가 더 이상 이 곳에 없단 소식을 접했다. 같은 시간 속에서 흘러가던 그의 생애가 이번 정거장에서 내렸단다. 연구실 의자에 앉아 창문 밖으로 멀어져 가는 그의 뒷모습을 하염없이 쳐다보았다. 다른 이들이 먼저 퇴근해준 덕분에 모니터를 바라보며 대성통곡하는 모습은 혼자만의 비밀이다.


   ‘불후의 명곡’이란 음악 경연 프로에서 추모 특집을 하였을 땐, 보는 내내 흐르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다. ‘복면가왕’이란 음악 방송에서 ‘민물장어의 꿈’과 ‘Lazenca save us’, ‘일상으로의 초대’란 노래가 나왔을 땐 기습적으로 울어버렸다. 1988년 즈음을 배경으로 했던 ‘응답하라 1988’이란 드라마가 방영했을 때도 불안 불안했지. 대학가요제 방영 장면에서 마왕 지망생이던 앳된 모습이 등장했을 땐 여자 친구 앞에서 질질 짰다. 올해는 유재석 님이 출연하시는 예능에 깜빡이도 켜지 않고 마왕의 목소리와 사진이 나왔다. 그 바람에 또 울었다. 그렇게 눈물이 많은 사람도 아니면서.


   사실 그의 노래보단 목소리 자체가 최고의 최루탄이다. 날이 좀 서늘해지는 10월의 어느 날, 우연히 그의 목소리와 마주한다면 끝난 거다. 무수한 추억과 감정이 파도처럼 밀려든다. ‘we are the children of the darkness’라는 내레이션으로 시작하던 라디오 방송, 저음으로 늦은 새벽을 깨우던 목소리. 다음날 아침까지도 어스름하게 남은 그의 흔적들. 적어도 삼사 년을 매일같이 그렇게 살았다. 그런 목소리기에 가슴이 흔들릴 수밖에 없는 거다.


   약속 한 가지를 하겠다. 나는 2019년 10월 27일에 울 거다. 지난 주말 방영한 유재석 님의 예능을 보며 찔끔거렸으니, 본 방송이 예정된 26일 저녁에도 한 번 울 거다. 다음날엔 눈물바다가 되겠지. 한 가지 예약도 해두겠다. 내년에도 별 다른 일이 없다면 울 거다. 언제쯤이면 그를 위해 흐르는 감정의 색깔이 옅어질는지는 알 수 없다. 굳이 먼저 나서 거둘 맘은 없으니까. 그는 완벽한 타인이지만, 동네에서 친한 형 같은 존재였다. 마왕의 목소리를 통해 열정과 의지, 희망과 분노를 배웠다. 행복하면 웃으면 되고, 슬플 땐 울면 된다고 했다. 아플 땐 아파해도 되고, 분노의 대상 앞에서는 솔직해져도 된단 사실도 몸소 가르쳐 주었다. 그렇기에 이맘때면 그가 그립다.


   매년 10월이면 그의 목소리가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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