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그리워지는 나이가 되어버렸습니다.
카메라를 고쳤다. 손자가 태어나기 전부터 할아버지께서 쓰셨던 카메라다. 벽에 걸린 곳곳의 풍경마다 당신께서 목에 걸고 계시던 물건이다. 당신과 단둘이 떠났던 여행길마다 우리와 함께 했었지. 어린 손주를 찍을 때도 쓰였으며, 네댓 살에 불과한 손에 쥐어져 영종도 혹은 용유도 즈음의 폐목선을 찍을 때도 그대였다. 당신의 손때 묻은 친구이자, 손자의 시간 속에도 스며든 카메라다. 당신께서 돌아가신 지 일 년 즈음, 손주가 물려받았다. 원래부터 필름 사진을 찍고 있던 사실은 친척들 모두 알고 있었지만, 먼저 나서서 실례되지 않는다면 갖고 싶다 말했다. 감사하게도 모두가 허락해주셔 이어받게 되었지. 당신 손을 붙잡고 다닐 때만 해도 카메라를 전혀 모를 때라, 그대의 브랜드나 기종은 전혀 생각나지 않았다. 그 덕에 장롱에서 꺼낸 카메라 가방이 니콘인데 내용물을 캐논이라 한 번 당황했고, 기억보다 작은 크기에 두 번 당황했다. 어릴 땐 참 크다고 생각했었는데 어른이 된 손주 손에는 딱 맞았다. 걱정과 다르게 딱 들고 다닐만한 정도의 크기였다.
캐논 ‘ae-1’. 한 때는 당신의 분신이었으나, 이제는 손주의 카메라. 단단하고 무던한 필름 카메라. 조막만 하던 손을 잡아주던, 그 거칠지만 따뜻했던 손길이 먼저 닿았던 카메라. 오랜 세월 당신의 체온을 물려받았지만, 또 그 세월만큼 장롱에서 잠을 청했던 추억이다. 다 삭은 필름이더라도 타임캡슐처럼 카메라 속에 감겨 있었으면 했지만, 그렇지 않아 아쉬웠다. 셔터를 몇 번 감아보고 파인더와 렌즈를 확인했다. 헐거운 셔터와 세월에 쌓인 눈처럼 뿌연 시선. 이래저래 수리점에 한 번 갔다 와야겠다. 어차피 쓸만하더라도 점검은 한 번 받으려던 차였다.
필름 카메라 수리로 유명한 곳에 들렀다. 저마다 다른 시간을 쌓아온 카메라 더미가 조개 무덤처럼 쌓여 있었다. 이 곳에 카메라를 맡기려니, 죽음 속에서 생명이 피어나겠단 생각이 들었다. 주인께선 눈가에 서린 주름이 무색하리만큼 단번에 오래 묵은 물건임을 알아보셨다. 고쳐야 할 곳들을 말해주셨으며, 고칠 수 없는 부분들은 미리 선을 그으셨다. 특히 카메라 외장 플래시는 건전지가 들어있는 채로 보관된 터라 부식이 심해 살릴 수 없단다. 유품처럼 받아 의미 있는 물건이라 고칠 수 있는 한 고쳐주십사 부탁드리고 나왔다. 상태 좋은 동일 기종을 살 수 있을 만큼의 견적이 나왔지만, 상관없었다. 일주일 뒤, 수리점에서 연락이 왔다. 한결 선명해진 시야와 깨끗해진 렌즈. 플래시는 최대한 깨끗이 닦고 고쳐보았지만 이미 너무 멀리 가버렸단다. 가는 길에 버리라는 말에 알겠다고는 했지만 버리지 않을 작정이다. 세월을 털어낸 카메라를 목에 걸고 챙겨간 필름을 걸었다. 첫 셔터를 당기고 파인더에 눈을 가져다 대니 아연한 풍경이 펼쳐졌다.
당신과 나의 시간이 기어코 이어져 버렸다. 그 사이에 낀 어린 손주의 시선은 햇볕에 닿아 시리다. 당신 손에 들려 세계 곳곳을 누비었을 카메라의 무게는 이제 손주 손에 들릴 만큼 가벼워졌다. 조리개를 맞추는 방법도 몰라 그저 파인더에 보인 순간을 담았던 어린아이는 갔다. 대신 필름 카메라에 익숙해진 사내가 왔다. 할아버지와 어린 손자는 익숙하다는 듯 손을 다시 마주 잡았다. 이번 첫 롤이 끝나기 전, 손주 손을 꼭 쥔 당신을 마주치길 바랬지만 만나지 못했다. 이 손에 당신의 물건이 담길 줄 몰랐을 당신과 그저 당신이 좋았던 어린아이에게는 추억만 남았다. 파인더가 그새 뿌옇다. 당신이 보고 싶다.
당신이 돌아가신 뒤 처음으로 맞이했던 추석, 묵은 짐을 정리하다 어린 손에 찍힌 폐목선을 보았다. 반가운 마음보다는 가라앉은 시선에 아무 말없이 다른 사진들과 함께 상자 속에 넣었다. 일이 년 뒤, 가족들이 모인 자리에서 스치듯 폐목선 이야기를 꺼냈다. 온 가족이 동원되어 사진을 찾았는데 결국 찾지 못했다. 분명히 버리지 않고 챙겼는데 말이다. 어디선가 깊숙이 틀어박힌 채 나오고 싶어 하지 않은가 보다. 결국 폐목선을 찾는 일은 그때 포기했지만 당신의 카메라는 여전히 이 손에 남았다. 당신의 카메라는 이제 온전히 나의 것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