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과 이별 후 매일 밤 눈물로 지새웁니다.
어느 티브이 광고에서 그러더군요. 처음으로 당신께서 우리 곁을 떠났다고 말입니다. 본인이 카피라이터였다면 말이죠, 최소 일 년은 뿌듯해할 만한 문구라고 생각해요. 그 문장을 듣는데 가슴이 아렸거든요. 인정하기 싫지만 공감할 수밖에 없었어요. 당신께선 정말로 제 곁을 떠나셨으니깐요.
하다못해 제가 무슨 잘못이라도 저지르는 쪽이 이보다 나았을 겁니다. 당신의 소중함을 알지 못하여 소홀히 했다던가 다정하게 굴지 않아 떠나신 거라면. 이토록 아프진 않았을 테니깐요. 제 무지와 변해버린 마음을 원망하고 후회하면서. 크게 앓다 털어냈겠죠. 같은 실수는 반복하지 말자 다짐하며 말입니다. 근데 요즘 모양새는 딱 로미오와 줄리엣입니다. 이쪽에도 당신에게도 죄가 없는데 헤어질 수밖에 없으니깐요. 당신하고 만큼은 이런 싸구려 신파극을 찍고 싶지 않았는데.
‘사랑하니깐 널 놓아주겠어’라던가 ‘이렇게 하면 널 가질 수 있을 거라 생각했어.’와 같은 20세기 감성은 졸업하고 싶었는데 말이죠.
‘차 살 돈으로 당신과 한 번 더 만날래!’라던 호언장담은 언제나 진심이었습니다. 허세가 아녔어요. 언제까지고 그럴 작정이었습니다. 뱉은 말도 지켰습니다. 바로 얼마 전까지만 해도 뚜벅이였으니깐요. 당신과 만날 수 있다면 그깟 차가 대수겠습니까? 당신과 만나며 얻게 되는 몸과 마음의 위안이 훨씬 더 크니깐요. 그런 절 이상하게 쳐다보는 시선들도 종종 있긴 했지만 전 상관없었어요. 저마다 추구하는 가치는 다르니깐요. 그들의 물음표보다 이쪽의 느낌표가 뚜렷했던 탓이지요.
제가 유난스레 당신을 사랑했기 때문입니다. 누군가를 좋아하는 일 자체에 맞고 틀리고는 없지 않겠어요? 그들 눈엔 그럴 수 있는 거고. 제 입장에선 또 이럴 수 있었던 거죠.
당신을 처음 소개해준 건 할아버지였습니다. 부모님 손을 붙잡고 당신과 만났던 적도 참 많았는데. 이상스레 당신을 떠올리면 할아버지부터 생각납니다. 그립단 공통점이 있어서 그런 걸까요. 지금 제가 당신을 좋아하는 방식을 할아버지께 물려받아 그럴지도 모릅니다.
당신을 바라보는 시선이라던가 함께하는 시간, 그 시간을 대하는 방식, 같이하는 여행과 혼자 하는 여행 등등. 부모님이라던가 친구들과 하는 쪽 보단 할아버지께 배웠다고 보는 쪽이 맞으니깐요. 당신을 사랑하는 방식에 정답은 없음을, 있는 그대로의 시간과 현상을 오롯이 받아들이면 됨을. 이러한 감각을 유산으로 물려받았습니다.
어쩌면 할아버지께선 그냥 손주와 함께 하는 시간이 좋으셔서 그러셨을 수도 있겠습니다. 손주와 함께하기 위한 수단으로써 당신을 이용했던 게죠. 하지만 전 그렇게 생각합니다. 사랑이 시작되는 도화선은 저마다 다르며, 꼭 그 대상에 직접적으로 향해있을 필요는 없다고 말입니다. 처음 시작이 무어 중요하겠어요? 지금 내가 바라보는 시선에 확신 있고, 분명하다면 그걸로 된 거겠죠. 결국 결론은 또다시 하나로 귀결됩니다. 어쨌든 잘 모르겠고, 다 필요 없고. 전 당신을 미치도록 사랑한단 말입니다.
그거 아시죠? 무엇을 좋아하는 데 있어 특별한 이유가 없는 쪽이 진짜 무섭단 사실 말입니다. 사람이 사람을 좋아하는 데 있어 유별나거나 손에 꼽을 수 있는 이유가 있다면. 그 지점이 변해가거나 콩깍지가 벗겨지면 그 민낯에 실망할 수도 있지 않겠어요? 근데 그냥 ‘그 자체’가 좋은 거라면 출구가 어딨겠어요. 그리스 신화 속에 등장하는 미로처럼. 그 안에서 헤매다 당신의 매력에 평생 빠져 죽을 테죠.
당신은 제게 그런 존재입니다. 왜 좋아하냐 묻거든 그냥이라 답합니다. 좋아할 수밖에 없습니다. 아니, 당신을 좋아할 수밖에 없이 태어난 인간입니다. 새로움을 좋아하고, 맛있는 걸 좋아하며 경험하는 일이 좋습니다. 안락함도, 휴식도, 탐험이나 모험도 전부 좋아합니다. 기분 좋은 호텔 침구에서 빈둥거리는 일도. 수영장 썬배드에서 느긋하게 보내는 일상도, 시장 골목에서 사람 냄새를 맡고 카메라로 순간을 담아내며 대자연에 빠져드는 일 모두 말입니다. 당신을 계획하는 첫 번째 순서로, 그 동네에 유명한 카페부터 검색하는 손놀림에서부터 전 이미 사랑에 빠진 사내입니다. 당신을 사랑하고 영유하기 위해 태어난 인간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렇기에 당신과의 만남이 제약받는 지금은 너무나 가혹합니다. 마주할 날만 손에 꼽으며 일상을 버티어내고, 하루하루 살아갈 원동력을 얻는 제게 지금은 빠져나올 수 없는 아수라장이죠. 언제 만날 수 있단 어렴풋한 기약만 있더라도 이렇게 아파하진 않을 텐데. 시름시름 앓으며 시들어가는 중입니다.
요즘 같은 때에 당신을 그리워하는 일은 배부른 투정이며, 사는 게 덜 힘들다는 반증일 수도 있겠어요. 그래도 그리운 건 그리운 것이지 않겠어요? 저마다 삶에서 소중히 여기는 우선순위는 다르지 않겠습니까. 각자의 사정이라고 해두었으면 좋겠네요.
만나려면 만날 수도 있겠죠. 마스크로 꽁꽁 싸매고 인적 드물고 사람 냄새나지 않는 곳에 짧은 시간이라면 가능할 법도 하니깐요. 하지만 우리가 무슨 금지된 사랑도 아니고. 이건 아니지 싶습니다. 마음 한 구석 불안함을 품고 당신과 만나기엔 불편합니다. 기분 좋고 행복하려고 당신과 함께 하려는 건데 이건 아닐 말이죠.
그래서 당신이 그리울 따름입니다. 미치도록 보고 싶습니다. 붙잡았던 두 손의 감각이 희미해지고 추억을 파먹는 주기가 점점 짧아지는 요새라서. 더욱 사무칩니다. 우린 언제나 만나 뵐 수 있을는지요. 이 기약 없는 족쇄가 마음을 좀먹습니다. 그래도 어찌하겠습니까. 견디어보는 수밖에요. 아마 코로나가 종식되더라도 당신을 예전처럼 마주하기는, 기탄없이 만나 뵙기 까진 더 많은 시간이 걸릴 겁니다. 그 사이 우린 꽤 서먹한 사이가 될는지도 모릅니다.
그래도 당신이 그립습니다. 얼른 다시 당신 앞에 당당히 설 수 있는 그때가 왔으면 좋겠습니다. 이렇게 돌이켜보니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그대를 미치도록 사랑한단 사실을 깨닫게 되는 요새이니깐요.
언제 다시 만나 뵐 수 있을는지 모르는 때이오니. 건강 조심하시길. 저도 몸 건강히 견디고 있을 테니깐요. 마지막으로 말할게요. 보고 싶습니다. 그러니깐 조금만 더 안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