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들을 위한 낱말카드.
코로나 일상. 우린 그 어느 때보다 유감스러운 하루를 보냅니다.
지금 시대를 살고 있는 당신의 이름은 무엇입니까? 자기소개서부터 소개팅, 요람에서 무덤까지. 우리는 이름 석자 밝히는데서부터 모든 걸 시작합니다. 세상 만물에는 저마다의 이름과 수식어를 갖고 있어서죠. 정의 내리고 인식하길 좋아하는 인간 특성 때문입니다. 어렵게 썼지만 어렵지 않습니다. ‘백수의 제왕, 사자’라던가 ‘나만 없어, 고양이’ 같은 겁니다. 나와 너를 정의하는 단어에 감상평을 덧붙이는 겁니다. 눈에 보이든 보이지 않든 명명하고 뜻을 부여합니다.
‘의미’는 받아들이는 사람에 따라 변화합니다. 똑같은 물건이라도 가치의 크기 역시 제각각이죠. 개인에 따라 많이 부르거나 소외되는 단어들도 생기기 마련입니다. 누군가에겐 핸드폰이 그저 귀찮은 도구일 수 있지만, 또 다른 누구에겐 타인과 소통하는 창구라던가 이 세상 전부일 수도 있습니다. 동요 가사에서처럼 잘 먹는 꿀돼지와 복스러운 두꺼비, 용감하고 슬기로운 왕자님 모두 ‘개구쟁이 내 동생’을 가리키는 말이 되지요.
재밌는 사실은 이 의미와 가치라는 녀석이 영원불변하지 않다는 데에 있습니다. 상황과 시대에 따라 시시각각 변합니다. 예전에는 너 나 할 것 없이 MP3를 들고 기다란 이어폰 줄을 늘어트린 채 다녔습니다. 밖에서 음악 감상을 위한 선택지는 CD플레이어 혹은 MP3 였습니다. 근데 요샌 어떤가요? MP3 신제품 마지막 출시가 언제였었는지 기억도 안 나요. 요샌 스마트폰에 무선 이어폰이면 모든 게 간단히 해결됩니다. 핸드폰 따로 MP3 따로. 주머니 속엔 잔뜩 엉킨 이어폰. 몇 년 사이에 추억이 되었습니다.
단어의 흥망성쇠는 한 방향으로만 흘러가지도 않습니다. LP에서 테이프, CD, MP3, 스마트폰. 음악을 듣는 방식은 새로운 탄생과 이전 세대의 멸종으로 이어졌습니다. 탄생하면 입에 오르내리고, 사그라들면 잊힙니다. 그런데 몇 년 전부터 뜬금없이 ‘LP’란 단어가 재조명받기 시작했습니다. ‘레트로’와 ‘힙’함이 만나 죽어가던 가치에 불을 지핀 거죠. LP세대에겐 향수에 불과한, 잊히는 단어이지만. 지금 세대에겐 최신 문화로 소비됩니다. 김춘수 시인의 ‘꽃’처럼.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엔 하나의 몸짓이었으나 그의 이름을 불러주니 나에게로 다가와 꽃이 됩니다.
지금 생각나는 단어들로 문장들을 만든다면. 여러분과 저의 해석은 얼마나 갈릴까요? 각자가 소비하는 대로, 비슷하지만 다른 문장이 나올 테죠. 금요일 저녁. 오롯이 나만의 시간이 설레네요. 월요일 출근. 이불 밖은 위험해요. 고양이는 저를 가지세요. 여자 친구는 보고 싶어요. 평양냉면은 세상 최고. 벚꽃은 아름답고 홍학 빛 석양은 치가 떨리도록 아름답습니다.
‘코로나’는 어떨까요? 단 세 글자 단어 이건만, 마음이 얼어붙습니다. 튼 살 사이로 피가 새어 나옵니다. 새살이 돋기도 전에 자꾸 덧나는 시간. 올해, 2020년. 수많은 일상과 일상적 단어들이 틀어졌습니다. 당연스레 소비하던 언어와 생활이 더 이상 당연스럽지 않게 되었습니다. 일상이 부재중이네요. 평소에 누리던 일들을 소비하지 않게 되면서부턴. 그 당시 단어들도 함께 바스러집니다.
살면서 제 일상을 이토록 바꿔놓은 낱말이 또 있었나 돌이켜 보았습니다. ‘입시 실패’, ‘이등병’, ‘구직난’, ‘비트코인’, ‘권고사직’ 정도네요. 그런데 이쪽과는 통증의 종류가 달라 보여요. 저 단어들도 아프기야 엄청 아팠죠. 그래도 일상을 살아내는 것과는 별개였습니다. 저에게 코로나는 일상의 오아시스를 메마르게 하는 거대한 스펀지거든요. 흔적도 없이 먹어치웠습니다.
코로나에 걸리지 않는 한, 당장 죽고 사는 문제와 직면하진 않아 보여요. 근데 집요하고 잔인한 구석이 있습니다. 사람을 제대로 말라 죽이죠. 단 세 음절로 사람 마음이 갑갑해지고 옥죄어 옵니다. 글로 묘사해가다 보니 아프다기 보단 아리네요. 순간, 아린 맛의 대명사가 생각났어요.
짝사랑. 심장을 알싸하게 맴도는 단어죠. 제대로 짝사랑에 빠져본 사람은 알 겁니다. 사람이 할 게 못되어요. 누군가의 이름이 입가에 맴도는 순간부터 지옥 같은 열병의 시작입니다. 끝도 없어요. 가슴만 콩콩 쳐대며 밤잠 이루지 못합니다. 온갖 망상과 집착에 시달리다 피폐해지죠. 그 사람 한 마디에 롤러코스터를 탑니다. 한없이 설레다가 죽자고 술퍼마시다가. 영화 속 비련의 주인공이 됩니다.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더랬죠.
하지만 이 역시 코로나와 다릅니다. 사람이 끝도 없이 말라죽는단 전제만 비슷했지 그 외엔 딴 판이니깐요. 짝사랑은 앓다 죽고 싶지만 코로나는 가능한 한 빨리 빠져나오고 싶습니다. 짝사랑은 행복했던 순간이라도 있지만, 코로나 쪽엔 결단코 생길 것 같아 보이지 않습니다. 일상의 단어들과 의미가 전부 망가져 버렸으니깐요. 당연하게 불러온 이름에 애절해해야 하고, 개의치 않던 일에 한없이 예민해집니다. 공허합니다.
주변에서도 비슷한 증상을 호소합니다. 이 시절에 이전보다 웃음꽃 핀 분이 계시려나요? 혹시라도 이 글을 읽고 계신 분 중 그런 분이 있으시다면 부럽고 다행인 일입니다. 요즘 같은 때 누구라도 살만 하시다면 그걸로 위안 삼을 수 있으니깐요. 사람 사는 일이 다 똑같고 거기서 거기란 이야기는 근데 요즘에선 호사스러운 말투입니다. 코로나로 인해 당연했던 일이 더 이상 당연해지지 않게 되어가고 있으니깐요.
코로나로 인해 하루하루가 변해갑니다. 달라진 게 없어 보이다가도. 모든 의미가 변해있을 때도 있습니다. 어쩔 수 없이 아무렇지 않게 또 살아가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고요.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 잘 까먹고 금방 익숙해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살기 편하다고 생각했는데 이번만큼은 그대로 흘러가게 두지 않으려 합니다. 그럴 작정입니다. 지금의 생애가 이대로 현실을 대변하게 두고 싶진 않거든요.
앞으로의 문장들을 통해 와신상담하며 곱씹을 겁니다. 바둑 기보 외우듯 지금과 과거의 의미를 기억할 겁니다. 그리고 언젠가 다시 돌아올 봄에. 정확히 예전으로 되돌릴 겁니다. 자리를 비웠던 일상이 돌아오는 그때. 지금 기록한 단어들이 과거로 회귀하기 위한 첫 번째 체크 포인트가 될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