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몬스테라 May 08. 2022

선택적 함구증

지난주 구속된 피고인을 접견했는데, 그는 나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수사기록을 보니 그는 경찰에게는 말을 했다. 조리 있는 말은 아니었지만 어쨌든 말을 했다.     


나는 처음에는 그에게 질문을 하다가 나중에는 내가 사건에 관해서 느끼거나 생각한 것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그는 나의 이런저런 이야기에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기록상 그는 오랫동안 노숙인으로 살아왔고, 사건 당일 자전거에 싣고 다니던 냄비를 들고  어느 식당에 들어가서 밥을 달라고 했다. 식당 주인은 줄 수 없다고 거절했고 그는 냄비를 휘두르며 화를 냈다.     


나는 CCTV 영상을 캡처한 사진을 그에게 보여주며, 냄비를 휘두르고 있는 모습인데 자신이 맞는지 확인해 보라고 했다.     


그는 고개를 가로젓고는 계속 침묵했다.  

   

내가 마음에 안 드나? 국선 변호인을 바꾸고 싶은 것일까? 그런 생각도 들어서 그에게 국선변호인을 변경하고 싶냐고 물었다.


그는 여전히 말을 하지 않았다.   

 

저는 앞으로 30분간 더 앉아 있을 거예요. 말하고 싶을 때 말하시면 됩니다.  
  

처음에는 그의 눈을 쳐다보고, 나중에는 기록을 보다가, 시계도 보고, 허리가 아파서 잠시 앉은자리에서 스트레칭도 했지만 끝내 그의 목소리는 듣지 못했다.     


침묵하고 있는 동안 피고인으로부터 무기력과는 다른 느낌을 받았다.

그가 오랜 노숙생활로 뇌에 어떤 문제를 겪고 있다는 느낌.  

   

30분이 넘자

내가 피고인을 고문하는 느낌이 들었다.  

   

오늘은 이만 갈게요.     


구치소를 나온 이후,

다시 가면 그가 말을 할까,

말을 하게 하려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이런저런 생각을 했다.     


그러다 문득 아들의 친구가 생각났다.

내 아들은 어려서부터 말하기를 좋아했다.

자신이 주도적으로 말하기를 좋아했고

끊임없이 수다를 떨었다.     


그런데 어느 날 ‘선택적 함구증’이 있는 도영이(가명)를 알게 되었다.

도영이는 누구에게도 말하고 싶어 하지 않는 아이였고

아들은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듣기보다는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하는 아이였다.


둘은 끝내주는 친구가 되었다.     


하굣길에 아들은 끊임없이 수다를 떨고

도영이는 말없이 들었다.

서로 원하는 것이 일치했다.


도영이는 말하지 않는 것을 문제 삼지 않는 것을 원했고

아들은 자신의 말을 끊지 않고 다 들어줄 사람이 너무나도 간절했던 것이다.     


도영이 엄마의 말에 의하면, 도영이는 어린 시절 갑자기 도영이 아빠가 외국 주재원으로 발령이 나서

영어권 국가에서 유치원을 다니게 되었는데, 그때 이후로 ‘선택적 함구증’이 생겼다고 했다.


가족 이외 그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학교에서는 ‘말하지 않는 아이’로 유명했다.    


어느 날 도영이 엄마가 ‘파자마 파티’를 해보자고 해서

도영이가 우리 집에 잠옷 차림으로 와서 자고 가기도 했다.    


도영이는 우리 집에서 단 한마디도 하지 않았지만

웃고, 찡그리고, 삐지고, 고개를 끄덕이면서 아들과 놀았다.   

  

아들과 도영이의 의사소통방식은 순수했다.

아들은 도영이가 말하지 않는 것에 대해서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도영이는 말하고 싶어 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아들이 길을 가다 도영이를 마주치면

“어디 갔다 와?”라고 물었다.

그러면 도영이가 뒤돌아서서 등에  가방을 보여주었다.

아들은 그 가방에 적힌 영어학원 로고를 보고는

“응~ 영어학원 갔다 와?”라고 했다.     


어느 날 내가 집에 있는데 도영이가 우리 집 벨을 눌렀다.

도영이는 말을 하지 않기 때문에 나는 바로 집 앞으로 나갔다.

“무슨 일이야 도영아?”라고 말하며 문자를 쓸 수 있는 상태로 휴대폰을 내밀었다.     


도영이가 내 귀를 잡아당기며

속삭이듯 말했다.

“아빠한테 전화해주세요.”


아무도 없는 공간이었다.


속삭이듯 나에게 말하는 도영이를 보면서

나는 놀라웠다. 아주 작은 목소리였지만 분명 나에게는 말을 했기 때문이다.     


나는 도영이에게 휴대폰을 내밀면서 "도영이가 이 다이얼을 눌러봐. 아빠 전화번호를 눌러서 도영이가 전화하면 돼."라고 말했다.


도영이는 자신이 말하지 않는 것을 익숙하게 여기는 우리 모자를 편안하게 느끼는 것 같았고,


나는 가족 외에 말하지 않는다는 아이로부터 선택받은 존재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도영이가 어느 날부터 보이지 않았다.

2년이 지났다.


나는 나름 친했다고 생각했는데 

도영이 엄마가  어디로 이사를 갔다면

나에게 알려주지 않았다는 것이 좀 아쉬웠고

서운한 마음도 들었다.     


그런데 며칠 전 연락이 왔다.


그리고 도영이가 전학을 간 학교에서는 말을 하기 시작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말이 많은 것은 아니지만

어쨌든 학교에서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대답도 하고

의사표현을 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나는 아무도 없는 아파트 복도에서도 내 귀를 잡아당기며

속삭이듯 말했던 도영이가 생각나

울컥한 마음이 들었다.


너도 말하고 싶었구나..  



재판 날 법정에서

 피고인이 말을 하지 않아서 공소사실을 정리할 수 없었다고 말하겠다고 마음먹었다가,

2년 만에 도영이 엄마의 연락을 받고

다시 접견 신청하기로 했다.

                                             

"너는 할 수 있어."라고 하는 것보다

"그렇게 하지 않아도 괜찮아."라 말이 필요할 때가 있다.


내가 그렇다..

작가의 이전글 어른 왕자와 장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