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최고의 볶음 양념장)
남자 피고인이 있었다.
정말 열심히 사는 사람이었다.
그가 사기죄로 재판을 받게 되었지만, 나는 억울하다는 그의 말을 믿었다.
그의 말에는 항상 근거가 되는 자료가 있었다.
음식점을 하는 그는 자신이 쭈꾸미 볶음과 제육볶음 등 볶음계의 신의 손이라고 했다.
자신이 만든 볶음 다데기 양념장은 전국 최고라고.
아무리 전국 최고라도 자기 입으로 저런 말을 하기는 참 어려운데 소심한 INFP로서 그의 자신감이 너무 부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재판 진행 중 어느 날 사무실에 쭈꾸미 볶음 양념장을 직접 만들었다면서 들고 왔다.
변호사님, 이것은 전국 최고의 쭈꾸미 볶음 양념장입니다. 맛 보장합니다.
나는 그가 들고 온 비닐봉지 속 다회용기를 들여다보았다.
쭈꾸미 없이 쭈꾸미 양념장만 주는 것도 부러웠다.
결정장애가 있고 늘 불안한 INFP인 나는 타인에게 무언가를 줄 때 상대방이 이것이 필요한지, 상대방이 좋아할지 고민을 많이 하는 편이다.
그런데 그냥 자기가 주고 싶은 것을 주는 그 카리스마가 부러웠다.
쭈꾸미든 양념장이든 국선 변호인은 피고인에게 금품 등을 받을 수 없기 때문에 나는 정중히 거절했다.
그는 변호인에게 아무것도 줄 수 없다는 것을 서러워하며 양념장을 가지고 돌아갔다.
그리고 재판을 마쳤고, 판결 선고일이 되었다.
나는 그에게 무죄판결이 선고될 것 같았다. 그리고 판결 이유를 직접 듣고 싶었다.
내가 주장한 것이 반영이 되었는지 궁금해서이기도 하고 무죄가 잘 안 나기 때문에 선고 현장에서 기뻐하는 피고인의 모습을 보고 싶기도 했다.
재판장님이 주문을 낭독하셨다.
사법연수원 시절 형사재판실무 시간에 어느 연수생이 교수님께 질문했다.
교수님, 징역형은 징역 몇 년에 처한다라고 서술형으로 하는데
무죄판결은 왜 그냥 무죄.라고 하고 마나요.
그러자 교수님이
피고인은 무죄다. 이러면 안 멋있잖아.
라고 하셔서 다들 웃었던 기억이 있다.
어쨌든 무죄가 나서 나는 기쁜 마음으로 사무실에 돌아왔다.
며칠 뒤 사무실 책상에 흰 봉투가 있었다.
그가 사무실에 편지를 맡기고 간 것이었다.
그는 나에게 볶음 양념장을 선물해주지 못한 것이 영 마음에 걸렸던 것이다.
내가 양념장을 받지 않으니 레시피를 알려주겠다고 했다.
재료 중 '흙후추'가 있었는데, 이것은 신종 재료인가 하고 생각했었다. 흑후추를 의미하는 것 같다.
그의 전국 최고 볶음 양념장 레시피에는 자연적인 재료와 손맛이 담길 것이라 기대했는데 MSG가 간장보다 더 많이 들어가는 것이었다.
그래도 맛있으면 되지. 음식이 몸에 좋아도 맛이 있어야 일단 입에 들어갈 것이 아닌가?
사실 우리 집에도 백색가루 MSG가 있다.
'그러고 보니 어머나, 집에 소주도 있네?'
가끔 음식에 넣으면서도 주방 근처에 남편이나 아이가 있으면 꺼내지 않게 되고, 나쁜 짓 하는 것도 아닌데
몰래 투하하게 되는 특별한 재료이다.
피고인에게 이 레시피를 다른 사람들과 공유해도 되는지, 글을 써도 되는지 물었다.
피고인은 이 레시피를 홍익인간의 정신으로 세상에 알리고 싶어 했다.
분명 입이 즐거울 거라니까 나도 해 먹어봐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