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말은 내가 ADHD 검사 후 떳떳하게 ADHD 진단을 받기 전에 정신과 전문의 3명에게 들은 말이다.
아무래도 ADHD 같다고 병원에 갔더니 다들 내가 변호사라는 것 때문에 선입견을 가지고 있었다. 무언가 집중력이 좋아야 할 것 같은 직업으로 인식하는 것 같았다.
아니면 나를 위로하려고 하는 말이었거나.
그렇지만, 공부를 못하거나 안 하는 아이들도 자기가 좋아하는 게임 같은 것에는 고도의 집중력을 발휘할 수 있다. 공부나 일에만 집중력을 가지고 나머지 일상에서는 전반적으로 집중력이 떨어지는 동료들도 많이 보았다.
어떤 동료는 방에 서류와 종이박스, 잡동사니를 가득 쌓아놓고 그 안에서 일한다. 정리정돈이 잘 안 되는 사람도 많다.
변호사인데 집중력이 떨어지면 어떻게 일을 해요?라는 의문이 생길 수 있다. 그런데 나는 기질적으로 타인과 사건에 관심이 많다. 사람과 사건을 보면 보이는 것 말고도 궁금한 게 너무 많다.
심지어 상담을 할 때 사건 외적으로 상대방에게 궁금한 것이 한두 개가 아니다. 그래서 사건 외의 궁금한 것은 질문하지 않으려고 의식적으로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된다.
지나가다가 누가 길에 쓰러져 있으면 신고한다. 길에 쓰러진 사람이 취객이거나 노숙자일 것이라고 단정하고 그냥 지나가지 않고, 혹시라도 구조하지 않으면 위험한 상황에 처한 것은 아닌지 살핀다.
데이트폭력으로 보이는 상황에도 신고하고. 신고 후에 경찰과 구급대원이 도착해서 처리를 하는 것까지 살피고서야 자리를 뜨는 편이다.
사건기록을 받으면 잔뜩 궁금한 마음을 가지고 읽는다. 이런 식으로 나는 기질적으로 변호사 생활이 맞는 편이다. 그래서 일을 하는 것에는 전두엽을 수동조작하지 않아도 집중할 수 있다.
그렇지만 다른 부분에서는 나 자신이 아쉬울 때가 많다.
지금은 많이 나아졌지만 학창 시절에는 정말 집중하기 힘들었다. 집중력이 없으니 귀도 잘 안 들리는 것 같았다. 공부할 때에도 집중이 안 돼서 힘들었다.
머리에 든 것이 뇌인지 우동사리인지..
문제는 사법시험을 준비할 때였는데, 이 시험은 공부해야 할 것이 좀 많았다. 1차는 외국어 시험도 있었다.
게다가 벼락치기로 단기에 끝낼 수 있는 성질의 것도 아니었다.
나는 집중력이 없어서 독서실에서 다른 사람들의 나비의 날갯짓 같은 사소한 움직임에도 온 정신이 다른 사람에게 가고, 내 책에는 집중이 안되고 남들이 책 넘기는 소리에 집중이 되었다. 게다가 전두엽 수동조작으로 쫄깃한 집중 상태에 이른다고 해도 그 시간이 너무나도 짧아서 장시간 공부하기가 어려웠다.
사법시험 수험생시절. 나 자신의 집중력이 다른 사람들의 그것과 좀 다르다는 것을 깊게 인지했다.
그래서 집중력 없는 나에게 '맞춤형 공부'방식을 제공했다. 일단 전두엽을 가동하려고 집중력 버튼을 누르고 집중력을 올리는 수동조작 행위들, 이를테면 책상정리와 지우개똥 치우기, 볼펜 일렬로 늘어놓고 독서대 세팅하기 등의 행위들을 하지 않고 바로 공부했다.
타인의 움직임에 집중력이 바로 흩어진다는 것을 깨달은 이후 나는 독서실을 다니지 않고 고시원 방을 구해서 공부했다. 자다가 일어나면 아침에 바로 의자에 앉아 전날에 보던 부분을 이어서 보았다. 세수도 하지 않았다.
일단 10분에서 30분 정도라도 공부를 한 다음에서야 양치하고 세수를 했다. 아침에 뇌가 활동을 시작하려고 할 때 다른 산만한 생각들이 개입하지 못하도록 하려고 그렇게 한 것이었다. 이 방식은 효과적이었다.
나는 지금도 아침운동을 할 때에도 침대에서 일어나서 거실로 나온 이후 스트레칭을 하고 바로 플랭크를 한다. 나와서 음악 틀고 운동복으로 갈아입고 뭐 하고 하다 보면 또 산만한 생각이 들거나 계획대로 못할까 봐 스트레칭만 마치면 바로 플랭크와 스쿼트를 하고 그다음에 헬스장을 가든 글을 쓰든 하루를 시작한다.
내가 중요하다고 생각하거나 꼭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설령 그것이 노는 것이거나 취미일지라도 1순위로 올려놓고 생활한다. 그러면 시동 걸자마자 바로 스윽 밀리듯이 나가는 전기차처럼 내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일상이 절로 시작되고 진행된다.
miracle-dawn
사람들과 만나서 대화를 하면 잔상이 남는다. 자동차 소리와 생활소음들, 일상이 시작되면 일어나는 모든 일들이 집중력을 흩트릴 수 있는 요인이다.
그래서 나는 새벽을 활용한다.
새벽 4시에 일어나면 9시가 되기까지 무려 5시간이나 된다. 이 시간에 운동하고 글 쓰고 그림 그리고 요리를 해도 넉넉한 아침을 맞이할 수 있다.
때로는 일찍 일어나서 일이나 공부를 하면 다른 사람들 보다 한 나절을 더 사는 기분이다. 집중력이 부족한 나는 미라클모닝으로는 부족했다. 미라클던이다.
새벽에 열심히 할 것 다 하고, 하루 종일 아무것도 안 해도 하루종일 일하고 공부하는 사람이 이루는 하루와 비슷하다. 나는 글 쓰거나 그림 그리는 것을 주로 새벽에 한다. 그래서 가족들은 내가 글을 쓰는 모습을 잘 못 본다. 글을 쓰기 위해 일하는 시간을 할애하지도 않는다.
새벽에 일어나지 못하는 사람들은 신기하게 여길 수 있겠지만, 자는 시간은 유동적일 수 있기 때문에 자는 시간을 강제하는 것은 쉽지 않다. '일어나는 시간'을 통제하면 어느 순간 신체 리듬이 일어나는 시간을 고려하여 적정한 수면이 되도록 맞추어지기 마련이다.
나는 늦게 자도 일찍 일어나고, 일찍 자도 일찍 일어나고 한 끝에 어느 정도 루틴이 생겼다.
이 이야기는 다음에 이어서 하겠지만, 나는 ADHD 치료를 위해 정신과에 갔을 때 아주 심각한 ADHD 환자를 전문의로 만났다. 아무래도 원장님이 ADHD 같았다. '금쪽같은 내 아버지' 이런 프로그램이 있다면 원장님 아들은 신청했을 것 같다.
상담하다 말고 일어나서 국민체조 허리 돌리기도 하고, 매번 두서없고 산만해서 기가 빨렸다.
그런데 나중에 원장님께서 나에게 ADHD 약을 처방하시면서 약을 설명하시다가 무심코 말씀하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