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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견

(날 보러 와요)

by 몬스테라

언제는 법정에서 내 순서를 기다리다가 명변론을 하는 변호사를 보고

‘와... 변호사 멋지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도 변호산데..


어떤 날은 구치소에서 접견을 하고도 법률 관련 대화를 거의 못해보고 나오는 경우가 있다.

바로 이런 경우들이다.


1. 주민센터 공무원인가 변호사인가.

피고인: 저는 1인 가구인데 지역화폐랑 재난지원금 어떻게 받아요?


나: 3개월 안에 써야 된다던데 어쩌죠... 선생님은 징역 1년 받으셨잖아요.


피고인: (눈만 꿈뻑꿈뻑)

이 날 유독 재난지원금 문의가 많았다.

그래서 알아보았더니, 법무부에서 구치소나 교도소 수용자들에게도 재난지원금을 주되, 온누리상품권으로 출소 이후 사용 가능하게 하거나 적절한 방법을 모색 중이라고 한다.


2. 윤달


피고인: 올해 윤달이 있는 해잖아요. 올해 2월은 29일까지 있었는데 저는 그럼 다른 해에 징역살이하는 사람보다 하루를 더 사는 거 아님미까. 그럼 만기에서 하루 빼야 되는 거 아니에요?


나: 징역은 월 단위예요. 밖에 나가서도 이렇게 하루를 소중히 여기면서 사셔야 해요~

3. 사랑은 가두지 못한다.


피고인: 사귀는 건 아니지만 제가 일하던 식당에서 같이 일하던 베트남 여자가 있어요. 변호사님이 전화 좀 해주세요.


나: 전화해서 뭐라고 전하면 되나요.


피고인: 보고 싶다는 말 전해주시고, 저한테 편지 좀 써달라고..


나: 멋지네요!! 이판국에 사랑을 시작하시다니요!


피고인: (쑥스러워하며 손사래 침)


3. 드라마


나: 아휴 출소하시자마자 범행하셨네요. 누범에다가.. 동종 전과 엄청 많으시네요 선생님. 합의도 안 되셨고 그런데 형을 어떻게 깎지요?


피고인: 아니 형 깎으려고 항소했다기보다는 난 미결로 좀 더 있을라고.


나: (30초 지났는데 접견 끝내면 교도관들이 나를 쓰레기로 볼 것 같아서 아무 말을 시작) 요즘 드라마 여기 뭐 틀어줍니까


피고인: 이태원클라쓰 이제 시작했어요 엄청 재밌습니다요.


나: 장가회장 나중에 새로이한테 무릎 꿇고요, 새로이하고 이서는..


피고인: (울상으로) 변호사님 정말 너무하세요. 지금 드라마 보는 낙밖에 없는데!



조용하고 심각한 분위기의 접견실에 교도관들이 허리에 찬 무전기 소리가 울려퍼진다. 무전기에선 진지 근엄 엄숙한 목소리가 흘러 나왔다.

“교화위원이이~ 옥동자를 주셔서어~냉동실에 넣어놓았사오니~ 1인당 하나씩 드시기 바랍니다아~

다시 한번 알립니다 교화위원이이~옥동자를~ 옥동자르을~“

4. 내 밑으로 들어와.


50대 남자인 피고인은 공소장(범죄 혐의 사실이 기재된 종이)에 기재된 사실관계를 다 인정하면서도 무조건 무죄라고 우기고 있었다. 그가 인정하는 사실관계를 법률적으로 판단한다면 유죄가 맞다.


피고인은 내가 피고인 주장 내용만으로도 죄가 된다고 할 것을 대비하여 처음부터 화가 난 듯 이게 무슨 죄가 되냐며 항변부터 시작했다.

인내를 가지고 피고인의 말을 다 들었다. 이제 내 말을 시작하려다 문득 피고인의 피부가 50대인데도 참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 그런데 피부가 참 좋으시네요.


피고인은 자신의 피부에 대한 자부심을 보이며 피부 관련 이야기를 하더니 갑자기


피고인: 그래도 죄가 되는 건 되는 거죠. 에휴. 법에서 안 된다고 하면 어쩔 수 없는 거죠 사실.

피부가 좋다는 말 한마디에 무려 자백이라니!!

피고인은 이어서 무슨 비밀 접선을 하듯 손짓으로 나에게 종이를 줄 것을 요구했다. 내가 포스트잇을 쓰윽 내미니 그 위에 ‘*** 화장품. 19만 8천 원.’이라고 적고는 비장한 표정으로 볼펜을 탁 놓았다.


며느리도 안 가르쳐 주는 맛집 소스 비법을 알려주는 것처럼. 그러더니 목소리를 낮추고 “속는 셈 치고 써봐. 만약 이거 써서 피부가 안 좋아지면 내가 책임진다니까. 나 ***화장품 회원인데, 내 밑으로 들어오면 내가 변호사님 점수 쌓아 드릴게.”라고 했다.


나는 이 날 피고인의 집요한 다단계 회원 모집활동을 방어하는데 30분을 더 써야 했다.

5. 이상한 증거


피고인: 제가 조직생활까지 했던 건달입니다. 어떻게 여자를 때릴 수 있겠습니까.

나: 조직생활을 하셨다니 더욱더 때릴 수도 있는 거 같은 데여..


피고인: (광분하며) 여자를 때리는 건 ‘양아치’예요. 싸나이 불*차고 할 짓 없어 여자나 때리겠습니까


아무래도 때린 거 같다.


6. 걱정이 없는 사람


아무런 근심 걱정이 없는 사람을 만났다.

예수도 부처도 아니고 걍 현존하는 사람이다. 그 사람은 도를 닦은 적이 없고 기도 같은 것은 하지 않으며 생활도 건전하지 않았다. 그는 구치소에서도 밥 잘 먹고 열심히 운동하고 밝았다. 얼굴에는 미소가 감돌았고 활기찼다.

그와 대화하면서 유심히 살피다 보니 그 비법을 알 수 있었다.

그는 신진대사와 신체의 움직임을 위한 용도 외에는 뇌를 쓰지 않고 있었다.

즐겁게 살려면 생각이 많지 않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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