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

내 태도는 내가 정한다.

by 몬스테라
강제 수용소에 있었던 우리들은 막사를 지나가면서 다른 사람을 위로하고 마지막 남은 빵을 나누어 주었던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을 기억하고 있다. 물론 그런 사람이 아주 극소수였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도 다음과 같은 진리가 옳다는 것을 입증하기에 충분하다. 그 진리란 인간에게 모든 것을 빼앗아 갈 수 있어도 단 한 가지, 마지막 남은 인간의 자유, 주어진 환경에서 자신의 태도를 결정하고 자기 자신의 길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만은 빼앗아 갈 수가 없다는 것이다.

주말에 가족과 여행을 갔었는데 마침 비가 많이 왔다.

비 오는 날 숙소에서 책을 읽으니 평온하고 좋았다.

이번에 읽은 책은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이다.

빅터 프랭클은 오스트리아 빈에서 태어났고 유대인이며 신경정신과 의사였다.


1944년 그는 아내와 함께 아우슈비츠로 가게 되었다. 그의 어머니와 여동생은 아우슈비츠에서 숨졌고 아내는 안네의 일기로 유명한 안네 프랑크와 같은 수용소로 이송된 다음 숨졌다.


그의 가족 중 유일한 생존자는 호주로 이주한 여동생 한 명뿐이었다. 빅터 프랭클은 부모님, 아내, 자식, 친구를 강제수용소에서 잃고, 가족의 생사를 알 수 없는 상태에서 수용소 생활을 했다.


그가 아우슈비츠로 호송될 때 기차에 함께 탄 사람 중 1,300명이 그 기차에서 내린 날 사망했다. 그는 노동력이 있다고 판단되어 그 날 당일은 죽음을 면했고, 이후에도 여러 번의 고비를 가까스로 넘겼다.


그가 묘사한 수용소 생활을 보면 그에게 살아야 할 이유도 없어 보이고, 살아남은 이후에도 온 가족이 무기력하게 몰살당한 것을 알게 될 텐데 사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었나 싶었다.

그런데 그가 가혹한 운명 앞에 보여준 태도는 놀라웠다.


나는 아내가 아직 살았는지 죽었는지 조차 몰랐다. 그러나 한 가지만 알고 있었다. 그것은 그때서야 깨달은 것인데, 사랑은 사랑하는 사람의 육신을 초월해서 더 먼 곳까지 간다는 것이었다. 사랑은 영적인 존재, 내적인 자아 안에서 더욱 깊은 의미를 갖게 된다. 사랑하는 사람이 실제로 존재하든 존재하지 않았던, 아직 살았든 죽었든 그런 것은 하나도 중요하지 않았다.
이 세상 그 어느 것도 내 사랑의 굳건함, 내 생각, 사랑하는 사람의 영상을 방해할 수는 없었다. 사실 그때 아내가 죽었다는 것을 알았더라도 나는 전혀 개의치 않고 아내 모습을 떠올리는 일에 나 자신을 바쳤을 것이다.


그는 수용소에서 가스실로 보내지는 것으로 추정되는 명단에 든 적이 있었다. 그에게 평소 호감이 있었던 수용소 의사는 리스트에서 그를 빼주겠다고 했다.


“나는 친구들 곁에 있는 것이 더 좋습니다.”

그는 의사에게 이것이 내 길이 아니라고, 나는 운명이 정해 놓은 길로 가야 한다는 것을 배웠다고 말했다.


그리고 막사로 돌아와 명단에 들지 않고 남게 된 친한 친구에게 혹시라도 살아서 나간다면 아내에게 유언을 전해 달라고 했다.


그는 친구가 어린아이처럼 눈물을 흘리는 동안에도 친구에게 유언을 한마디 한마디 외우도록 했다.


그러나 정작 빅터 프랭클은 살았고, 눈물을 흘리며 그의 유언을 외우던 친구는 돌아오지 못했다.




나는 살아 있는 인간 실험실이자 시험장이었던 강제 수용소를 네 곳이나 전전했다. 거기서 어떤 사람은 성자처럼 행동할 때, 또 다른 사람은 돼지처럼 행동하는 것을 보았다. 즉 사람은 내면에 두 개의 잠재력을 모두 가지고 있는데, 그중 어떤 것을 취하느냐 하는 문제는 전적으로 그 사람의 의지에 달려 있음을 알았다.


인간에게 모든 것을 빼앗아 갈 수 있어도 단 한 가지, 마지막 남은 자유, 주어진 환경에서 자신의 태도를 결정하고 자기 자신의 길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만은 빼앗아 갈 수 없다.


그는 극단적인 시련과 죽음의 공포 속에서도 삶의 의미를 찾고, 자신의 존엄성을 지켜냈다.

그 큰 불운을 겪고도

불운의 경험을 죽은 나무삼아 자라는 버섯처럼 내면의 상처를 키우는 일도 없었다.

전차를 타고 몇 년 동안 마음속에 그리던 집으로 돌아왔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꿈속에서 수천 번 되풀이했던 것처럼 벨을 눌렀을 것이다. 그러나 문을 열어 주어야 할 그 사람은 그곳에 없었다. 아니 앞으로도 계속 없을 것이다. 수용소에 있을 때 우리는 이런 얘기를 했다. 세상에 나가도 우리가 그동안 겪었던 시련을 보상해 줄 만한 속세의 행복은 없을 것이라고.

살아 돌아온 사람이 시련을 통해 얻은 가장 값진 체험은 모든 시련을 겪고 난 후 이 세상에서 신 이외에 아무것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는 경이로운 느낌을 갖게 된 것이다.

1905년에 태어난 그는 평생을 통해 다른 사람들에게 삶의 의미를 찾도록 도와주는 일을 하다가 1997년에 아내의 곁으로 갔다.


주말에 세 권의 책을 읽겠다고 샀는데

이 책만 내리읽었다. 엄청난 흡입력이 있었다.

이 책은 절망에 관한 책이 아니라 희망에 관한 책이다.

꼭 필요하지만 삶이 저절로 주지 않는 것, ‘태도’에 관한 이야기이다.




바람이 부네요.

춥진 않은가요.

keyword
작가의 이전글게으른 게 아니라 뿌리내리는 중입니다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