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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몬스테라 Nov 08. 2021

PTSD(외상 후 스트레스성 장애)-트라우마

나를 사랑할 시간 - 나에 대한 정의

나에게는 남동생이 하나 있다. 

어릴 적 이 아이는 소심하고 내성적이며, 체구가 작아서 동네 친구들에게 얻어맞고 올 때가 종종 있었다. 우리 옆집에 동생과 같은 나이의 아이가 이사 왔는데 그 아이도 남동생과 비슷한 체구에 성격도 비슷해서 둘이 같이 괴롭힘당하고 울면서 집에 돌아오기 일쑤였다.

누가 괴롭힘당하는 것을 못 넘기는 성격이었던 나는 동생과 동생 친구를 양옆에 끼고 때린 녀석이 사는 집 앞으로 가서 큰 소리로 혼도 내주고, 도로 때려주는 등 복수를 해주었다.

복수하러 쳐들어간 어느 날, 동생을 때렸던 그 녀석이 내가 휘두른 주먹에 맞아 코피가 났다.

주위를 두리번거리다가 그 녀석의 엄마가 계시지 않다는 것을 알고 물을 한 바가지 떠 주면서 깨끗하게 씻으라고, 엄마 오셨을 때 이르면 나중에 더 혼날 줄 알라고.. 엄포를 놓고 두근거리는 마음에 마구 뛰어와 그 엄마가 쫓아올까 봐 무서워서 셋이 숨어있었던 기억이 있다.

이때까지만 해도 내 동생은 누나의 도움을 받고 지내는 약하고 여린 아이였다.

그러던 녀석이 등치가 산 만 해지고 사춘기가 되더니, 점점 사악한 괴물로 변했다.

누구의 말도 듣지 않고, 눈으로는 누구 하나 걸리면 죽일 것 같은 레이저를 쏘고, 제멋대로에, 친구들과 싸우고 오기가 일쑤, 학교 담을 넘어 나가서 놀다가 밤늦게 들어오고, 가출도 하고...

이런 동생의 모습이 낯설고 힘들었지만 나를 가장 힘들게 했던 시그널은 전화벨 소리였다.

그때 당시에는 휴대폰이 없었고 집 전화 한 대뿐. 집에 전화벨이 울리면 모든 가족이 자기에게 오는 전화인가 싶어 거실로 뛰어나오던 시절이었다. 언제부터인가 전화가 오면 엄마의 떨리는 목소리와 우는 소리, 아빠의 걱정하는 한숨 소리가 들려왔다.

전화벨 소리에 심장이 덜컥하는 것을 느끼는 경험이 시작된 것이었다.

그렇게 나의 십 대를 보냈다. 이후 이 증상은 언제 그런 일이 있었나 싶게 자취를 감추었다. 이젠 다 괜찮아진 줄 알았다.     

그런데 세월이 흘러, 내 아이가 사춘기에 들어서자 잊고 있었던 그 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귀엽고 발랄하기만 하던 아이가, 엄마가 세상에서 제일 예쁘고 좋다던 천사 같은 아이가, 학교에서 싸우고, 선생님과 부딪히고, 교칙을 어기고, 밤늦게 들어오고, 부모에게 반항하고, 가출도 하고...

동생에게서 보였던 모습이 내 아이에게 보이니 미칠 노릇이었다.

마치 나쁜 성향이 유전이라는 듯 고스란히 보이는 모습에 두려웠다.

오래전 기억 속에서 잠자고 있던 나의 어린 모습처럼, 나는 다시 불안에 떨고 있었다. 

전화벨 소리에 같은 반응-심장이 덜컥 내려앉고, 두근거리며 식은땀이 나는 증상.

같은 시그널에 반응하는 신체적, 심리적 변화.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

나는 왜 이런 고통을 받고있는 것일까.

부모의 고통스럽고 슬픈 목소리와 전화벨 소리. 사랑하는 부모가 괴로워하고 있는데 아무것도 도움을 줄 수 없는 무능한 어린아이. 나라도 부모를 속상하게 하지 말아야겠다는 의식. 완벽하고 철저하게 살아야 부모의 아픈 마음을 보상해 드릴 수 있다는 판단.

이런 부담들이 어린 시절의 나를 짓눌러 전화벨이 울리면 과도한 스트레스로 이어졌던 것 같다.

이후 자녀를 키우면서도 완벽한 엄마, 순종적인 아이를 내 기본 설정에 두었고 그게 달성되지 않으면 과도한 스트레스를 받아왔던 것 같다.

이런 나의 모습에 아이는 숨막혀 하다가 어긋났을 테고, 그로 인해 나는 전에 느꼈던 고통을 다시 맛볼 수 밖에 없는 필연적인 순서.

전화벨은 과거의 극심한 스트레스를 떠올려 현실에 고스란히 고통을 끌어다 주는 트리거 효과였던 것이다.     

이것을 끊어내기 위해 마인드 컨트롤을 한다.

‘지금 일어나는 일은 심각하지 않다, 이 시기의 아이는 충분히 그럴 수 있다, 그렇다고 하여 나의 아이는 나쁜 길로 가지 않을 것이며, 멋진 어른으로 잘 자랄 것이다, 지금 이 일들이 나의 인생과 마음에 절대 나쁜 영향을 줄 수 없다. 그리고 나는 미숙하지만 나쁜 엄마는 아니다’라는 주문을 외우며.

오늘도 내 마음 속에서는 어떤 PTSD를 형성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또 다른 트라우마가 생긴다 하더라도 나는 나를 위로하고 다독이고 싶다.

괜찮다. 괜찮다. 어떤 것도 나를 불행하게 하지 않을 것을 안다... 라면서.

나를 괴롭히는건 나 자신이라는 것을 알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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