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잠이 예민한 편이다. 그날 새벽에도 자고 있던 신랑이 살그머니 몸을 일으키자마자 번쩍 눈을 떴다.
“왜 그래?”
나의 물음에 신랑은 급히 한 손으로 검지를 세워 자신의 입에 갖다 대고 한 손으로는 가만히 기다리라는 듯 손바닥을 펴 보이며 침대에서 일어섰다. 이 방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 틀림없었다! 자다 일어나 알 수 없는 행동을 하는 신랑의 모습에 심장이 쿵쾅대던 찰나,
“...... 드르렁... 드르렁...”
장롱 안에서 누군가 코를 고는 듯한 소리가 새어 나오고 있었다.
‘침입자?!’
순간 온갖 생각들이 머릿속을 메웠다. 낮에 들어온 도둑이 미처 나가지 못하고 장롱에 숨어있다 잠이 든 건가, 아니면 변태? 둘만의 신혼집에 낯선 사람의 코 고는 소리가 들리다니 환장할 노릇이었다. 신랑은 조심스럽게 거실로 나가 신발장에 넣어놓은 야구방망이를 들고 들어왔다. 그리고는 살금대며 장롱으로 걸어가 문을 왈칵 열어젖혔다.
‘제발!!’
어둠 속에서 혹시 있을지 모를 그림자를 다급히 찾던 나는 텅 빈 장롱을 확인하고는 신랑을 바라보았다. 온 집안에 전등을 켜고 샅샅이 살펴보아도 정체 모를 코골이는 계속되었다.
“잠시만... 이거 베란다에서 나는 소리 아니야?”
번득 떠오른 생각에 침대 머리맡의 베란다로 가보니, 역시나 빌라 전체를 관통하는 배수구를 타고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코골이의 주인공은 윗집 아저씨. 도대체 이놈의 집은 어찌 지었기에 위층 소리가 마치 우리 집 안방에서 들리는 듯하는 걸까. 그래- 도둑이 아닌 게 어디냐!
그날 우리는, 실소를 지으며 얼굴도 잘 모르는 아저씨의 코 고는 소리를 베개 삼아 잠이 들었다.
기차역을 오가는 마을버스의 종점, 그 동네의 가장 꼭대기에 신혼집이 있었다. 작은방 두 개에 좁은 거실 겸 주방. 억지로 땅에 맞춰 짓느라 삼각형 자투리 베란다가 세 개나 있었는데 나는 뭣도 모르고 창고가 많다며 좋아했다. 성인 한 사람이 누우면 딱 맞을 좁은 통로에 커다란 티브이도 놓고, 현관과 맞닿은 입구에 어울리지 않게 피아노도 두었다. 보는 사람마다 삵이냐며 난색을 해대던 덩치 큰 고양이도 함께 살았다. 대학 CC였던 우리가 다른 동기들보다 일찍 결혼을 한 탓에 집은 금방 아지트가 되었다. 하루가 멀다 하고 친구들이 모였다. 늘 주머니가 비어있기 바쁘던 이십 대 청춘들에게 편하게 들락대며 밤새 술잔을 기울일 장소가 있다는 것이 좋기도 했을 터이다. 작디작은 거실에 사람들이 모이면 어깨가 붙고 다리도 붙고 이리저리 붙어 앉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면 말소리는 얼마나 크게 들리는지, 목청도 절로 높아졌다. 밖에서 들었다면 싸움이라도 난 듯 느꼈을 것이다. 그래도 나는 다정한 사람들이 내는 북적한 소리를 좋아했다.
신혼집에선 이런 일도 있었다. 엘리베이터가 없던 곳이었는데 사람들이 오가는 계단에 전등이 나간 것이다. 공용전기료를 내지 않아 전기가 끊어진 거라 했다. 낡은 빌라를 밀린 전기료까지 내며 관리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없어서 밤이 되면 어두운 계단을 더듬거리며 걸어야만 했다. 웬만하면 해가 지기 전에 들어오려 했는데 어쩔 수 없이 늦어 버린 날, 마을버스에서 내려 집으로 향하는데 누군가 뒤따라 오는 듯한 발자국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는 빌라까지 이어져 한층, 또 한 층을 올라 우리 집 현관문까지 쫓아오고 있었다. 식은땀을 흘리며 급히 열쇠를 찾던 중, 내 옆에서 발소리가 멈추더니 말소리가 들렸다.
“인사 좀 하고 다닙시다.”
앗!.. 옆집 아저씨였다. 사실 나는 그분의 얼굴을 제대로 본 적이 없었다. 대신 아저씨가 아주머니와 자주 다투는 소리를 들었으므로 목소리는 분명 그분이 맞았다. 여섯 가구가 모여 사는 작은 빌라에 7년이나 살고도 얼굴이 기억나는 분이 없다. 대신 소리가 남았다. 코를 고는 아저씨, 하루에도 몇 번씩 세탁기를 돌리던 아주머니, 자주 다투던 중년 부부, 갓난쟁이를 키우던 아기엄마, 새벽마다 오토바이에 시동을 걸던 사람, 얼굴은 잘 몰라도 익숙하게 들었던 소리가 이름이고 얼굴이고 기억이 되었다.
우리 집의 소리는 그분들에게 어떻게 남았을까. 돌이켜 보면 내가 기분 좋게 느꼈던 시끌벅적한 소리가, 방음이 취약한 빌라에서 분명 소음이었을 텐데 한 번도 조용히 하라 했던 사람이 없었다. 나이대도 달랐을뿐더러, 목례만 겨우 하는 사이였는데 이웃들은 넘어가고 봐주며 서로를 이해하고 있었다. 어쩌면 넉넉지 못한 수레를 가진 사람들이 내는 요란한 소리였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사람 사는 곳이 다 그렇지’라며 각자의 소란스러운 고단함을 눈감아 주었던 것이다.
그 작은 집의 거실 창에는, 낮으로 개장을 준비 중인 공원이 펼쳐지고 밤에는 멀리 번화가의 불빛들이 별처럼 반짝였다. 종종 그 풍경이 그리워 일부러 차를 몰아 동네를 돌곤 한다.
낡고 좁아도, 조금 시끄러워도 “우리 집이 최고야”라며 달려오게 만들어 준 곳. 내가 그 집을 오롯이 사랑스럽게 기억하는 것도 묵묵히 우리의 소음을 참아주던 이웃들 덕분이리라. 나는 뒤늦게 그 마음이 고마워 다시 애틋해진다. 나의 첫 이웃들, 모두 각자의 보금자리에서 무탈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