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K의 제안을 거절했다. 그렇게 깔끔하게 제안을 거절하고 격주마다 촬영을 했지만, 무슨 이유인지는 몰라도 그 때는 그의 인스타그램 팔로워가 1.5만명 대에서 정체되어 있었다. 처음에 내가 거절했을 때는 순순히 받아들인 K였지만 이번에 부탁할 때는 보수를 두 배로 주겠다고 말을 했다. 한번 촬영에 10을 받았으니까 이제는 한번 촬영에 20을 주겠다는 말이었는데, 도대체 어디에서 그런 돈이 나오는지 궁금했지만 함구했다. 딱히 금전이 필요한 것은 아니지만 나는 주 1회 촬영을 하겠다고 말했다. 우리는 자주 만나고 끊임없이 일을 하고 밖에서 저녁을 같이 먹고 술을 마셨다. 바람직하지 않은 생활이었다.
그러던 와중에, 해가 변하고 설날이 조금 지났을 무렵에, 영어학원에서 일하고 있는 솔로부터 연락이 왔다. 여러 가지 이유로 나는 헤어진 뒤에 그녀의 연락처를 삭제했는데, 처음에 전화가 왔을 때는 스팸 전화라고 생각해서 받지 않았다. 한 번 전화를 무시했더니 이번에는 문자 메시지를 보내서 잘 지내고 있느냐, 요즘도 K와 코스프레 촬영을 하고 있느냐는 말을 했다. 솔의 전화번호라는 것을 깨닫고 나는 전화를 해서 연락처를 삭제했다는 말은 하지 않고, 바빠서 전화를 받지 못했다고 이야기했다.
그리고 촬영은 주 1회 하고 있으며 보수를 월에 70만 원이나 받는다고 이야기했다. 그녀는 겨울 방학이라서 영어학원에 들어온 중, 고등학생들이 많아서 수업 시간이 늘어났다고, 처음에 생각했던 것보다 일이 너무 힘들어서—주에 사흘은 야근을 한다고 말했다—여기서는 오랫동안 버틸 수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나는 다양한 조건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서 영어 강사를 선택한 게 아니냐고 물었는데 솔의 대답은 나의 예측을 넘어서는 것이었다.
“그럴 리가 없지. 인턴으로 일했던 곳보다 돈을 많이 주니까 선택했을 뿐이야. 진짜 별 생각 없이 하겠다고 했어.”
솔직하게 나는 그녀를 한심하다고 생각했다. 물론 월급은 두 직장 중에서 한 직장을 고르는 주요한 이유가 될 수가 있다. 당연히 인간이라면 돈다발을 흔들며 다가오는 사람의 제안을 거절할 수 없다. 하지만 우리는 돈만으로 살아가는 존재가 아니다. 돈을 많이 받는다고 해서 그 직업이 나를 본질적으로 행복하게 만든다고 말할 수 없고, 어차피 수입이 늘어나면 소비도 늘어나게 돼 있으므로 결국 월급으로 행복해지는 순간은 월급날 하루밖에 없는 것이다. 그녀의 불평불만을 들어주다가 전화를 한 시간 넘게 해 버렸다. 다음부터는 아무리 연락을 걸어오더라도 거절해야 된다고, 그것은 우리 모두를 위한 선택이고 나는 앞으로 솔의 불평을 곰인형처럼 들어주지는 않을 거라고 결심했다. 그 이후에도 솔은 가끔씩 문자를 보내거나 부재중 전화를 걸었지만, 나는 전화도 받지 않았거니와 장문의 문자는 읽기만 하고 절대로 답장을 하지 않았다.
스팸 문자와 헷갈릴 수도 있어서 연락처는 다시 저장했다. 솔의 본명이 아니라, “영어학원 이선생”으로 저장했다.
내가 나쁜 게 아니라, 그녀가 잘못한 것이다.
영원히 오지 않을 것 같았던 삼월이 오고 K는 자기 말로는 4학년이 되었고 나는 학부와는 다른 대학교의 대학원에 입학했다. 서울에서 경기도로 자취방을 옮겼다. 촬영 횟수도 다시 월에 2회로 줄어들었고 인스타그램의 팔로워 수를 강박적으로 확인하는 K도 팔로워 수가 1.8만 명으로 늘어나서 그런가, 이제는 팔로워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그의 작은 요구들을 들어주는 것에 피로를 느끼고 있던 나도 한결 어깨가 가벼워진 느낌이었다. 촬영이 끝날 때마다 보수를 받는 것도 부담스러워서 월마다 35만 원씩 주라고 그랬다. 지금까지 K에게 받은 돈을 모아서 손떨림 방지 기능이 붙어 있는 값비싼 망원렌즈를 현금으로 구매했다. 코스프레 촬영을 하면서 받은 돈이니까, 다른 곳에 돈을 사용하면 K의 믿음을 배신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의 믿음이 얼마나 강한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받아들이는 것만 말하면 그 누구보다 나를 믿고 촬영에 임하고 있었다. 나를 그만큼 믿고 따르는 피사체가 앞에 있는 이상, 그가 건네준 막대한 보수를 렌즈와 장비를 사는 것 말고 다른 곳에 사용할 수는 없었다.
앞에서는 불평을 했지만 그와의 촬영은 나에게 색다른 즐거움을 불러 일으켰다. K는 지나치게 많은 것을 동시에 요구하는 성향이 있었고, 그런 성향은 단점이면서 동시에 장점이었다. 다양한 코스프레 의상을 소화하고 촬영하면서, 나의 사진 실력도 동반해서 상승하는 느낌이 들었다. 이를테면 내가 찍은 사진의 인스타그램 조회수와 ‘좋아요’ 개수는 최근으로 가까워질 때마다 조금씩 늘어나고 있었다. K는 여장 코스프레라는 아주 특수한 세계에서 점차 유명인이 되어가고 있었고, 사진사인 나는 아무런 명예를 얻지 못했지만 월에 35만 원을 받고 지금까지 받은 돈으로 망원렌즈와 표준렌즈도 하나씩 샀다.
K를 촬영하면서 이런 생각을 했다. 그의 내면에 과연 ‘남성’은 존재할까?
시스 젠더 남성이라는 지정성별은 그에게 얼마나 큰 영향을 주었을까?
어느 봄날, 여느 때처럼 스튜디오에서 촬영을 마치고 근처에 있는 식당에서 그렇게 비싸지는 않은 중국요리와 술을 함께 먹으면서, 우리는 잡담을 나누었다. 할 이야기가 많이 남아 있는 건 아니었지만 종종 주변 사람이나 가족 이야기를 할 때가 있었고, 처음 만났을 때보다 저항이 줄었는지는 몰라도 K는 나에게 가족, 그 중에서도 여동생과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가 있었다.
술을 마시고 나서 나는 아버지가 날 포기했다고 이야기했다. 실제로 어떨지는 모르겠지만 아버지의 삶은 나의 삶과 너무나 다르고, 그 차이를 이해할 수 없어서 아버지는 나에 대한 기대를 접었다고 말했다. 그러자 K가 자신의 언어로 말하기 시작했다.
“S님도 가족과의 관계에서 불화를 겪거나 서로 의견차이가 있어서 고통받을 때가 있으신가요?”
“아무래도 그럴 수밖에 없는 것 같아. 외려 가족이니까 이해할 수 없는 지점들이 있을 수밖에 없는 거고, 거기에 대해서는 별로 할 말이 없지만, 가끔은 타인의 삶을 속속들이 이해해 주는 관계를 간절하게 원하기도 해.”
“살아온 삶이 다르니까요.”
“모든 것들이 다르지. 감수성이나 공감 능력, 미래를 예측하는 힘이나 일에 대한 자신감이나.”
“S님은 자기 일에 자신감이 없는 편인가요? 우리 촬영에서는 자신감 있어 보여서요.”
“일단 코스프레 촬영이 노고 혹은 노동이기는 해도, 월급 노동이 아니니까. 예술적인 재능을 살려서 사진가로 살고 싶으면 코스프레 촬영 같은 건 당장 그만두는 게 맞을걸. 이런 일은 돈을 바라고서 하는 일이 아니잖아? 네가 나한테 매월 얼마쯤 현금을 주는 것처럼 돈을 받으면 좋지만 돈을 받지 않더라도, 누군가를 위해서, 혹은 미래를 위해서 이 일을 할 수 있는 거지.”
문득 열정페이라는 말이 고요한 수면 위로 떠올랐다가 사라졌다. 이 업계에서 일하는 사진가는 모두 열정페이를 강요당하고 있는 셈인가? 아마 그렇지 않을 것이다. 열정페이라는 말 속에는 착취의 주체가 가정되어 있다. 그러나 코스프레 촬영의 경우 사진가가 무급으로 일한다고 해서, 개별 코스프레이어가 돈을 벌어들이는 것은 아니다. 유튜브 채널을 열어서 광고 수익을 얻으면 몰라도, 취미 삼아서 코스프레를 하는 사람이 트위터나 인스타그램에 올리는 사진으로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인스타그램의 인플루언서가 되면 또 이야기는 다르겠지만, K처럼 팔로워가 1.8만 명이 넘는 사람도 인플루언서의 지위를 이용해서 벌어들이는 돈은, 내가 알기로 0에 가깝다.
따라서 사진가들은 열정페이를 받고 일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일조차 되지 못하는 ‘활동’을 하고 있는 셈이다.
그게 불만인 사람이 있다면 빠른 시간에 업계를 떠났을 테니까, 지금 남아 있는 사람들은 모두 일조차 되지 못하는 ‘활동’을 자기 스스로, 즐겨서 한다는 말이 된다. 즐거움과 보람을 얻기 위해서 찍는다는 말이다.
다른 동호회는 실제로 수익을 내면서 취미생활을 즐기는 사람이 있다고 들었다.
디지털 카메라는 구매한 순간부터 감가상각이 시작해서 중고로 비싼 가격에 팔기는 어렵지만, 빈티지 필름 카메라의 세계는 또 다르다고 들었다. 어쩌면 그런 취미가 일반적인 취미 활동이라고 불리는지도 모르겠다.
다시 돌아와서, 요리를 거진 다 먹었는지 K는 긴 젓가락으로 소스가 묻은 양파를 휘적거리면서 중얼거렸다.
“만약 제 아빠도 저를 포기한다면 방해물이 하나도 없는 거겠죠.”
“무슨 말이야?”
“예전에 아빠가 그런 적이 있어요. 너는 머리가 좋으니까 행정고시를 볼 수도 있고 졸업 후에 로스쿨에 들어갈 수도 있는데, 어떤 선택을 하든지간에 안정적이고 돈을 잘 버는 직업을 고르라고 말씀하셨거든요. 안정적이고 돈을 잘 버는 직업을 고르는 것이 이 사회에서는 가장 중요한 요소라면서. 내심 거기에는 동의하고 있었기 때문에, 자기혐오의 감정이 불쑥 튀어나왔어요.”
“동의한다는 건 나중에 그런 전문직으로 가겠단 말이야?”
“아직 모르죠. 4학년이니까. 행정고시 문제집은 펼쳐본 적도 없고, 리트 준비도 해 본 적이 없어서 아마 올해는 어려울 거에요. 군대 문제도 해결해야 되는 거니까요…… 지난 삼 년 동안, 코스프레를 하고 경영학 수업을 듣느라 그 외의 활동은 아무것도 하지 못했어요. 자신만만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활동은 아니지만, 저는 정말로 후회 없이 살아왔다고 생각해요. 그 덕분에 인스타그램 팔로워도 늘어났고 이쪽 세계에서는 비록 가명이기는 하지만, 이름이 알려졌으니까요. 저는 이것으로 만족해요.”
긴 중국식 젓가락은 양파와 당근을 휘적거리기만 할 뿐, 아무 것도 집어내지 못했다.
문득 불임이라는 말이 떠올랐다. 임포텐츠, 무능력, 불임.
“장래에 대한 불안이라면 나도 있어. 내 경우에는 이야기가 다를지도 모르겠다. 왜냐하면 할아버지가 잘 살아서 유산만 잘 관리해도 손자까지는 잘 먹고 살 수 있거든. 금수저까지는 아니지만, 뭐 은수저라고 해도 되겠지.
그래도 여전히 불안하기는 해. 왜 나는 인정받지 못하는 활동을 하면서 대학원까지 갔을까? 대학원까지 가서 뭘 하려고 하는 걸까. 석사를 졸업하고 취직하는 것도 그렇게 내키지 않아. 예전에 아르바이트를 해 본 적이 있거든. 동네의 작은 사무실에서. 논술 첨삭 강사도 해 보았는데 둘 다 적성에 맞지 않았어. 내가 있어야 할 곳은 여기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더라니깐.
있잖아, 사진을 찍는다는 건 피사체의 영혼을 찍는 행위이기도 해. 난 사람의 영혼을 찍고 싶어.”
아하핫, 하고 K가 웃음을 터뜨렸다.
나는 K의 젓가락이 움직이던 요리 속에서 하나 남아 있는 튀김을 집어내 입으로 가져갔다. 눅진하고 달콤한 소스의 맛이 혀 끝에서 감돌았다. 우리는 앞으로도 잘 해 보자는 인사를 하고 당산역 부근에서 헤어졌다. 2호선을 타고 사당역으로 가면서 부재중 문자를 확인했다. ‘영어학원 이선생’으로부터 문자가 여러 건 왔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