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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민재 Sep 16. 2024

[마술피리] 8화

메인 요리는 방어구이였다. 구운 방어 옆에는 구운 야채들이 가지런히 올라가 있고, 방어의 살 위에는 양파의 줄기처럼 보이는 식물의 줄기가 올라가 있다. 방어는 한두 번 포크와 나이프를 사용하면 먹을 수 있을 만큼 양이 적었다. 서빙을 전담하는 사장님이 뭐라고 자세하게 설명을 해 주셨지만, 머리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소스가 시큼하고 맛있어서 소스가 남을 때는 식사용 빵을 찍어서 먹으면 좋다는 말만 기억해 두었다.

K가 와인을 추가했다. 시간이 고작 30분 흘렀을 뿐인데도 K의 글래스는 바닥까지 비어 있었다. 와인이 입맛에 맞았던 듯하다.

“코스프레를 처음 하게 된 건, 고등학생이던 오 년 전이었어요.

그때 저는 첫 연애를 하고 있었고, 여자친구는 동갑이었지만 저보다 키가 약 3cm 컸어요. 퀸카라고 했나요. 그런 여자를. 일진은 아니었으니까 저희는 학교에서 잘 나가는 불량한 친구들과 어울리지는 않았어요. 당연히 저희는 평범한 애들과도 일진과도 거리가 멀었고…… 또, 여자친구는 오타쿠 취미를 가지고 있었어요.

저는 여자친구에게 뭐랄까, 애니메이션을 시청 당하면서 교육을 받은 셈이었어요. 여자친구는 남성향 작품을 선호했어요. 생긴 것과는 달리 그녀의 내면은 남성적이라고 해야 되나, 일반적인 여성은 아니었던 셈이죠. 여하튼 그랬는데, 오타쿠 친구들이 주변에 몇 명 있어서 다들 친하게 지내고 밥도 같이 먹었죠.”

나는 나이프를 써서 방어구이를 잘랐다. 살이 부드러워서 나이프를 대면 자연스럽게 반으로 갈라졌다. 조심스럽게, 살이 바스러지지 않도록 조각을 만들었다. 야채하고 같이 먹으면서, 이야기에 집중하고 있음을 나타내기 위해서 K와 시선을 맞추려고 노력했다. 아이 콘택트는 잘 하지 못했지만.

“나중에야 알게 된 사실이지만 여자친구는 저와 사귈 동안에는 자신감이 많이 떨어져 있는 상태였어요. 연애 기간에는 자신감의 부족을 특유의 낙천성으로 감추고 있어서, 저는 여자친구를 절반 밖에 이해하지 못했어요.

종종 외모가 추하지 않냐, 아침에 화장이 잘못된 게 아니냐, 그런 말을 했으니까 저는 대답으로 “너는 예쁘다”고 재확신을 시켜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어요. 정신분석에서 말하는 밑도 끝도 없는 타자의 확신이죠. 귀찮기도 했지만, 자신감이 명백히 낮은 상대에게 외모 칭찬을 하지 않을 수도 없었어요.

그러고 나서 우리는 고삼이 되었고, 둘 다 시험 준비로 바빴지만 가끔 데이트를 즐기면서 여자친구의 친구하고도 같이 만나서 놀았어요. 코믹월드 같은 거대한 애니메이션 행사에도 같이 가게 되었는데 문제는, 코스프레를 하는 사람들이 너무 재미있어 보였던 거에요.

이후로 공부가 끝나고 집에 돌아오면, 한 열한 시쯤 되었을까. 열한 시부터 한 시간 정도 시간을 투자해서 집에서 코스프레를 했어요. 캐릭터의 성별은 따로 가리지 않았습니다. 여자를 할 때도 있고, 남자 캐릭터를 할 때도 있고, 아주 다양했어요. 코스프레를 좋아하고 앞으로도 계속해서 취미로 하고 싶다는 것을, 고등학교 삼학년 말에 깨달았죠. 제 인생에서 뭔가에 깊이 몰입한 적은 그때가 처음일 거에요.”


나는 메인 요리를 거의 다 먹었다. K는 자신의 이야기에 집중하느라 접시에 손을 대지 못했다. 생선과 야채 요리가 그대로 남아 있었다. 나는 K에게, 좀 먹고 나서 다시 이야기를 하면 좋겠다고 말해주었다. 안 그러면 K는 아무것도 먹지 않을 것 같았다. 우리는 잠시 침묵했다.

“여자친구를 사귀었다는 건 이번에 처음 듣는 사실이야. 그 전에는 나한테 따로 이야기한 적 없지?

코스프레의 세계는 넓고 깊다고들 하거든. 한 번 그 세계에 빠지면, 헤어 나올 수 없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고, 아니면 결혼을 하고 나서야 코스프레를 그만두는 사람이 있다고도 하고. 후자는 소문으로만 들었지만 말이야.

여자친구는 언제까지 사귄 거야?”

K가 빠르게 대답했다.

“제 기억이 맞다면, 대학교 2학년 1학기까지는 연인 사이를 유지했을 거에요. 2학년 2학기에는 확실하게 헤어졌어요. 언제부터인지 모르겠지만, 서로가 사랑이 식었다고 느꼈을 거에요. 특히 저 같은 경우는 여자친구를 만나고 싶지 않았어요.

수능 시험을 보고 대학교에 입학하고, 학교 졸업과 대학교 입학 사이에 일 년의 갭이 있기는 하지만, 본격적으로 코스프레를 시작하면서 S님처럼 실력이 뛰어난 사진가를 사방팔방으로 찾아다니게 되었어요. 촬영을 잘 하는 사진가는 업계에 거의 없으니까요. 애초에 보수를 기대하는 활동이 아닌 데다가, 찍는 주기도 불규칙하니까 전문적으로 사진을 업으로 하는 분들이 이 세계에 들어오지 않죠. 잘 아시겠지만, 대충대충 찍고 나서 후보정도 대충 하고 사진 파일을 그냥 던져버리는 사람도 있어요. 저도 활동 초기에는 그렇게 대충 일하는 사진가를 여러 번 만났어요. 굉장히 운이 나쁜 케이스라고 할까요. 그러다가 실력이 매우 뛰어난 장인을 만나게 되었죠.

그 사람의 본명은 따로 있지만. 저는 랜디스라고 부르는 분입니다.”

내가 처음 듣는 이름이었다.


랜디스와 K의 만남은 우연한 계기로 이뤄졌다. K는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코스프레용 옷을 사 모았고, 랜디스는 그가 아르바이트를 하는 프랜차이즈 카페에서 가끔 일했다. 그는 주업으로 사진관을 운영하고 있었고 카페에서 일할 필요는 없었지만, 카페의 점장이 아는 형이라서 일손이 부족할 때만 랜디스를 불렀다. 그는 K와 사진과 관련된 주제로 잡담하면서 빠르게 친해졌다.

사진관을 운영하고 있는 평범한 30대 남성이었던 그이지만, 사실 그는 내셔널 지오그래픽처럼 현장에서 사진을 찍는 ‘포토그래퍼’가 되고 싶었다. 그는 대학교 사진학과를 졸업하고 나서 전 세계를 돌아다녔다.

랜디스의 사진은 객관적으로 높은 평가를 받았다. 대한민국 항공사의 콘테스트에서 우수상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먹고살기 위해서 자연 풍경 사진가의 꿈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자연 사진은 예술의 영역이었고, 좋아하는 예술을 서른 살이 넘어서까지 지속할 만큼 그의 가정 형편은 부유하지 않았다. 랜디스는 이제—K와 카페에서 일하는 시점에는—동네에 있는 사진관을 운영하는 지극히 평범한 남자가 되었다.

“저는 여장 코스프레를 하고 있다는 부끄러울 수도 있는 사실을, 만난 지 3개월밖에 안 된 랜디스에게 고백했어요. 그때는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고,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나왔는지는 모르겠지만 용기를 내서 코스프레를 하는 ‘여장남자’라는 사실을 밝혔습니다.

그러자 랜디스는, 자신은 주 5일 촬영을 하는 자영업자니까 시간이 남을 때가 있다. 코스프레 사진을 찍고 싶으면 자기 스튜디오에 찾아오라는 제안을 했어요. 스튜디오에 있는 촬영 장비들은 최고급이었고, 지금 S님이 사용하고 있는 최신형 카메라 만큼이나 좋았고요, 제가 돈을 낼 필요도 없었으니까 저는 기꺼이 랜디스의 제안에 응했어요.

랜디스와 저는 2주에 한 번씩 만나서 촬영을 했고, 마음에 드는 사진이 있으면 파일을 받아서 만든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인스타그램 계정에 조금씩 올리기 시작했어요. 평가를 받는 건 처음이었지만 사진의 퀄리티는 좋았으니까 내심 이건 반드시 성공할 것이라는 믿음이 확고했어요.”

믿음이 확고하다. 이 말에 강세를 주면서 계속 이야기했다.

“랜디스와 맺은 관계는 일 년 넘게 이어졌어요. 저는 격주로 스튜디오에 나갔고, 랜디스는 말없이 촬영을 해 주었어요. 종종 그에게 식사를 대접하는 걸로 보답을 했어요. 하지만 역시 그 남자는 ‘포토그래퍼’의 꿈을 버리지 못했던 거에요.”


어느 날부터, 랜디스는 카페에 나오지 않았다. K는 카페 사장님에게 랜디스가 어디로 갔는지 질문했다. 카페 사장님은, 자신도 그의 행방을 알지는 못하지만 촬영 스튜디오를 팔고 어딘가로 갈 예정이라는 말을 랜디스에게 들었다고 말했다. 불과 삼 주 전만 해도 K는 그의 스튜디오에서 촬영을 하고, 사진 파일을 받았다. 그때 사진 파일을 열어보고 후보정이 너무나 완벽한 것에 K는 인간적인 감이 작동하는 걸 느꼈지만, 깊게 생각하지 않고 사진을 편집해서 인스타그램 게시물로 올렸다. 사진은 무려 천 개가 넘는 좋아요를 받았다. 랜디스님 덕분에 좋아요를 이만큼이나 받았다고 카카오톡 메시지를 보냈지만, 그는 K에게 답장하지 않았다.

“랜디스는 촬영 스튜디오를 사진학과 후배에게 넘기고, 권리금과 모은 돈으로 다시 한번 여행을 떠났어요. 저는 랜디스가 한국을 떠나기 바로 전날에 그 사실을 알고 물어봤어요. 동네 사진관을 운영하다가 왜 갑자기 세계 여행을 떠나냐고. 그런 무모한 도전이 결과를 맺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으니까요.

랜디스는 문자 답장을 보냈습니다.

나는 현장 속에 있어야 되는 사람이야. 미안해.

그리고 저는 랜디스가 지금까지 보내준 사진 중에서 쓸 만한 사진을 골랐어요. 이제 사진가는 사라졌지만, 정기적으로 인스타그램에 올리는 게시물을 갑자기 멈출 수는 없으니까요. 그렇게 5개월 동안이나 사진가를 찾아다녔어요. 인스타그램에 태그를 달고 공개돼 있는 한국인 코스프레 사진은 전부 찾아 봤을 거에요. 그러다가 저는 S님이 올린 솔 님의 사진을 보았습니다. 올바른 길에 도달했구나, 나의 기다림이 결실을 맺었구나. 구하면 찾을 것이라는 말처럼, 제 발견에 강력한 확신이 들었습니다.”

K가 처음 메시지를 보냈을 때, 나는 솔에게 K가 메시지를 보냈다고 말했고, 솔은 이렇게 말했다.

“K는 촬영할 사람을 꼼꼼하게 고르는 것으로도 유명해. 들은 소문이지만, 한번 사진사가 정해지면 그 사람과 헤어지기 전까지는 영원히 쭉 간다고 하더라.”

“마음에 안 들어. 왜 하필이면 너야?”

나는 솔의 질문에 대한 답을 이제야 알았다. K는 자신을 빛내 줄 사진가 없이는 스스로 빛날 수 없는 사람이었다. 또한, 온라인 커뮤니티에 퍼져 있는 소문들이 얼마나 근거가 없고 허황된 것인지를 깨달았다. 우리가 살아가는 ‘현대’는 진실이 위협받고 가짜가 진짜의 자리를 차지하는 시대다. 솔이 그렇게 말할 때 보여주는 말투, 독특하게 일그러지는 표정과 눈빛이 떠올랐다.

나는 미소를 지었다. K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내가 왜 웃고 있는지를 알고 있는 것처럼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손을 들어서, 주방 앞에 서 있는 사장님에게 접시를 치워 달라는 부탁을 했다. 그의 접시는 깔끔하게 비워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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