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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민재 Sep 23. 2024

[마술피리] 10화

솔은 사계절 중에서 여름을 가장 사랑한다고 오래전에 말한 적이 있었다. 나는 여름을 특히 좋아하는 이유를 물어보았다. 그녀는 대답했다.

“여름에는 모두 옷을 벗어던지고 새하얀 속살을 드러내고 있으니까, 그게 자유롭기도 하고 즐거워 보이기도 해.”

나는 솔의 이름을 ‘영어학원 이선생’에서 솔의 본명으로 바꾸었다. 그녀의 본명은 성인 이씨와 솔 사이에 한 글자가 있는 평범한 이름이었다. 생각해 보니 예전 여자친구를 전여친이라는 이유로 핍박하거나 차별 대우를 할 필요는 없어 보였다. 나의 전 여자친구라는 것만 아니면, 객관적으로 봐도 그녀는 좋은 사람이었다.

이번에도 솔은 장문의 문자를 보냈다. 수원에서 서울로 올라가는 버스 좌석에서 음악을 들으면서 문자를 읽었다. 그녀는 올해 말, 그러니까 2019년 겨울에는 영어학원 강사를 그만두고 다시 이직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강남의 영어학원에서 자신의 뼈를 깎으면서 일해 보았자 월에 500만 원을 받는 게 다라고 그랬다. 서울에 사는 원어민과 free-talking이 가능한—일부러 한글로 쓰지 않고 영어로 쓴 것 같았다—자신에게 걸맞은 액수가 아니라고 그녀는 강조했다. 그녀의 문자는 대화보다는 논증에 더 가까웠다. 일반 텍스트 문자는 볼드체와 밑줄을 사용할 수 없지만 내 눈에는 볼드체와 밑줄을 군데군데 강조한 글씨체가 보이는 것만 같았다.

솔은 전혀 변하지 않았다. 추측컨대 솔은 그 영어학원에서 매주 50시간이 넘게 일하면서 번 돈을 대부분, 주식이나 코인도 아니고 적금에 집어넣었을 것이다. 부모님 집에서 출퇴근하고 밥이나 옷 등에 많은 돈을 사용하지 않는 그녀라면 한 달에 백만 원이면 충분하리라. 월 500에 세금을 떼면 약 350만 원이니까, 한 달에 250만 원이 남는다. 일 년을 그렇게 개미처럼 일하면 대략 삼천만 원을 모을 수 있다.

풍족한 그녀의 적금통장 사정과는 별개로 나와 그녀의 거리는 전혀, 한 걸음도 좁혀지지 않았다. 우리는 마지노 라인에서 공방전을 벌이는 독일 제국 군대와 프랑스 공화국 군대처럼 밀고 밀리는 싸움을 계속해 나갔다. 솔은 자신이 조금만 더 잘 했더라면 헤어지는 일은 없었을 거라고 말했고, 나는 그녀가 헤어지자는 말에 별다른 이의 없이 헤어지자고 한 자신의 잘못도 있으니까 이번 이별은 누구의 잘못도 아니라고 부연했다. 솔은 사회생활에도 지쳤기 때문에 휴식이 필요하다는 식으로 말했고, 나는 거기에 대고 영어학원에 사직서를 내고 백수가 되라고 말할 수 없어서 여름휴가를 다녀오는 게 어떻겠냐고 제안해 보았다. 나의 제안을 받은 솔의 역제안은 정말로 뜬금이 없었다. 그야말로 마른하늘에 날벼락이었다.

“그럼 이번에 부산에 같이 내려가자. 커플로서가 아니라 친구 사이로 가는 여행. 물론 방은 따로 잡을 거고, 나도 일로 내려가는 거니까 동행하는 시간은 저녁 시간밖에 없을 거야. 비용은 삼분의 이 정도는 내가 부담할게.”

세상에는 여러 종류의 사람이 있게 마련이다. 일본의 시인은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이 “모두 달라서 모두가 좋다”라고 읊은 적이 있다. 모두 달라서 곤란하지만, 더더욱 좋다. 8월 달력을 확인하고 나서 나중에 확답을 주겠다고 말하고서 전화를 끊었다. 명백한 거절도 아니고 승낙이라고 말할 수도 없는 참 애매한 대답이었다.


솔과 부산 여행을 하게 되었다.

호텔과 비행기편을 예약했고, 내가 카드로 결제한 내역을 보내주니까 솔이 결제한 비용을 거의 다 보내줬다. 원래는 삼분의 이 정도만 부담한다고 그랬던 것 같은데 영어학원에서 일하기 시작한 뒤로 삶에 여유가 생긴 것 같았다. 왜 이렇게 많이 보냈냐고 물어보지 않고 고맙다고만 말했다. 솔은 KTX를 타고 내려간다고 그래서 우리는 부산대학교 앞에서 만나기로 했다. 솔은 내가 예약한 호텔에서 가장 좋은 스위트룸을 예약했다고 말했다. 저녁 시간이 남으면 방에서 치맥 파티를 즐기자고도 했다. 치킨도 좋아하고 맥주도 좋아했지만, 그녀의 제안에 유보적으로 대답했다.

부산 여행을 떠나기 전날 K에게서 연락이 왔다. 가족 모임이 있어서 다음 촬영은 어렵고 대신 그다음 주에 만나면 어떨까요 하는 말이었다. 그다음 주에는 랩미팅이 있었지만, 오전 시간에 얼굴을 보여주면 오후 2시부터는 랩에 있거나 없을 수도 있어서, 즉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어서 오후 촬영은 가능하다고 대답했다. 거기에 K는 밤늦게까지 잡을 수 있는 스튜디오를 한번 알아보겠다고 했다. 이번에도 여섯 시간을 채워서 촬영을 할 속셈으로 보였다. 다음 주에는 이래저래 바쁠 테니까 밤 9시에는 끝내달라고 부탁을 하는 듯한, 얼굴에 웃음을 지으면서 비는 듯한 메시지를 보냈다. 노란색 얼굴의 울고 있는 표정을 한 처량한 이모티콘을, 편지 봉투에 붙이는 우표처럼 세 개 첨부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 후로 K에게서 따로 연락은 없었고, 여행 당일은 아침부터 바쁘게 움직였다.

아침 10시 반에 출발하는 비행기를 잡아서, 수원에서는 오전 8시에 출발해야 했다. 김포국제공항에 도착하니 오전 9시 반이었다. 지하철을 타고 오는 길에 모바일 체크인을 해 두어서 서두를 필요는 없었다. 수화물 검사대를 통과하고 편의점에 들렀다. 비행기 안에서 먹을 아침 식사를 구매하기 위해서였다. 바나나를 먹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지만 조금 고민한 다음에 샌드위치와 곡물우유를 샀다. 27번 게이트 앞에서 탑승 시간까지 기다렸다.

비행기를 타고 김해국제공항에 도착한 시간이 오전 11시 반. 부산대로 이동하면 대략 한 시간 정도 걸렸다.

솔에게 전화를 걸어서 언제쯤 도착하느냐고 물어보았다. 그녀는 예상 시각이 대략 1시 정도라고 했다. 나는 부산대 근처에서 점심 식사를 할 만한 가게를 찾아보겠다고 말하고 전화를 끊었다. 네이버 지도를 열어서 부산대 맛집으로 검색했다. 주로 일식을 파는 가게가 많았는데, 그중에서도 돈카츠를 파는 전문점의 별점이 가장 높아서 그곳으로 정했다. 부산대역에서 내려서 역의 1번 출구로 나와서 부산대학교 방면으로 쭉 걸어갔다. 가게에 도착했을 때가 정확히 12시 35분이었는데 대기 인원이 꽤 많았다. 점원에게 2명 대기가 있다고 말하자, 그녀는 지금은 피크타임이라 오래 걸린다고 대답했다. 이런 더운 날씨에 바깥에서 기다린다면 곧바로 쓰러질 것 같았다.

예전에 누군가에게서 들었는지 아니면 위키에서 봤는지 모르겠지만 부산대학교 구 본관, 지금은 인문대학 건물이 김중업이 지은 건물이라고 했던 게 기억이 났다. 가게 점원에게 잠깐 다른 곳에 가 보겠다고 언질을 주고서 부산대학교 정문 앞으로 갔다. 정문부터 가파르지는 않지만 어느 정도 경사가 있는 언덕이 있었다. 배낭에서 물병을 꺼내서 한 모금 물을 마시고 언덕을 걸어서 올라갔다. 경사로 위에는 평지가 있었는데 거기에는 학생들이 운동을 하고 있는 운동장이 있고 그리고 오른쪽으로 학교 건물이 조용하게 서 있었다. 저 멀리 하얀색으로 빛나는 철근 콘크리트 건물이 보였다. 바로 인문대학 건물이었다.


완만한 경사가 있는 언덕을 천천히 올라갔다. 부산대학교에는 나무들이 많았다. 인문대학의 주변에도 포플러나무나 은행나무처럼 보이는 나무들이 많이 심어져 있었다. 여름이라서 이들은 전부 푸르른 녹음을 드러내고 있었는데, 그게 건물의 새하얀 빛깔과 아주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건물의 기둥이 바깥으로 드러나 있는 곳으로 가니까 노란색 테이프가 붙여져 있고 지금은 보수 중이라서 건드리지 말라는 말이 적혀 있었다. 부산대가 생기자마자 바로 지은 건물이니까 거의 칠십 년 가까이 된 건물이다. 기둥은 위에서 아래로 내려오면서 폭이 좁아졌다. 기둥의 폭은 성인 손바닥으로 두 개 정도였고 그렇게 두껍지는 않았는데 건물의 하중을 제대로 지탱하고 있었다. 나는 디지털카메라로 기둥과 창문 사진을 찍으면서 사람이 드나들지 않을 법한 구석으로 들어가 보았다.

여름 방학 기간이라서 사람은 적었다. 정사각형에 가까운 사각형으로 난 좁은 창문으로는 사람들의 움직임이 보이지 않았지만, 계단을 타고 위에서 내려오는 사람은 한두 명 눈에 들어왔다. 나는 그 사람들에게 건물의 건축가가 김중업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냐고 갑작스레 물어보고 싶었지만 거리가 너무 멀어서 생각만 하고 그만두었다. 오래된 건물이라서 벽면 구석의 페인트는 군데군데 벗겨져 있었다. 어떻게 타설 했는지는 짐작할 수 없지만 정교하게 타설 한 콘크리트의 회색 빛깔이 내 시선을 사로잡았다. 좋은 건물은 페인트의 도장이 벗겨져도 여전히 아름답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아까 사람들이 내려오던 계단도 나선형으로 되어 있었는데 건물 바깥에, 그러니까 건물 내부에 있는 계단이 아니라 유럽식 아파트처럼 건물의 옆에 설치된 계단이라서 골조가 그대로 보였다. 저런 계단을 만들기 위해서는 설계도의 단계에서 이미 정교하게 완성되어 있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이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서 인문대 정문을 보려고 바깥으로 걸어서 나왔다.

인문대 정문은 하얀색 널빤지 같은 것이 2층 바로 밑에서 쭉 앞으로 뻗어 나왔다가 바로 밑으로 툭 하고 떨어지는 모양이었다. 이게 그대로 정문의 현관을 구성했다. 일설로는 김중업이 프랑스에서 유학할 때 르 코르뷔지에의 제자로 일하면서 모던한 건축 양식을 그대로 배웠다고 하는데, 부산대의—내가 지금 눈앞에서 보면서 감탄하고 있는 바로 이것—건물도 모더니즘을 가감 없이 완벽하게 체현하고 있는 하나의 위대한 작품이었다. 김중업의 건물 중에서는 나중에 철거되거나 개조된 건물이 상당히 많은데, 부산대 본관으로 쓰였던 이 건물도 과거에는 철거를 하자는 제안이 있었다고 한다. 한국 사람들은 새로 건물을 지으면 이전 건물을 철거하고 싶다는 욕망이 솟아오르는 것일까. 그렇지만 김중업이 설계한 소중한 건물이라는 이유로 다행스럽게 철거를 면하고 인문대학 건물로 활용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건물을 온전히 감상하는 것을 심각하게 방해하는 장애물이 있었다. 하얀색 기둥으로 만들어진 현관 앞에 거대한 떡갈나무가 서 있어서 본관의 대부분을 가리고 있었다. 물론 나무에게는 죄가 없지만 처음에, 아마도 건물이 세워질 때 즈음에 같이 심었던 나무가 지나치게 크게 자라 버려서 건물 대부분을 가린다는 건 문제가 있다. 만약에 내가 부산대학교 학생이라면 인문대 앞을 지나갈 때마다 저 나무를 다른 곳으로 옮기고 싶다는 생각을 했을 것 같다. 여하튼 정문에서 멀리 떨어져서 이 건물을 바라보면 배 같다는 느낌도 들었는데, 4층 정도로 낮은 높이라서 그런가 태평양을 가로지르는 호화 유람선이 떠오르기도 했다. 그 자리에 서서 십여 분 가량 건물을 감상하면서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사진을 찍기도 했다.

너무 늦으면 대기가 뒤로 밀릴 것 같아서 돈카츠 가게로 돌아가는 발걸음을 서둘렀다. 걸어가는 도중에 솔에게서 전화가 왔다.

“너 어디야?”

“나는 지금 부산대학교 안에 있어. 곧 돌아갈거야.”

“아, 부산대에는 뭐 때문에 간 건데?”

“그냥 뭐. 산책도 하고 사람들도 구경하고 건물도 감상하고 그렇지. 김중업이라는 건축가가 있는데 이 사람이 한국에 돌아와서 지은 건물이 구 부산대 본관이자 지금은 인문대로 쓰이고 있거든. 너도 나중에 봐.”

“시간이 되면. 아참, 호텔 말인데 호텔 내부에 수영장이 있다고 하더라. 난 수영하는 사람이라서 수영장이 있으면 그냥 지나칠 수가 없거든, 그러니까 너도 생각이 있으면 수영복을 챙겨서 와. 가게에는 몇 시까지 가면 돼?”

“어디 보자…… 지금이 55분이니까 1시 10분까지는 도착하면 될 거 같은데.”

“그럼 택시 기사님한테 부산대역이 아니라 바로 가게 앞으로 가 달라고 할게. 차가 약간 막히기는 해도 곧 도착할 거야. S는 언제나 맛집을 잘 찾으니까 이번에도 기대하고 있을게. 예전부터 너는 그런 신기한 재능이 있었잖아.”

그래, 가게 앞에서 보자 하고 전화를 끊었다. 부산대 정문 앞에서 인문대 방향을 다시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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