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과 함께하는 멜로디 Melody at Night with You
트랙 리스트
Disk 1
1 I Loves You, Porgy
2 I Got It Bad (And That Ain't Good)
3 Don't Ever Leave Me
4 Someone to Watch Over Me
5 My Wild Irish Rose
6 Blame It On My Youth / Meditation
7 Something to Remember You By
8 Be My Love
9 Shenandoah
10 I'm Through With Love
이제 키스 자렛 트리오가 연주한 앨범을 충분히 감상하고 이야기했으니, 필자가 좋아하는 자렛의 앨범 중에서도 가장 자주 듣는 솔로 앨범 『The Melody at Night, With You』를 한 번 다뤄보고 싶다. 이 앨범은 최소한 세 가지 의미에서 연주자에게, 그리고 재즈 팬들에게 있어 소중한 앨범이다. 첫째로, 앨범은 키스 자렛이 맞이한 두 번째 아내인 Rose Anne에게 헌정된 앨범이다. 키스 자렛의 의도였는지는 몰라도, 트랙 리스트의 다섯 번째 노래의 제목이 "나의 야생 아이리쉬 장미 (My Wild Irish Rose)"로, 아내의 이름과 흥미롭게 일치한다. 둘째로, 앨범은 자렛이 만성 피로 증후군(chronic fatigue syndrome)과 싸우던 와중에, 피아노 연주 재활을 하면서 나온 앨범이다. 자렛은 1996년에 일본 전국 투어를 마치고(이 해의 라이브 연주 중에서 가장 좋은 것들이 Tokyo '96이라는 앨범으로 1998년에 발매된다), 미국으로 돌아와서 잠시동안 휴식기를 갖는다. 어쩌면 이 시기는 자렛의 인생에서 가장 힘든 시기였을 수도 있을 거다. 마지막으로, 앨범은 키스 자렛이 지금까지 녹음한 솔로 앨범 중에서도 가장 퀄리티가 탁월하다.
필자는 "기념비적인 앨범"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더라도 지나친 표현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한 사람, 자신의 아내에게 선물로 주어진 앨범이 이만큼이나 서정적이고, 애절하고, 피아노 위에 닿는 음 하나하나가 아름다울 수 있는 것일까. 자신의 집에 붙어 있는 스튜디오에서 작은 녹음기를 사용해서 녹음한 음반이라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다.
미국 잡지 Time지와 1999년 11월에 가진 인터뷰에서, 자렛은 앨범이 나온 과정을 이야기했다. (출처는 영문 위키백과)
1997년 12월, 아내(Rose를 말함)에게 줄 크리스마스 선물로서 녹음을 시작했습니다. 제 함부르크산 스타인웨이 피아노를 방금 수리했고, 시험해 보고 싶었거든요. 제 작업실이 집 바로 옆에 있어서, 아침에 일어나 기분이 괜찮으면 녹음기를 켜고 몇 분 동안 피아노를 쳤습니다. 더 이상은 피곤해서 할 수가 없었죠. 그러다 마이크의 위치와 악기의 새로운 감각이 맞아떨어지기 시작했어요. 너무 부드럽게 연주할 수 있었고, 멜로디와 곡의 내면적인 다이나믹이...... 이러한 기적은 준비되어 있어야 비로소 맞이할 수 있는데, 사실 그저 머리를 굴릴 만한 힘이 없었기 때문이기도 했습니다.
1999년 10월에 가진 Time과의 인터뷰 중에서
도합 10개의 곡은 모두 자렛의 자택 스튜디오에서 작은 녹음기를 사용해서 미세한 음까지 잡을 수 있도록 녹음되었다. 타임지와 인터뷰에서 스스로 고백하고 있는 것처럼, 자렛은 이 당시에 심한 만성피로 증후군을 앓고 있어서 오랜 시간 동안 연주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앓고 있는 지병이 자렛의 연주에 대한 갈망을 억누르기는 불가능했다. 그는 재활 차원에서 하루에 몇 분씩 연주를 계속 했다.
그러면서 여러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자렛은 새 스타인웨이 피아노와 마이크의 적절한 위치를 찾아낸다. 그렇게 해서 나온 앨범이, 바로 『The Melody at Night, With You』이다. 이 앨범에 대해서는 추가적인 설명이 필요하지 않을 것 같다. 그냥 가벼운 마음으로 재생 버튼을 누른다면, 나머지는 음악이 알아서 모든 일을 해 줄 거라고 예상한다. (이 앨범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트랙은 6번 트랙 "Blame It On My Youth / Meditation"과 9번 트랙 "Shenandoah"이다.)
키스 자렛은 생애의 절반 이상을 피아노 앞에서 보냈다. 1966년, 만 21세이던 젊은 시절부터 클럽에서 피아노를 연주했고, 키스 자렛 트리오와 키스 자렛 쿼텟을 결성해서 수많은 도시들을 돌아다니며 음악의 즐거움과 음악을 들을 때만 우리의 마음 속으로 들어오는 아름다움을 알려주기 위해 노력했다. (이것을 가능하게 만든 건, 세계여행을 가능하게 만든 여객기의 발전과 유럽 전역에 깔려 있는 철도망 덕택이다) 내부로는 만성피로 증후군과 끊임없이 싸우면서, 외부로는 공연장의 침묵을 흐트리는 관객과 그리고 부실한 그랜드피아노와 싸우면서 키스 자렛은 오직 그 자신만이 걸어나갈 수 있는 소박한 길을, 묵묵하게 걸어나갔다.
자렛이 믿고 있는 종교가 있는지 없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그가 종교인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그가 재즈 피아니스트로서 걸어 온 52년간의 세월은 자렛을 단순한 피아니스트로서가 아니라 오랫동안 해결할 수 없는 인생의 문제를 앞에 두고 골몰한 구도자로서 바라보게 만들어준다.
우리는 음악을 듣기 위해서 콘서트홀에 모인다. 다른 목적이 있어서 콘서트홀에 모이는 것이 아니라, 오직 연주자와 마주하고 음악과 하나 되기 위해서 일부러 시간을 내서 콘서트홀에 모인다. 2013년에 키스 자렛 트리오가 내한했을 때 모인 사람들도, 1975년에 그가 쾰른을 찾았을 때 모인 사람들도, 1986년의 유러피안 투어에서 먼 길을 걸어와서 모인 사람들도, 그리고 1996년의 일본 투어에서 시간을 쪼개서 연주회장에 모인 사람들도, 모두가 진심으로 재즈를 사랑했다. 그들은 재즈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순수함과 열정을 찾아서 키스 자렛의 콘서트를 찾아왔다. 이제 키스 자렛은 연주가 불가능한 몸이 되었지만, 그를 기억하려는 팬들의 마음이 있다면, 키스 자렛이 연주하지 못한다고 해도 여전히 그의 정신은 앨범들 속에 살아서 숨 쉴 것이라고 믿는다. 예술은 길고, 인생은 매우 짧다.
연재는 10월 22일부터 새로운 연주자로 이어집니다.
두번째로 다룰 연주자는, 팻 메스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