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도, 미래에도, 우리 곁에 있을 키스 자렛 트리오의 명반
이번에 다룰 앨범은 세 장입니다. 발매된 순서대로,
Still Live (1988년),
The Melody at Night, With You (1999년),
마지막으로 The Out-of-Towners (2004년)
이고요. 『스틸 라이브』와 『더 아웃 오브 타우너즈』는 키스 자렛 트리오가 연주한 라이브를 녹음해서 발매한 앨범이고 『더 멜로디 앳 나이트, 윗 유』는 키스 자렛이 혼자 테이프에 녹음한 음원을 발매한 솔로 앨범입니다.
그럼, 현대 재즈의 무궁무진한 세계로 다 함께 들어가 볼까요.
트랙 리스트
Disk 1
1 My Funny Valentine
2 Autumn Leaves
3 When I Fall in Love
4 The Song is You
Disk 2
1 Come Rain or Come Shine
2 Late Lament (늦은 넋두리)
3 You and the Night and the Music / Extension / Intro / Someday My Prince Will Come (Melody)
4 Billie's Bounce
5 I remember Clifford
앨범 『스틸 라이브』는 <클라비어 서머 1986>이라는 제목의 유럽 투어를 하는 중에 녹음되었다. 개리 피콕, 잭 드조네트 그리고 자렛으로 구성된 키스 자렛 트리오는 7월 1일부터 7월 26일까지 서유럽과 튀르키예를 한 바퀴 도는 강행군을 하면서 유럽의 재즈 팬들에게 투어에 대한 열정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트리오는 1986년 7월 13일에 독일 뮌헨의 필하모니 콘서트홀(Philharmonie am Gasteig)에서 재즈 스탠다드를 마음껏 연주했다. 이 날, 뮌헨의 콘서트홀에서 피로했던 연주가 그대로 스틸 라이브라는 앨범이 되었다.
오래전에 이 앨범을 처음 들었을 때는 자렛 트리오가 연주하는 재즈 스탠다드의 완성도가 인간이 도달했다고는 믿어지지 않을 만큼 뛰어나다는 사실에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포문을 여는 "My Funny Valentine"에서 드럼과 피아노가 호흡을 맞추면서 서로가 연주하는 방향성을 매우 짧은 시간에 이해하며, 운전대를 조작하듯 연주를 즉흥적으로 바꿔나가는 것이 대표적이다. 또한 "The Song is You"는 무려 17분 33초나 연주했는데 이것도 즉흥연주의 결과물이다. 당시 자렛 트리오는 처음 듣기 시작한 내 귀에는 무척이나 생경하게 들렸던 것으로 기억한다.
2번 디스크에서 짚어볼 연주는 1번 트랙 "Come Rain or Come Shine (비가 오거나 아니면 맑거나)"과 3번 트랙 "You and the Night and the Music / Extension / Intro / Someday My Prince Will Come (Melody)"이다. 비가 오거나 아니면 맑거나라는 제목의 스탠다느는 해롤드 아렌이 작곡하고 조니 머서(Johnny Mercer)가 작사한 인기 가요다. 1946년도에 처음 나왔고 지금까지도 가수들이 부르는, 재즈 연주자들이 즉흥연주를 하는 유명한 스탠다드다. 여기에서 키스 자렛 트리오가 보여주는 섬세한 감정, 그리고 튀지 않으면서도 예술적인 깊이를 보여주는 즉흥연주는 듣는 사람에게 즐거움을 준다. "Come Rain or Come Shine"이 끝나고 나서부터 이어지는 "Late Lament"도 섬세한 감정이 훌륭하다.
3번 트랙은 두 가지 노래가 한 트랙 안에 초콜릿 치즈 케이크처럼 하나로 융합돼 있어서 주목할 만하다. 이러한 시도는 다른 재즈 앨범에서는 찾아보기 어렵고, 특히 1986년에는 매우 과감한 시도였을 것이다. 앞의 "You and the Night and the Music"이 끝나고 나면, 잠깐의 침묵이 있고 나서 여러 박자로 반복되는 선율 하나가 제시된다. 첫 번째 노래가 연주의 종결과 함께 사라지지만 완전히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미래의 멜로디에 대한 예감을 남기면서 천천히 소멸한다. 그리고 반복되는 선율이 다음으로 나올 노래가 무엇이 될지 기대감을 증폭시키고 희망을 부여한다.
이윽고 반복되는 선율은 다음 멜로디를 맞으며 하나의 곡으로 정착한다. 자렛 트리오가 이번에 연주하는 노래는 "Someday My Prince Will Come", 한국어로는 "나의 왕자님이 언젠가는 오실 거예요"라는 제목의 유명 가요다. 스탠다드 중에서는 영화의 주제가로 쓰인 뒤에 차용된 경우가 많다. 이 노래 역시도, 1937년에 나온 디즈니의 <백설공주와 일곱 난쟁이>에서 주제가로 쓰였다.
약 12분 14초부터 <섬데이 마이 프린스 윌 컴>의 인트로가 시작되며, 발단부가 드럼과 베이스의 연주와 맞물려서 기존에 자렛이 연주했던 <섬데이 마이 프린스 윌 컴>과는 다른 버전의 즉흥연주로 변화한다. 두 개의 다른 연주를 하나로 이어서 원 트랙으로 제시해서 보여줄 생각을 누가 했는지 모르겠다. 키스 자렛이 그 아이디어를 처음으로 냈을까? 그가 아니라면, ECM의 음향 엔지니어닌 만프레드 아이허가 그 아이디어를 내고 본인이 직접 음악을 편집했을까? 전해지는 이야기가 없으므로, 나는 만프레드 아이허가 그런 아이디어를 냈을 것이라고 추측한다.
길고 길었던 3번 트랙이 끝나고 나면, 이후 앨범은 "Billie's Bounce"와 "I Remember Clifford"를 연주하고 나서 박수갈채와 함께 마무리된다. 키스 자렛 트리오는 이 날, 1986년 7월 13일에, 뮌헨의 필하모니 콘서트홀에서 성공적으로 연주를 마쳤다. 더운 여름날이었고, 실내도 마찬가지로 사람들의 열기로 더웠을 거다. 연주를 마치고 난 후 키스 자렛 트리오는 새 연주를 준비하기 위해서 바쁘게 짐을 챙기고, 다른 도시로 가는 열차나 차량에 올랐을 거다. 아직 13일은 섬머 투어가 진행되는 한창이었고, 트리오는 16일에 열릴 이스탄불 연주를 기대하고 있었다.
2002년, 스테레오파일(미국에서 발행되는, 음악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월간지)의 로니 브라우넬은, 트리오의 활동을 회상하면서 이렇게 쓰고 있다. (인용 출처: 영문 위키백과)
지난 30년 동안 키스 자렛은 ECM 레이블의 리더로서 46장의 앨범을 발표했습니다. 그 중에서 가장 뛰어난 앨범들은 그의 "스탠더드 트리오"와 함께한 12개의 앨범이고, 그 중에서도 가장 뛰어난 앨범은 『Still Live』입니다. 자렛과 게리 피콕, 잭 디조네트는 리처드 로저스에서 오스카 해머스타인, 해럴드 알렌, 키스 자렛으로, 그리고 즉흥적이고 자유로운 해석적 변주로, 다시 찰리 파커로 자연스럽게 이어지며, 어느 순간 조니 머서의 음악이 끝나고 이 트리오의 연주가 시작되는 경계는 더이상 중요하지 않게 됩니다. (3번 트랙에서 보여준 융합을 가리키는 듯하다.) 그 모든 것이 하나의 부족적인 춤처럼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1986년 뮌헨 필하모닉 홀에서의 이 밤에서, 키스 자렛은 ‘빛’에 도달하는 순간을 맞이했습니다. "When I Fall in Love"가 끝난 후, 당신은 그가 다시 피아노를 칠 필요가 있었는지 궁금해 할 것입니다.
by Ronnie Brownell
재즈 앨범에 대한 음악평론가의 평가 중에서는 비판 없이 가장 칭찬에 가깝다. 그만큼이나 키스 자렛 트리오의 연주가 대단하며, 그 중에서도 스틸 라이브의 성과가 탁월하다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트랙 리스트
1 Intro - I Can't Believe That You're in Love With Me
2 You've Changed
3 I Love You
4 The Out-of-Towners
5 Five Brothers
6 It's All in the Game
자, 앨범 제목부터 카리스마가 있다. 영어로는 이해가 되는 제목이지만, 왜 이게 앨범의 타이틀인지 궁금하다. 앨범 자켓도 역시나, ECM 레코즈의 앨범답게 쿨하기 그지없다. 흑백사진의 자켓 속에는 짐을 들고 길을 떠나는 한 사람(남자인지 여자인지 알 수 없다)의 뒷모습이 담겨 있다. 앨범의 뒷면에는 아예 아무런 뒷모습도 보이지 않는다.
타운 밖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스스로를 말하는 걸까? 전통적인 클래식 음악과 70년대 이후 대중음악의 자리다툼에서 승리한 락 음악이라는 두 개의 '타운 = 대도시' 바깥에서 살아가고 있는 본인의 처지를 『더 아웃 오브 타우너즈』라는 단어로 익살스럽게 표현하고 있는 것인지 물어보고 싶다.
위 앨범도 스틸 라이브와 마찬가지로, 2001년 여름에 이뤄진 유럽 투어를 하던 중에 녹음된 라이브를 원재료로 해서 편집을 거쳐 발매된 것이다. 트리오가 계획한 유럽 투어의 일정은 2001년 7월 16일부터, 다음달인 8월 3일까지였다. 21세기 첫 해의 유럽 투어도 트리오가 거쳐 왔던 투어들과 마찬가지로 쉬운 일정은 아니었던 것 같다. 7월 26일에 이탈리아 베네치아에 있는 연주회장에서 라이브 연주를 하고, 바로 악기와 짐 등을 챙겨서 뮌헨으로 건너가서 28일에 라이브 연주를 했다. 장소는 바바리안 스테이트 오페라(Barbarian State Opera)였다. 15년 전의 뮌헨 투어와는 다른 장소라는 걸 알 수 있다.
앨범의 분량을 감안하면, 라이브에서 보여준 연주 중에서 가장 잘 나온 연주를 뽑아서 가공한 뒤에 케이스에 담았다는 걸 짐작할 수 있다. 때와 장소에 따라서 달라지기는 해도, 라이브 시간은 짧으면 2시간 ~ 길어지면 3시간 정도 되었으니까. 앵콜 연주까지 감안하면 세 시간 정도는 잡아야 할 거다.
글을 쓰다 보니까 새삼스레 드는 질문이 하나 있다. 유럽인들은 투어를 할 만큼이나 현대 재즈를 좋아하는 걸까? 만약 유럽인들의 재즈 애호가 사실이라면, 지금 유럽에서 유행하고 있는 K-Pop 아이돌은 (그리고 2020년대에 들어서 몰아 치는 한류붐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는가? 지난 세기에 수많은 (미국 출신의) 재즈 연주자들이 자신의 살 길을 찾아서, 유럽을 제2의 고향으로 여기면서 찾아오고 연주해 온 걸 고려한다면, 유럽인들이 재즈를 마음으로부터 사랑하는 건 맞는 말 같다.
그럼에도, 유럽인들이 여전히 'Jazz'라고 하는 어찌보면 한물 간 장르를 사랑한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 프랑스에서 열리는 몽트뢰 재즈 페스티벌은 여전히 세계에서 가장 크게 열리는(혹은 두 번째로 크게 열리는) 재즈 페스티벌이다. 재즈 앨범이 팔리는 나라를 집계해 보면, 서유럽의 여러 국가들이 순위권에 들어간다. 한국에서도 '흑인음악' 붐과 더불어서 근현대 재즈 음반을 좋아하는 애호가들이 조금씩 늘어나고는 있지만, 거대한 매스 마켓을 형성하지 못하고 작은 시장을 이루는 데 그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라섬 재즈 페스티벌이나 서울 재즈 페스티벌(서재페라고도 불림)이 명맥을 잇고 있다는 점은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앞으로 재즈 페스티벌이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으나, 재즈를 듣는 한국 사람들이 더욱 늘어나기를 소망한다.
이어서, 앨범 『더 아웃 오브 타우너즈』의 음악에 대해 간략하게 소개해보려 한다. 개인적으로는 모든 연주들이 원곡의 세계를 아름답게 그려내고 있다고 느껴졌다. "I Love You"라는 직설적인 제목의 곡에서는, 중간에 드러머인 잭 드조네트가 하이햇과 라이드를 3분 가까이 반복적으로, 집요하게 두드리는 음악적 장면이 있는데, 이러한 집요한 반복이 주는 긴장감과 설레임이 새롭게 느껴졌다. 제목과 같은 곡 "The Out-of-Towners"는 무려 19분이나 끊어짐 없이 이어진다. 비유하자면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은 나머지, 긴 시간을 들여서 전부 해 버리는 사춘기 남자애의 솔직함이 떠오른다. 키스 자렛 트리오는 라이브를 하던 시점에는 이미 50~60대의 장년층(또는 할아버지)이였지만, 연주에서는 노회한 느낌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오히려 피아노와 드럼의 대화, 드럼과 베이스의 무언의 대화가 산뜻하게 느껴진다. 부드럽고, 민첩하고, 또한 순수하다.
앨범은 "Five Brothers"로 바뀌면서 본연의 색채를 찾아나가는 데 성공한다. 창조성이 앞의 연주들에서 한 번 크게 폭발했다가, 산의 봉우리를 지나서 천천히 하강하는 자전거의 이미지가 눈 앞에 그려진다. 마지막 곡 "It's All in The Game"에서는 고양된 감정들이 차례차례 수습이 된다. 이번 연주가 실제로 뮌헨에서 있었던 라이브에서도 마지막으로 연주된 노래인지는 알 수 없지만, 활기찬 앨범을 마무리하는 연주로는 적합하게 느껴진다. 이제 나는 자렛의 솔로 앨범인 "The Melody at Night, With You"를 다뤄보려고 한다. 하지만 한 화의 분량으로는 이미 한도를 초과해 버렸으니, 다음 화에서 키스 자렛의 연재를 마무리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이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