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스 자렛이 부릅니다, Somewhere Over the Rainbow
키스 자렛의 커리어는 1960년대 중반부터 2018년까지 중단 없이 이어졌다. 필자가 자렛의 커리어를 과거형으로 기술하고 있는 이유는, 바로 자렛의 커리어는 그의 건강이상과 함께 중단되었기 때문이다. 그것도 영구적으로.
2018년 2월, 자렛은 뇌졸중을 겪었고 그 이후로 연주 활동을 그만두었다. 이미 칠십대 중반이니 연주를 그만 둘 나이기도 하지만, 만약 자렛이 뇌졸중을 겪지 않았다면 적어도 코로나19가 유행하기 전까지는 연주 활동을 계속 이어 나갔을 것이다. 2018년 5월, 그는 동일한 증상을 두 번째로 겪으면서 신체의 일부분이 마비되었고(paralyzed), 왼팔과 왼손을 자유자재로 사용할 수 없게 되었다. 다시 말해서 자렛은 평생을 그렇게 살아 온 재즈 피아니스트로서 활동할 수 없는 몸이 되었다. 자렛이 남긴 녹음들과 함께 그는 살아 있는 레전드로서, 남은 삶을 살아내고 있다. 얼마나 지루하고 긴 삶일지는, 필자의 입장에서 짐작할 수조차 없다.
다시 솔로 연주 음반에 대한 이야기로 돌아오도록 하자. 자렛은 1995년에 이탈리아의 피렌체 지방에 있는 라 스칼라 오페라 대극장에서 솔로 연주를 성공적으로 마쳤고, 이때 녹음한 연주는 프로듀서 만프레드 아이허(지난 연재 참조!)의 천지창조와도 같은 손길을 거쳐서 동일한 연도에 「La Scala」라는 앨범으로 발매되었다. 구성은 단순하지만, 이런 단순한 구성 이상으로 앨범이 가진 음악적인 깊이와 넓이는 웅숭깊다.
Disk 1
Part 1
Part 2
Encore: Over the Rainbow
여기서 퀴즈를 하나 제시해 본다. 마지막 곡, <Over the Rainbow>는 어느 영화에서 처음 나온 노래일까?
정답은... 1939년에 개봉한 오즈의 마법사!
오버 더 레인보우, 이렇게 아름다운 노래는, 구름 너머로 보이는 무지개 너머에 있는 희망찬 미래를 소망하고, 언젠가는 그 소망이 현실화될 것이라고 믿는 내용이다. 그러나 <Over the Rainbow>는 단순히 재즈 피아노 용으로 편곡된 것이 아니라, 수많은 현대 재즈 피아니스트에 의해서 매우 다양한 연주로 재창조된다. 기본 선율이 단순해서 새로운 노래를 만들기에도 딱 좋았다.
자렛은 여러 차례 <Over the Rainbow>를 앙코르로 연주했고, 현재 발매된 앨범 중에서는 <라 스칼라>와 더불어서 <다수의 천사들(A Multitude of Angels)>, <Munich 2016>에 수록되어 있다.
그렇다면 <라 스칼라>에 수록되어 있는 <Over the Rainbow>는 어떨까?
먼저 시작되는 음계는 "Somewhere over the rainbow ~"로 감미롭게 말하는 가사를 따라간다. 원곡의 선율을 그대로 모방하면서, 이따금 엇나가는 음표를 덧붙인다. 변화와 아티큘레이션과 즉흥 연주가 최대한 절제되어 있으며 선율들을 훼손하지 않으면서 먼 곳에 가 닿으려는 원곡의 감정을 잘 지켜낸다.
이후로도 자렛의 피아노는 특유의 악! 하는 내지르는 소리까지 억제하면서 열정을 억누르면서 온건한 방향으로 나아간다. 그러나 3분 10초 무렵부터 음계가 에스컬레이션을 이루면서 감정이 점차 고조되어, 마지막 패시지에 이르러서는 완전히 만개한다. 마치 겨울을 버티고 난 꽃봉오리가 봄이 와서 피어나는 것처럼, 자렛은 무지개 너머에 우리가 바라던 희망이 있다는 것을 간절하게 표현해낸다. 마지막 음이 끝나면서, 라 스칼라 오페라 극장을 가득 채운 관객들의 함성소리와 우레와 같은 박수 소리가 30초간 이어지고, 앙코르로 연주했던 <Over the Rainbow>는 끝이 난다. 다른 연주들과 비교하였을 때 자렛의 이번 연주는 혼신의 힘을 다해서 감정을 억누르고, 절제하려는 마음이 드러나 있어서 더욱 아름답게 느껴진다.
Disk 1
"Part I" - 13:58
"Part II" - 7:23
"Part III" - 6:15
"Part IV" - 4:15
"Part V" - 4:29
"Part VI" - 6:08
"Part VII" - 2:20
Disk 2
"Part VIII" - 8:08
"Part IX" - 3:27
"Part X" - 7:44
"Part XI" - 9:01
"Part XII" - 3:19
"Answer Me, My Love" (Fred Rauch, Gerhard Winkler) - 4:40
"It's A Lonesome Old Town" (Charles Kisco,Harry Tobias) - 5:43
"Somewhere over the Rainbow" (E.Y. Harburg, Harold Arlen) - 6:43
이후로도 자렛은 여러 차례 동일한 곡을 연주했다. 앞에서 잠시 언급한 것처럼, ECM Recordings에서 나와 있는 라이브 앨범 중에서는 세 장의 앨범이 <Over the Rainbow>를 포함하고 있다.
필자는 분량의 한계로 인해서, <다수의 천사들>은 건너 뛰고 <Munich 2016>에 수록된 같은 곡을 다루고 싶다. <다수의 천사들>은 자렛이 이탈리아의 여러 지방 도시들, 모데나, 페라라, 토리노, 제노바를 돌면서 연주한 솔로 라이브를 수록하고 있으며 모두 뛰어난 연주임에도, 초심자가 듣기에는 난이도가 제법 높다. 물이 맑아 보여서 뛰어들고 싶어지지만 수심이 깊은 수영장이라고나 할까. 그래도 앙코르로 연주하는 대니 보이와 <Over the Rainbow>만 들어도 만족감이 높다. 현대 재즈에 입문하는 사람이라면 이번 기회에 스탠다드에도 익숙해질 겸 해서 여러 곡들을 들어보기를 바란다.
<Munich 2016>은 제목 그대로 독일의 남부 지방 뮌헨에서 연주한 라이브다. 우리에게는 분데스리가의 바이에른 뮌헨이 있는 곳으로 유명하다. 즉흥 연주라는 관점에서 바라본다면, 이 앨범에 수록된 <Over the Rainbow>는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기교가 돋보인다. 대체 어떻게 이런 생각을 했는지 믿기지 않을 정도. 시작부터 틀을 깨면서 1차원이 아니라 2차원적으로 새로움을 부여하면서 연주를 시작하고 있으며, 또한 연주 중에도 자렛은 즉흥적으로 멜로디를 수정한다. 아마도 어떤 버전이 나은지를 결정하는 건 필자가 아니라 찾아듣는 독자들의 몫이 아닐까? 비교의 대상으로 카네기홀에서의 연주를 아래에 링크해 둘 테니, 들어 보기를 바란다.
https://www.youtube.com/watch?v=DHGoG7_rR5w&pp=ygUYb3ZlciB0aGUgcmFpbmJvdyBqYXJyZXR0
연주라는 표현 수단을 잃고 자신의 집에서 홀로 있을 키스 자렛의 기분이 어떨지는 잘 모르겠다. 키스 자렛 트리오는 2013년에 내한한 적이 있는데, 이제 개리 피콕은 저세상으로 갔고, 키스 자렛은 홀로 있다. 그들이 내한했을 때 나는 재즈 음악을 거의 듣지 않았고, 일본 음악과 클래식에 심취해 있었는데 바꿀 수 없는 과거이기는 하지만 그 당시에 키스 자렛을 몰랐던 것이 후회가 된다. (이게 후회할 만한 대상인지는 모르겠지만, 세상에는 이런 종류의 후회도 있지 않은가.) 그가 앓고 있는 질병이 완전히 치유되기를 소망한다. 예전처럼 왼손을 자유자재로 사용할 수 있기를 바란다.
이제 자렛의 유명한 앨범들을 중심으로, 키스 자렛 트리오의 음악 세계를 펼쳐 보여주려고 한다.
다룰 앨범은 세 장이다.
Still Live (1988년), The Out-of-Towners (2004년), 그리고 Jasmine (2010년)이다.
만약 그럴만한 지면의 여유가 있다면, 솔로 앨범이지만 이지 리스닝이 가능한 <The Melody at Night, with You>를 짧게나마 다뤄 볼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