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스 자렛의 무궁무진한 음악 세계 속으로
Album: The Köln Concert (1975), La Scala (1995), A Multitude of Angels (2016)
재즈를 잘 모르는 사람들이라고 해도, 빌 에반스와 키스 자렛이라는 사람들의 이름은 한 번쯤 들어 보았을 것이라고 예상한다. 이들은 재즈 피아니스트다. 그리고 현대 재즈의 역사에, 지울 수 없는 업적을 남겼다.
키스 자렛은 1945년에 미국 펜실베니아 주에서 태어났다. 자렛은 유년 시절부터 절대음감과 함께 천부적인 음악 재능을 가지고 있었다. 일곱살에는 그의 첫 번째 리사이틀에서 바흐, 베토벤, 모차르트 등을 연주했다고 전해진다.
그는 펜실베니아의 엠마오 고등학교에서 재즈를 배우고 난 뒤부터 현대 재즈에 관심을 갖고 시작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할 무렵에, 자렛은 나디아 불랑제(Nadia Boulanger)에게 클래식 작곡을 공부하면 어떻겠냐고 하는 제안을 받는다. 만약 자렛이 이 제안을 받고 파리로 건너갔다면, 작곡가로서 성공적인 미래는 따 놓은 당상이겠지만, 그는 불랑제의 제안을 정중하게 거절한다. 엠마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나서, 한국에서도 인지도가 있는 버클리 음악 대학교에 입학한다. 그러나, 피아니스트로서 커리어를 이어 나가기 위해서 대학교를 중퇴한다.
이후 자렛은 재즈 피아니스트로서 성공적인 커리어를 밟아 나간다. 그렇지만, 자렛이 아무런 고생도 하지 않고 명예를 얻은 것은 아니다. 자렛은 솔로 활동을 시작하기 전부터 여러 4, 5인 밴드를 거치면서 자신의 실력을 향상시켜 나갔다. 커리어 초기에 자렛은 아트 블래키, 찰스 로이드의 밴드에서 피아니스트로서 활약했다. 이 시기는 자렛에게 있어 피아노 실력을 쌓아가는 시간이었다. 그리고 폴 모션, 찰리 헤이든과 함께 트리오를 결성했다. 키스 자렛 트리오의 첫 시작이었다. (이후 밴드 멤버는 잭 드조네트, 개리 피콕으로 바뀐다.)
키스 자렛만큼 다재다능한 피아니스트도 찾기 어렵다. 피아노 솔로로도 연주하고, 트리오에서는 자기 몫을 다하고, 클래식 음악도 연주할 때가 있다. 의외인 것은 키스 자렛이 클래식 피아노를 연주했다는 사실이 잘 알려지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그는 오래 전부터 클래식 음악을 연주해 왔음에도 말이다.
대표적으로,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을 하프시코드로 연주하고 녹음한 <Goldberg Variations>가 있다. 골드베르크 변주곡은 바흐가 작곡한 여러 음악들 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변주곡이다. 글렌 굴드가 1955년에 이 변주곡을 녹음해서 슈퍼 스타가 되었고, 유명세를 얻은 굴드는 이후 바흐를 전문적으로 연주하는 스페셜리스트가 된다.
키스 자렛은 1989년에 골드베르크 변주곡을 녹음하였고, 그의 연주는 ECM 레코딩에 의해서 동년에 발매된다. (왼쪽에 보이는 앨범 자켓이 골드베르크 변주곡 앨범이다) 특기할 점은, 자렛은 골드베르크 변주곡을 녹음하기 위한 악기로 피아노가 아니라 하프시코드를 골랐다는 점이다. 왜 하프시코드를 골랐을까? 어쩌면 바흐의 원래 뜻을 존중하려는 의도가 아니었을까 한다.
그렇게 내가 생각하는 이유는, 바흐가 골드베르크를 쓸 무렵만 하더라도 우리가 지금 사용하는 검은색 ‘피아노’는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바로크 시대까지만 하더라도 하프시코드가 주류였으며, 피아노는 이제 막 발명될 무렵이었다. 바흐 시대에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피아노’의 조상님이라고 할 수 있는 포르테피아노가 나와 있었다. 바흐는 1930년대에 이 피아노를 접한 적이 있었다고 하지만, 하프시코드를 더 좋아해서 그랬는지, 포르테피아노를 그리 좋아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아무튼간에, 자렛은 피아노가 아닌 하프시코드를 선택했다. 어떤 의미로는 탁월한 선택이었다. 해당 연주에는 그만의 독특하고 현대 재즈 음악가다운 개성이 드러나 있다. 하지만 재즈 앨범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 골드베르크 변주곡 이야기는 이쯤에서 마무리하겠다.
The Koln Concert
숨긴 적도 없지만, 키스 자렛에게는 숨길 수 없는 기벽이 있다. 그의 천재성과 기벽은 서로 떼어질 수 없는 듯하다. 공연 중에 기침소리와 박수 소리가 시끄럽게 들려왔을 때, 자렛은 연주를 중단한 적도 몇 번 있었다. 그것만이 아니다.
자렛은 공연 도중에 음악적으로 너무 흥에 겨울 때면, ‘괴성’을 내지르는 습관이 있다. 공연장에서도 들을 수 있는 괴성이기에, 당연히 앨범에도 녹음이 들어가 있다. 자렛의 괴성은 이번에 소개할 쾰른 콘서트(The Koln Concert)에도 선명하게 들어가 있다. 처음 앨범을 듣는 사람이라면 놀라 자빠질 수도 있지만, 그의 울려퍼지는 괴성에 익숙해진 팬에게는 마치 판소리의 추임새처럼 들린다. ‘아악!’ 하는 괴성과 ‘얼씨구’ 하는 괴성은 서로 비슷해 보인다. 어디가 비슷하냐고 하면, 자기도 모르게 감정이 고양된 하이 상태에서 내지른다는 점이 비슷하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