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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민재 Sep 11. 2024

[3] 키스 자렛

「쾰른 콘서트」라는 앨범에 숨겨진 놀라운 에피소드

The Koln Concert


이제 쾰른 콘서트(The Köln Concert)에 대해서 자세하게 설명해 보려고 한다.

쾰른 콘서트라는 앨범의 제목에서부터 알 수 있는 것처럼 키스 자렛의 솔로 연주는 독일 도시 쾰른에 있는 오페라하우스에서 이루어졌다. 1970년대 초반부터 자렛은 재즈 스탠다드를 연주하는 것만이 아니라, 악보가 없는 완전한 무(無)인 상태에서 새로운 음악을 창조하는 즉흥연주(Improvisation)를 시도하고 있었다. 아마도 당시에 자렛의 관심사는 두 가지로 양분되어서 한 사람의 인격을 형성했을 것이라고 짐작해 본다.

첫째는 재즈라는 역사가 오래된 장르에 대한 관심으로, 그가 익숙하게 여기고 또한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에 불랑제의 제안을 거절하게 되었던 계기가 된, 현대 재즈에 대한 열정이다. 그는 매우 어린 시절부터 재즈에 헌신했고, 천부적으로 물려받은 피아노 재능 덕분에 빠르게 프로 재즈 피아니스트로 자리 잡을 수 있었다. 그러나 한편으로, 자렛의 무의식을 사로잡았던 것은 클래식 음악과 작곡에 대한 관심이었다. 비록 작곡을 할 여건은 되지 않았지만, 자렛은 재즈 트리오에서 필수 과목이라고 할 수 있는 즉흥연주를 통해서 자신의 음악적인 영감을 새로운 음악으로 창조하는 법을 배워 나갔다. 따라서 자렛이 가지고 있었던 후자의 관심사를 즉흥연주로 표현한다는 것은 자연스러울 뿐만 아니라, 솔로 피아니스트로서 그가 과거로부터 유지해 온 틀을 깨고 한 발짝 도약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쾰른 오페라하우스의 야경



쾰른 콘서트를 할 당시에 자렛은 29세였고, 내성적이고 조용하지만 야심에 불타는 젊은 아티스트였다.

「쾰른 콘서트」에 얽힌 에피소드는, 토플 문제집이나 영어 시험의 지문에도 나올 만큼 유명하다. 그러나 이런 전설에 가까운 이야기는 사람들의 입소문을 타고 각색이 되게 마련이다. 나는 사실을 중심으로 해서, 재즈의 세계에 입문하려는 분들을 위해서 그 날 있었던 일을 자세하게 풀어 보겠다.


당시 쾰른의 오페라하우스를 빌려서 재즈 연주회를 기획한 사람은 베라 브란데스(Vera brandes)라는 이름의 18세 여성이었다. 독일에서 가장 어린 콘서트 기획자였지만, 베라는 연주회장을 수배하고 티켓을 홍보하는 수완은 꽤나 뛰어났던 모양이다. 베라는 이 때는 유명하지 않았으나 나중에는 유명하게 되는 만프레드 아이허와 함께 쾰른에서 할 공연을 계획하게 된다. 1400명가량 되는 티켓은 매진되었고(티켓의 가격은 4마르크였다고 전해진다...), 1월 24일 자정이 되면 키스 자렛이 무대 위로 올라와서 그의 즉흥 연주 솜씨를 유감없이 보여줄 예정이었다.



키스 자렛과 만프레드 아이허가 신나게 타고 온 르노 자동차


하지만, 일은 간단하게 흘러가지는 않았다. 자렛은 며칠 전에 취리히에서 연주를 했고, 기획자인 베라가 스위스에서 쾰른까지 올 수 있는 티켓을 친절하게 보내줬지만 자렛은 그것을 현금으로 바꾼 뒤에 만프레드 아이허와 합류해서 낡아빠진 르노 4(1994년에 단종된 차량이라고 한다)를 타고 쾰른까지 왔다. 공연이 자정이 시작되었으니, 이들은 여유가 있을 줄 알고서 늦은 오후에 도착했다. 그러나 문제는, 자렛이 요구했던 뵈젠도르퍼의 그랜드피아노가 없었다는 것이다. 키스 자렛은 베라에게 뵈젠도르퍼 290 임페리얼 모델을 요구했지만 쾰른의 오페라하우스 직원이 준비한 피아노는 뵈젠도르퍼의 작은 피아노였다. 베이비 그랜드 피아노였고, 심지어 검은 건반들이 맛이 가서 몇 개의 음표는 아예 나오지도 않았다. 공연을 몇 시간 앞두고, 베라는 키스 자렛과 프로듀서에게 오페라하우스에 있는 뵈젠도르퍼의 작은 피아노를 보여주었다. 베라는 그 때의 상황을 회상하면서 아래와 같이 말한다.


“키스가 몇 마디를 연주했습니다. 그런 다음 아이허가 몇 마디를 연주했고요. 그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어요. 피아노 주변을 몇 바퀴 돌더니 건반 몇 개를 또 두드려보았어요. 또다시 긴 침묵이 흘렀죠. 만프레드가 내게 와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피아노를 바꾸지 않으면, 오늘 밤 연주는 힘들 것 같습니다.’ (중략) 그 작은 피아노는 튜닝도 전혀 되지 않은 상태였고, 가운데 검은 건반은 소리도 안 났습니다. 페달은 눌러지지도 않았죠. 한마디로 연주할 수 없는 피아노였습니다.”


베라는 자렛의 요구를 들어주기 위해서 최선의 노력을 다했다. 베라는 수소문을 해서, 작은 피아노를 대체할 수 있는 그랜드피아노를 쾰른 시내 안에서 구해 오고자 했다. 그러나 당일 쾰른에는 겨울비가 무섭게 쏟아지고 있었다. 작은 피아노를 수리하러 오페라하우스에 도착한 조율사들은 그 상황에서 피아노를 옮기려는 시도는 악기를 손상시킬 수 있다면서 어쨌든 간에 작은 피아노를 수리해서 사용할 수밖에 없다고 설득했다. 이제 작은 뵈젠도르퍼 피아노를 고치는 수밖에 없었다. 최선을 다했음에도 둔탁하게 울리는 베이스 음과 째지는 듯한 고음, 그리고 공연용 피아노의 절반밖에 되지 않는 ‘베이비 그랜드 피아노'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았다.




기분이 팍 나빠진 키스 자렛은 연주하기를 거부했다. 그는 몇 날 며칠 동안 제대로 수면을 취하지 못했고, 나이에 맞지 않게 등 통증까지 있었다. 베라는 재즈에 대한 열정으로 만들어 낸 상황이 아이러니하게도 최악의 결과로 이어진다는 사실에 크게 상심했을 것 같다. 키스 자렛은 프로듀서가 몰고 온 르노 4 차량으로 돌아갔다. 이제 베라는 체면 따위는 내던지고 제발 연주를 해 달라고 사정하는 수밖에 없었다. 젊은 피아니스트는 이제 막 18세가 된 젊은 기획자가 비를 맞으면서 자신을 향해 설득하는 모습을 보며 동정심이 들었던 모양이다. 그는 그녀에게 이렇게 말했다.


“잊지 마. 오늘 공연은 순전히 너 때문에 하는 거야.”


만프레드 아이허는 당시를 회상하면서, 작으면서 컨디션도 좋지 않은 피아노를 자렛이 그렇게나 아름답게 연주할 수 있었던 것은 역설적으로 피아노의 상태가 좋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이야기한다. ("아마도 자렛은 그 피아노가 좋은 피아노가 아니었기 때문에 그렇게 연주했을 겁니다. 피아노의 소리에 빠져들 수 없었기 때문에, 자렛은 그것을 최대한 활용할 수 있는 다른 방법을 찾았습니다.") 만프레드의 말대로, 쾰른 콘서트의 연주를 유심히 들어 보면 몇 가지의 음표를 제외하고 한두 개의 코드를 반복하면서, 증폭시키면서 연주한다는 걸 깨달을 것이다. 베라는 이렇게 이야기했다.

“첫마디를 연주하는 순간 사람들은 모두 마법에 홀린 듯 빠져들기 시작했죠.”

딴단 따다단, 하는 기본 선율이 제시되고 나서, 한두 개의 코드를 중심으로 코드를 반복해 연주하며 광범위한 즉흥 연주를 만들어 낸다. 그야말로 키스 자렛은 혼신의 힘을 다해서 베이비 그랜드피아노에서 "아름다운 소리"를 내기 위해서 최선을 다한 셈이다. 파트 원에서 마지막 6분 정도는 A 장조의 테마로 즉석으로 연주를 한다. 그리고 파트 투로 넘어가면, 첫 8분 동안에 자렛은 왼손으로 베이스 라인을 연주하면서 D 장조의 그루브 위에서 즉석으로 연주를 한다. 연주를 듣다 보면, 정말로 자렛이 이 노래를 아무런 준비도 없이, 노트도 없이 연주했다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섬세하고 아름다운 연주를 하고 있다.



쾰른 콘서트의 앨범 자켓. (ECM) 고개를 숙이고 연주하는 특유의 포즈가 사진에 잘 담겨 있다.


쾰른 콘서트는 재즈의 역사에서 가장 많이 팔린 솔로 앨범이 되었다. 얼마나 많이 팔렸냐면, 대략 400만 장이 팔려 나갔고 지금도 계속해서 판매되고 있다. 그것뿐만이 아니라, 애플 뮤직과 스포티파이 등, 스트리밍 앱에서도 하루에도 몇천 번이나 재생되고 있으니, 솔로 피아노 앨범의 역사에서 엄청난 업적을 달성한 것이다. 놀랍지 않은가?

(출처: Wolfgang Sandner (2020), Keith Jarrett: A Biography, 영어 위키피디아에서 재인용)


이제 키스 자렛의 다른 솔로 앨범들, 라 스칼라(La Scala)와 다수의 천사들(A Multitude of Angels)에 대해서, 특히 이 앨범의 마지막에 실린 "Over the Rainbow"에 대해서 이야기해 보려고 한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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