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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몬테크리스토르 Feb 22. 2019

너만의 과녁을 만나는 그 날까지

- 활쏘기 체험에 도전했던 아들의 모습을 떠올리며

아들아, 기억나니?

네가 초등학생 6학년 때 가족이 함께 떠난 경주여행 말이다.

경주 밀레니엄파크 활쏘기 체험장에서 네가 보여 준 김유신 장군의 후손다운 비장한 모습을 이 아빠는 아직도 잊지 못한다.

화랑의 후예답게 활쏘기 체험장 교관에게 활 쏘는 방법을 집중하여 들은 너는,

호흡을 고르고 온 정신을 과녁으로 모아 활시위를 당겨 적의 숨통을 끊을 듯 필살의 화살을 날려 보냈었지.


활시위를 떠난 화살은 힘차게 날아가 옆 자리 사수의 과녁에 당당히 꽂히고

너는 아무 일 없다는 듯 다음 화살을 활에 쟁였었다.

참으로 뻔뻔하기 그지없는 화랑의 후예라는 생각을 하며,

아빠는 허리가 끊어져라 웃었던 기억이 난다.


화랑 관창 못지 않게 당당한  장남의 활 시위는 당당히 옆 사로의 과녁을 향하고....


아들아,

너에겐 너만의 과녁과 네가 쏴 날릴 화살이 따로 있단다.

너의 화살이 힘차게 날아가 아무리 옆 자리 사수의 과녁 한가운데를 꿰뚫은들...

그건 너의 성과가 아닌 보람 없는 일이 될 테지.

인생도 그렇단다.

남들이 멋지다 우르르 달려가는 과녁 따윈 넘겨 보지도 말아라

네 화살이 날아가 꿰뚫어야  할 너의 과녁을 찾길 바란다.


내 것인지 남의 것인지 엇비슷하고 내 과녁인지 아닌지 헷갈리는 시기도 있을 거야.

남이 선택한 과녁이 더 멋지고 괜스레 그곳에  꽂힌 화살이 더 멋져 보일 것만 같은 느낌이 들어 혼란스러울 때도 있을 거다.

지금 네 나이가 딱 그럴 시기지.

내가 겨누어야 할 과녁이 이게 맞는지, 잘못 선택한 건 아닌지,  남들 보란 듯 튼튼못하고 멋져 보이지도 않는 , 그런 보잘것없는 과녁 같기도 해서 망설여질 수 있지.

하지만, 그건 너무 걱정 안 해도 돼.

영화 <최종병기 활>에 나왔던 주인공 박해일을 기억하지?

그 영화에서 주인공이 멋질 수 있었던 건, 그의 화살 끝이 늘 자신과 자신의 가족을 위협하던 적에게 했기 때문이다.

과녁이 멋졌는지 아니었는지보다 네 활이 제대로 찾아 날아가 꽂힐 수 있는 너의 과녁을 찾는 일에 집중하면 좋겠구나.

그러면 세상의 모든 일들은 저마다의 자성(磁性)이 있어서 서로를 끌어당겨 쏘고 싶게 만드는 일들을 너의 일생 중에 반드시 만날 수 있게 될 테니 말이다.



사랑하는 아들아,

너의 손을 떠난 화살이 옆자리 사수의 과녁에 꽂히던 실수보다, 그다음 활을 당당히 시위에 재던 너의 모습이 아빠 어겐 더 중하게 여겨졌었다.

다행히 그다음 화살은 네 과녁을 향해 쏘더구나. 대견했다.

그 화살이 제대로 과녁 정중앙에 박혔는지 아닌지 아빠는 기억하지 못한다.

하지만, 아빠는 믿는다.

네가 너만의 과녁을 발견하고 그때 경주에서의 활쏘기 체험 때처럼 당당히 활시위를 당기는 날,

아빠는 다시 한번 숨 죽여 너의 그 당당한 모습에 뿌듯한 응원을 보내겠다.

아직 네 활통에는 많은 나날 날릴 수 있는 화살이 가득하다.

과녁도 없는 허공을 향한 난사는 곤란하지만, 때가 오고 네 과녁을 만나게 되면 힘차게 너의 화살을 날려보려무나.


허리를 꺾고 웃고 있는 아빠는 아랑곳없이, 비장한 표정과 긴장을 풀지 않던 너의 인생에 대한 진지한 태도를 아빠는 지지하고 응원한다.

그때 그 모습으로...  너의 과녁을 찾는 날까지 전진하자.

사랑한다.



- 옆 자리 과녁에 화살을 날린 널 보며 먼저 손뼉 쳐주지 못하고 급하게 웃어서 미안했단 사과를 이제야 뒤늦게 남기며...


@monte-chris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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