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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몬테크리스토르 Feb 22. 2019

자리는 존경의 대상이 아니다

- 무엇이 되느냐 보다 무엇으로 사느냐가 중요하다

그렇다, 그러하다, 그래야 한다.

교수가 된 사람과 교수로 사는 사람,
가수가 된 사람과 가수로 사는 사람,
배우가 된 사람과 배우로 사는 사람,
의사가 된 사람과 의사로 사는 사람,
목사가 된 사람과 목사로 사는 사람,
교인이 된 사람과 교인으로 사는 사람,
아빠가 된 사람과 아빠로 사는 사람,
최고가 된 사람과 최고로 사는 사람.


무엇이 되느냐보다 무엇으로 사느냐가 중요하다.



아들아, 

이제 중학교와 고등학교에 각각 진학하는 너희도 마음 속에 꿈을 품을 나이가 되었구나.

아빠는 너희 또래의 아이들을 만날 때마다 자주 꿈을 묻곤 한다.

오랫동안 교회에서 고등부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매 해 새롭게 반에서 만나는 친구들에게 빠짐 없이 묻곤 했던 질문이지.


"넌 꿈이 뭐니?"

"간호사요.",   " 교수요.", "작가요.", "미용사요."
많은 아이들이 꿈으로 직업을 말하곤 한다.

아빠는 또 묻곤 했다.

"그럼 간호 대학 졸업하고 병원에 취업해서 간호사가 됐어. 의사가 됐어.  그럼 꿈을 이룬거네?"
"그렇죠."

"그럼 그 다음에 꿈은 뭐야?"
"돈 많이 버는 거요? ㅎㅎㅎ"

아빠는 다시 물었다.

"그럼 반대로, 간호사가 되려면 의사가 되려면 간호대, 의대를 나와야 하는데... 못갔어. 원하는 대학을... 그럼 꿈이 사라지는 건가?"

"뭐.. 그렇죠?"
"대학 진학 여부로 꿈이 사라지고 이뤄지고 그러는건가? 그럼 대학 못 간 사람들은 다 꿈을 잃고 사는건가?"
아이들은 여기서 대답이 막히곤 했었다.

아빠는 재차 물었다.
"간호사는, 의사는 왜 되고 싶단 생각을 했어?"
"음.. 할머니가 아프셨는데, 블라블라...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봉사를 하며...블라블라... "

"아, 그랬구나... 그건 간호사나 의사가 되지 못해도 얼마든지 평생 이루며 살 수 있는 꿈이네..
네가 정말 원했던 꿈은 아픈 사람들이나 소외된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사람이 되고픈 거였네."

"네, 맞아요."


아들아,

아빠는 너희의 꿈이 대학 진학이나 직업 선택 따위로 단박에 이뤄지는 것이 아니길 바란다.

의대를 못 가도, 의사가 못 되도, 꿈틀꿈틀 가슴 속에 참을 수 없이 솟아 올라서 어떤 방법으로든 그 마음 속 샘솟는 청명한 꿈을 누를 길 없어 견디지 못하는 그런 삶이 너희들의 꿈이길 빈다.

명문대를 가는 게 꿈이 아니고, 대학을 가는 게 꿈이 아니고, 대기업을 다니는 게 꿈이 아니고, 돈을 많이 버는 게 꿈이 아니어서 진짜 바라는 너희의 꿈을 위해 그 모든 것들이 동력으로 채워지는 필요이길 빈다.


지난 대선 때, 국제연합기구(UN)의 높은 자리에 있었다는 어느 양반이 유력 대선주자로 떠오르는 현상을 보며 아빠는 절망하고 절망했었다.

아들아, 자리는 신기루 같은 것이란다.
그것이 사람의 사람됨을 가리지 못한단다.

그 자리에서 그 사람이 어떤 일을 해 왔는지,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만이 그 사람을 바르게 설명하는 방법이지.

사람들은 그 높은 양반이 어처구니 없이 저지르는 일상의 단면들을 보며 실소했었다.

그 높은 양반은 결국 국내에 머무르며 보인 여러가지 언행들로 자신을 쌓아올렸던 자리값을 모두 깎아 먹고 스스로 대선 후보 자리에서 물러 내려 왔었다.
사람들은 알게 되었다.

그 높은 자리 뒤에 숨겨진 그 양반의 됨됨이가 그 직위만큼 대단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말야.


아들아,  

무언가가 될 생각하지 말고,  무엇으로 살 건지의 궁리가 필요하다.

나는 과연 무엇에 기쁘게 매달릴 수 있을지, 무슨 일에 지치지 않을 수 있을지, 보람을 찾을 수 있을지 그에 대한 궁리가 필요하다.

그걸 꿈꾸도록 하자꾸나.

우리는 사회 지도층이라 불리는 수많은 직업군 종사자들이 각종 부정과 부패에 연루되어 번쩍이는 쇠팔찌를 차고 뉴스에 등장하는 모습을 심심찮게 본다.

꿈을 잃은 자들이다. 

이미 꿈을 이루고 그저 돈이나 벌려고 권력이나 쫓으려고 하다가 욕심을 넘어서는 자들의 모습인거다.


탕! 하고 쏴서 쾅 하고 명쾌하게 표적에 박히는 꿈 따위는 없단다.  꿈은 그렇게 이뤄지지 않는단다.

아들아,

아빠도 장래희망이 '아빠'였던 사람이었다.

막상 아빠가 되고 보니, 아빠 노릇 하려면 해야 할 일들이 그 때부터 비로소 줄을 잇더구나.

아빠는 여전히 아빠지만, 아빠로 살면서 애써야 할 것들은 내 남은 여생 동안 그치지 않을 것 같구나.

아빠는 아빠로 살아 보련다.

아빠가 되었다고 이제 됐지 뭐... 어차피 호적엔 쟤들이 내 아이들인데 아빠가 그럼 아빠지 뭐... 하지 않고,

아빠로 부끄럽지 않은 아빠로 살아 가려고 한다.

꿈을 이루기 위해 애쓰는 동안에는 즐겁고 기쁜 일만 있지 않단다. 

좌절도 있고, 낙심도 있고, 자책도 있고, 자격 없음에 대한 회한도 생기지.

그래도 버리지 못하고 붙잡고 싶은 거... 그게 진짜 꿈 아니겠니?

부족한 아빠지만 평생 이루기 위해 애써야 할 좋은 아빠가 되는 꿈...

너희도 응원해 주겠니?


아들아, 

자리는 존경의 대상이 아니란다.

직업은 직위는 존경의 대상이 아니란다.

그 곳에서 하는 일, 그 곳에서 끼치는 영향력, 그 곳에서 다하는 최선...

그걸 꿈 삼으며 살자꾸나.

그 차이가 삶의 자세와 보람을 가른단다.  

너희의 꿈을 아빠가 응원한다.

사랑한다.



- 번듯한 자리에 앉아서 자리는 존경의 대상이 아니라고 말했음 더 설득력 있었을 텐데 그러지 못해 쪼금 미안한 마음을 담아...


@monte-chris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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