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이불을 덮고 자면서 무의식 중에 이불을 끌어당기거나 걷어차 곁에 있는 사람에게 공허한 새벽을 만들어 준 경험을 해 보거나 당해 보지 않은 사람은 거의 없다.
다툼이 생기기 마련이다.
"너만 추워? 이불 다 끌어가서 혼자 덮고..." 이른 포기를 한 경우는 각기 자기 이불을 마련해 따로 덮고 자는 방법을 선택하기도 한다.
이해이거나, 배려이거나, 포기이거나 이게 내가 살 방법이다라는 선택이거나 중 하나다.
걷어 찼다가 다시 당겨 찾고 걷어 찼다가 다시 당겨 찾고... 사람한텐 그러면 안되는 거다.
혼자 이불을 덮고 자는 사람에게도 이불은 늘 당겨 덮어야 할 것만은 아니다.
열이 많은 사람은 이불을 곧잘 걷어 차기 십상이다.
배나 가슴까지는 꼭 올려 덮더라도, 손이나 발은 내놓고 자야 하는 사람도 있다.
잠 들 때 모습 그대로, 그 모습을 고이 간직한 채로 아침에 눈을 뜨는 사람은 발견하기 힘들다.
물론 내가 수많은 사람들의 자는 모습을 지켜본 적은 없지만, 아마 대개는 그럴 거다.
걷어 찼다가 끌어 당겼다가, 돌돌 말았다가 코 끝까지 당겨 덮었다가...
이불은 주인의 변덕을 하룻 밤 사이에도 셀 수 없이 견딘다.
사람 같았으면 "이런 미친..." 하며 잠 든 이불 주인에게 발길질을 날렸을 지도 모른다.
이불은 흐트러진 머리칼도 정돈 못한 채 다시 사이코 주인의 불러주는 손길을 기다리고 앉았는 가엾은 어린 종 마냥 구겨진 채 자리를 지킨다.
겨울의 모진 추위에 맞서는 보일러의 보온 사이클이 바닥을 향하는 새벽녘, 서늘한 기운이 온 몸을 감쌀 즈음에야 이불은 자신을 찾아 더듬는 주인의 손길과 만난다.
그리고, 자신을 끌어 당기는 주인의 손을 마다 않고 기꺼이 기어 올라 온기로 그의 몸 위를 데운다.
이불과 헤어져 있던 새벽이 길수록, 다시 만난 이불과는 간절히 헤어지고 싶지 않아진다. 떠나지마 다시는...
이불은 저를 찾는 손길을 외면하지 않는다.
하도 이불을 당겨가서 성질 난 옆지기가 그의 이불을 둘둘 말아 저 멀리 던져 버린 것만 아니라면, 대개는 그 더듬는 손안에 이불은 제 몸 귀퉁이 한 자락을 기꺼이 쥐어 준다. 안도현 시인은 자신의 시를 통해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라고 물었다.
나는 '이불 킥 함부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차였다가도 다시 끌어당기면 기꺼이 안기는 그런 사랑이었느냐' 라고 묻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