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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몬테크리스토르 Feb 22. 2019

겨울밤 곱씹어 보는 순종의 순애보, 이불

- 걷어 찰 땐 언제고 춥다고 더듬거려 찾던 내 변덕스러움에 대한 반성문


"한 이불 덮는 사이입니다."

의미심장한 말이다.

마음이 하나로 모아지기 전엔 한 이불을 덮고 자기 힘들다.

부부이거나, 연인이거나, 딱히 그런 건 아니지만 추운데 이불이 하나 밖에 없거나...

한 이불을 덮고 자면서 무의식 중에 이불을 끌어당기거나 걷어차 곁에 있는 사람에게 공허한 새벽을 만들어 준 경험을 해 보거나 당해 보지 않은 사람은 거의 없다. 

다툼이 생기기 마련이다.

"너만 추워? 이불 다 끌어가서 혼자 덮고..."
이른 포기를 한 경우는 각기 자기 이불을 마련해 따로 덮고 자는 방법을 선택하기도 한다.

이해이거나, 배려이거나, 포기이거나 이게 내가 살 방법이다라는 선택이거나 중 하나다.


걷어 찼다가 다시 당겨 찾고 걷어 찼다가 다시 당겨 찾고...  사람한텐 그러면 안되는 거다.



혼자 이불을 덮고 자는 사람에게도 이불은 늘 당겨 덮어야 할 것만은 아니다.

열이 많은 사람은 이불을 곧잘 걷어 차기 십상이다.

배나 가슴까지는 꼭 올려 덮더라도, 손이나 발은 내놓고 자야 하는 사람도 있다.

잠 들 때 모습 그대로, 그 모습을 고이 간직한 채로 아침에 눈을 뜨는 사람은 발견하기 힘들다.

물론 내가 수많은 사람들의 자는 모습을 지켜본 적은 없지만, 아마 대개는 그럴 거다.

걷어 찼다가 끌어 당겼다가, 돌돌 말았다가 코 끝까지 당겨 덮었다가...

이불은 주인의 변덕을 하룻 밤 사이에도 셀 수 없이 견딘다.

사람 같았으면 "이런 미친..." 하며 잠 든 이불 주인에게 발길질을 날렸을 지도 모른다.

이불은 흐트러진 머리칼도 정돈 못한 채 다시 사이코 주인의 불러주는 손길을 기다리고 앉았는 가엾은 어린 종 마냥 구겨진 채 자리를 지킨다.

겨울의 모진 추위에 맞서는 보일러의 보온 사이클이 바닥을 향하는 새벽녘, 서늘한 기운이 온 몸을 감쌀 즈음에야 이불은 자신을 찾아 더듬는 주인의 손길과 만난다.

그리고, 자신을 끌어 당기는 주인의 손을 마다 않고 기꺼이 기어 올라 온기로 그의 몸 위를 데운다.


이불과 헤어져 있던 새벽이 길수록, 다시 만난 이불과는 간절히 헤어지고 싶지 않아진다. 떠나지마 다시는...



이불은 저를 찾는 손길을 외면하지 않는다.

하도 이불을 당겨가서 성질 난 옆지기가 그의 이불을 둘둘 말아 저 멀리 던져 버린 것만 아니라면, 대개는 그 더듬는 손안에 이불은 제 몸 귀퉁이 한 자락을 기꺼이 쥐어 준다.
안도현 시인은 자신의 시를 통해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라고 물었다.

나는 '이불 킥 함부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차였다가도 다시 끌어당기면 기꺼이 안기는 그런 사랑이었느냐' 라고 묻고 싶다. 

이불의 순애보는 실로 희생적이고 순종적이다. 



오늘밤 나는 

이 숭고하게 순종적인 이불을 한 아름 끌어 안고 절대 걷어차거나 내치지 않으리라.

행여 그런 일이 벌어진대도,  

속죄의 마음으로 바닥을 더듬어 힘차게 그를 끌어 당겨 덮으리라.



뜨겁게 날 감싸던 널 걷어찬 그 밤의 기억

너 없는 곁 더듬는 서늘한 새벽의 후회

- 이불 



#이불

#순애보


#끄적이는하루 


- @몬테크리스토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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