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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몬테크리스토르 Feb 22. 2019

손톱깎이에게 배우는 이별의 정석

- 잘라야 할 때를 아는 지혜

겨울,

이별하기 좋은 계절이다.

봄처럼 마음 설레는 계절은 사랑을 시작하기 좋은 때지 이별과는 거리를 둬야 한다.

여름은 휴가시즌이 끼어 있어 이별의 고통으로 1년을 기다려 온 황금같은 시간을 허비하기엔 몹시 아깝다.

혼자 이별여행이라도 떠나 볼라 치자. 

센치하게 해변에 앉아 바닷가를 보며 헤어진 연인을 떠올리고 아파하기엔 튜브 들고 뛰어다니는 청춘남녀들이 너무 많다. 그림 안 나온다.

가을에 이별하고 괴로와하는 흔적을 남기면 "가을 타시나봐요." 정도로 치부받기 딱 좋다.

분위기는 잡히지만, 그냥 분위기만 잡고 있는 걸로 오해받기 좋다.

겨울이 딱이다. 그냥 딱이다.


겨울에 이별로 아파 하다가 바닷가라도 찾아 모래사장에 앉으면 온갖 서러움이 엄습해 온다.

이렇게 추운데, 이렇게 오지게 추운 바다를, 나는 혼자 와 앉아 있다.

사람도 없다. 봐 주는 사람도 없다. 놀러 온 사람도 없다. 그런데도 나는 왔다. 괴로우니까...

얼마나 괴로우면 이 차가운 바다를 찾았느냐 말이다.

겨울은 혼술로 이별을 달래기도 좋은 계절이다.

밤 늦은 시간까지 도로변까지 점령하고 왁자하게 술을 마시던 주객들도 없다.

추운 겨울 거리의 포장마차는 들어설 때마다 이별로 아픈 마음처럼 황량하고 넓고 휑휑하다.

그야말로 외로움을 곱씹으며 술을 마시기에 적기인 것이다.

혹시 지금 이별을 망설이고 있는 이가 있다면, 주저하지 말고 이 겨울에 이별해야 한다.


이별은 끝을 규정짓기가 애매한 의식이다.

드라마나 영화에서 주인공들이 절친에게 내뱉는 대사, "나 헤어졌어."

유감스럽게도 그 대사 이후에도 헤어진 주인공들은 수차례 통화하고, 수차례 만나고, 수차례 술마시고, 수차례 다시 질척인다.

이별은 깔끔할 수록 좋다.

정말 헤어져야 할 만큼의 문제에 공감해 이별을 결심했던 연인들의 경우는 더 그렇다.

이별을 돌이켜 다시 만나볼까 고민하는 사람들의 대다수는 이별을 고민하게 했던 문제가 해결되어서가 아니라, 이별 후의 괴로움과 외로움을 견디지 못하기 때문인 경우가 많다.

잠시 이별의 아픔을 덮기 위해 사랑해온 시간을 몽땅 포기하면서까지 이별할 결심을 하게 한 그 문제(전혀 해결되지 않은)는 외면하기 쉽다.

마음 끝을 지저분하게 만드는 이별의 문제는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더 더러워진다.

잘라내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데는 이유가 있다.




문득 손톱을 자르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길어진 손톱은 이별과 같은 것이다.

길어진 손톱에는 때가 낀다.

길어진 이별도 그렇다.



이쯤에서 끝내

더 길어지면 끝만 지저분해 질 뿐이야.

- 손톱깎이 @monte-christhor



겨울은 이별하기 좋은 계절이다.

길어져 마음이 지저분한 사람이 있다면, 이 겨울 결심하자.

마음에서 길게 자라 지저분해진 더러운 손톱같은 그를 잘라내고 겨울 바다로 가라.

모래사장에 소주병 하나 꽂아 박고, 컵라면 하나를 벗삼아 동해 바다의 강풍에 고스란히 나를 맡겨보자.

콧물도 눈물도 날 테지만, 그보다 더 깊숙이 폐부를 찔러오는 단 하나의 감정으로 이별한 그에게 말해주자.

내 오지게 추운 겨울바다의 강풍을 맞으러 예까지 왔다. 

너를 잘라내기 위해 이 모진 의식을 치렀으니 너는 여기까지다. 
난 오늘 손톱을 자르듯 널 자른다.

새로 돋는 손톱은 네가 아닐 터, 그 때 난 그 손톱을 정성껏 가꾸고 예뻐하리라.

잘 가라 더럽고 때 낀 손톱 나부랭이야.


겨울이 깊어지고 있다.

손톱깎이 하나 주머니에 챙겨 지금 곧 동해를 향해 떠나자.

다가올 봄에는 예쁜 손톱 페디큐어를 받을 일이 생길 거다.

굿 럭!


#손톱깎이

#이별 #정리


#끄적이는하루 


- @몬테크리스토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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