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몬테크리스토르 Feb 22. 2019

낯선 이에게 안겨 눈물이 났다

- 사람은 포옹하면 왜 눈물이 날까

둘째 아이의  초등학교 졸업식장에서였다.

교장 선생님의 마지막 인사 말씀보다 길었던 학부모 축사가 끝났다.

졸업장과 상장(졸업생 전부에게 여러 이름으로 주어진)을 받아 각 반으로 돌아온 아이들은 각자의 자리에 마지막으로 앉았다.

졸업 앨범을 학급 번호 순으로 나눠주신 후 담임 선생님의 인사로 각 반에서의 졸업식 순서까지 모두 끝이 났다.

몇몇의 아이가 담임선생님과 사진을 찍기 위해 칠판 앞 선생님 주변으로 모여들었고, 그냥 카메라를 들이 밀기 어색한 부모들이 자신이 아무개의 엄마임을 밝히곤 심히 늦은 첫인사를 남겼다.

담담하고도 사뭇 심심하게 끝나나 싶었던 졸업식이었다.

한 아이의 엄마가 담임 선생님에게 다가가더니 고개를 조아리는가 싶더니 선생님을 안아 드린다.

담임 선생님의 눈물이 쏟아진 건 바로 그 포옹의 순간이었다.

자신이 안은 선생님의 뜨거워진 가슴을 그 엄마도 느꼈는지 서로의 포옹을 제대로 풀지 못한 채 말없이 둘이 눈물을 훔친다.
엄마의 눈물이 창피한지 놀라운지 아이는 엄마에게 왜 우냐며 눈을 동그랗게 뜬다.

포옹이 선생님과 엄마를 울렸다.





포옹은 사람이 사람을 품에 껴안는 행위다.
아량으로 너그럽게 품어 주는 이 행위가 안긴 이나 안은 이에게 눈물을 터지게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안고, 품고, 둘러싸고, 끼고, 손에 넣고 가지고 호위해 지키는 게 포옹이다.

상대의 모든 수고를, 잘못을, 상처를, 절망을, 도전을, 영광을, 그 모습 그대로 인정해주고 나도 너와 같은 마음이라 마주 대 주는 게  포옹이다.


부모는 아이를 안고 싶어한다.

술에 취해 귀가한 아빠는 잠든 아이를 찾아가 볼 비비고 깰 세라 살며시 조심히 품에 안는다.

실은 아이에게 안기는 거다.

이렇게 술에 취해, 일에 치여 들어온 아빠여도 '아빠'라고 불러주는 내 아이가 있어 감격에 겨워 안기는 거다.

나이가 들 수록 안을 대상도, 안길 대상도 사라진다.

아이들은 품안에 들어오지 않을 만큼 커 버리고, 배우자는 안하던 짓을 한다며 질색팔색한다.

없다 안길 사람도 안을 사람도.

돈을 주고 안을 사람을 사는 어리석은 사람도 있지만, 그것이 그들에게 위로가 되지 못하는 것은 그들 스스로가 가장 잘 안다.

포옹은 인간이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치유와 위로의 인사다.

누군가에게 안겼는데 눈물이 난다면, 그건 그 사람이 내 마음을 잘 알아준 것 같은 느낌을 줬기 때문이다.

누군가에게 나 좀 안아달라 할 만큼 힘들었던 시간을 견뎠다는 증거다.

그런 사람이, 그런 나를 알아준 사람이 나타나 나를 안아주면, 눈물이 나지 않을 도리가 없다.



당신이 마지막으로 누군가를 따뜻히 안아준 건 언제인가

당신이 누군가에게 안겨 눈물이 날 것 같았던 때는 언제인가

둘째 아이의 담임 선생님은 그 학부모의 포옹이 1년간의 힘들었던 교사 생활에 대한 위로와 격려였을 거다.

그 따뜻했던 포옹과 함께 흘린 눈물에 감사와 위로의 인사를 전하고 싶다.

졸업식장에서 교가 제창 전에 불렸던 노래는 내 어릴 적 졸업식장에서 노래했던 빛나는 졸업장을 타신 언니께 가 아니었다.

의외였지만, 어찌 보면 가장 적절했을 지 모를 위로와 격려의 인사, 옥상달빛의 <수고했어, 오늘도> 였다.

한 번의 포옹으로 모자랐을 지 모를 선생님의 노고에 이 노래 가사로 감사의 인사를 보탠다.



세상 사람들 모두 정답을 알긴 할까
힘든 일은 왜 한번에 일어날까
나에게 실망한 하루
눈물이 보이기 싫어
의미 없이 밤 하늘만 바라봐
작게 열어둔 문틈 사이로
슬픔 보다 더 큰 외로움이 다가와 더 날

수고했어 오늘도
아무도 너의 슬픔에 관심 없대도
난 늘 응원해, 수고했어 오늘도

빛이 있다고 분명 있다고 믿었던
길마저 흐릿해져 점점 더 날
수고했어 오늘도
아무도 너의 슬픔에 관심 없대도
난 늘 응원해, 수고했어 수고했어 수고했어 오늘도


- 옥상달빛 <수고했어, 오늘도>



세상 모든 선생님들의 수고와 애쓰심에 따뜻한 포옹 한번을 보낸다. 

#포옹 #허그
#눈물나는 
#졸업식


#끄적이는하루 


- @몬테크리스토르 

매거진의 이전글 손톱깎이에게 배우는 이별의 정석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