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도가 만든 풍미의 차이

시칠리아 해안부터 토스카나 언덕까지 – 고도가 만든 풍미의 차이

by 올리브오일탐험가

올리브오일의 풍미는 ‘고도’에서 시작된다

올리브나무는 척박한 땅에서도 자라지만,
그 나무에서 나오는 기름의 품질은 자란 환경에 따라 크게 달라집니다.
특히 고도, 즉 그 땅이 해수면으로부터 얼마나 높은지에 따라
올리브가 익는 속도, 기후 스트레스, 성분, 그리고 풍미의 결이 완전히 달라집니다.

이탈리아는 북쪽 알프스에서 최남단 시칠리아까지 약 1,200km에 달하는 길고 다양한 지형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긴 지형을 따라 수백 개의 올리브 품종이, 서로 다른 고도에서 자라며 자신만의 향미를 만들어냅니다.


고도가 만든 향미의 층위

이탈리아 전역의 올리브 재배지는 고도에 따라 뚜렷하게 다른 특성을 보입니다.
크게 세 구간으로 나눠볼 수 있습니다.


첫째, 해발 0~200m의 낮은 고도,

대표적으로 시칠리아 해안이나 풀리아 평야처럼
햇살이 강하고 건조한 지역에서는 올리브가 빠르게 익습니다.
이런 환경에서 생산된 오일은 향이 풍부하면서도 부드럽고,
쓴맛이나 매운맛이 상대적으로 적어 대중적이고 부드러운 오일이 많습니다.


둘째, 해발 200~500m의 중간 고도, 대표적으로 움브리아의 구릉지나 토스카나 일부 낮은 지역처럼 기후가 온화하고 낮과 밤의 기온 차가 적당한 곳에서는

쓴맛과 매운맛, 향미가 균형 있게 어우러진 오일이 만들어집니다.

복합적이고도 부드러운 구조의 오일이 많은 프리미엄 브랜드에서 생산됩니다.


셋째, 해발 500m 이상의 고지대,
토스카나 남부 산지(Piro 농장이 위치한 지역), 칼라브리아 산지, 시칠리아 내륙처럼
일교차가 크고 기온 변화가 심한 환경에서는
올리브가 천천히 익으며 더 많은 스트레스를 받습니다.
이로 인해 항산화 성분인 폴리페놀 함량이 높고,
일반적으로는 쓴맛과 매운맛이 강한, 강렬한 구조의 오일이 만들어지곤 합니다.


하지만 Piro는 이러한 고지대의 기후 조건 속에서도
품종, 성숙도, 블렌딩 비율 등을 정교하게 조율하여
강렬함보다는 고순도의 깔끔함과 부드러움을 강조한 오일을 만들어냅니다.
이는 단순히 지형이 아닌 사람의 의도와 기술이 더해진 맛의 결과물입니다.


제가 경험한 두 농장의 이야기 – Pantaleo vs Piro

제가 직접 방문하고 수입하고 있는 두 곳의 올리브오일
시칠리아의 Contrada Pantaleo(해발 약 320m)
토스카나의 Piro Farm(해발 약 620m)
고도 차이만큼이나 완전히 다른 향미를 보여줍니다.

Pantaleo 오일은 올리브가 비교적 빠르게 익는 기후에서 만들어져
부드러운 풀향, 약한 쓴맛과 고소함이 특징입니다.

반면 Piro의 고지대 오일은 첫 입부터 강하게 치고 들어오는 쓴맛과
목 뒷부분을 아찔하게 자극하는 매운맛이 인상적입니다.
오래 여운이 남는 이 강한 구조감은, 고지대가 주는 선물이기도 합니다.


같은 올리브, 같은 방식으로 짜낸 오일인데
단지 고도가 다르다는 이유만으로도 이렇게 다른 오일이 만들어진다는 점이
제가 이 세계에 빠져들게 만든 첫 번째 이유였습니다.


Contrada Pantaleo (해발 320m)


1. 해풍과 해안 근접

라구사는 내륙 깊숙이 있는 도시가 아니라, 지중해에 면한 해안과 가까운 고지대 도시입니다.

특히 Contrada Pantaleo와 같은 마을들은 차로 20분이면 바닷가에 닿는 거리입니다.


이 해안 인접성 덕분에, 지중해 해풍이 오일의 향에 영향을 줍니다.
이는 와인에서 말하는 ‘바다에서 오는 짠 공기와 염분감’과 유사한 개념입니다.


2. 석회암 기반의 미네랄 토양

라구사 일대는 석회암(Limestone) 기반의 칼슘 풍부한 토양입니다.


이 미네랄 풍부한 토양은 올리브의 세포 구조와 향미 형성에 영향을 주며,
오일에 특유의 청량하고 단단한 뉘앙스를 부여합니다.


3. 온난한 기후 + 고도 300m 내외


시칠리아 남부 특유의 뜨거운 낮과 선선한 밤,
그리고 상대적으로 낮은 해발 300~350m 수준은
균형 잡힌 익음을 만들어내고,
과일 향을 살리면서도 폴리페놀 함량이 지나치게 높지 않은 부드러운 쓴맛을 만들어냅니다.


Piro Farm(해발 600m 이상)


1. 해발 600m 이상의 고지대


Piro 농장은 토스카나 남부, 아미아타 산맥 인근에 위치해 있으며
해발 약 620m 고도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이 지역은 낮과 밤의 기온 차가 크고,
자연적으로 스트레스를 받은 올리브 열매는 폴리페놀 함량이 높아
쓴맛과 매운맛이 강한 구조의 오일을 만들어냅니다.


2. 건조한 내륙 기후와 낮은 습도


바다와는 비교적 거리가 있고,
내륙의 건조하고 선선한 기후가 주를 이룹니다.
이는 올리브나무의 병해를 줄이고,
오일의 향미 농축도를 높이는 데 유리하게 작용합니다.


3. 숲과 섞인 생태계 속 재배


주변은 농지보다는 자연림과 혼재된 언덕 지형으로
벌과 곤충 등 생물다양성이 풍부한 환경에서 유기농 재배가 이뤄집니다.


이로 인해 오일에도 허브향, 솔잎, 아티초크 같은
복합적이고 날카로운 향미가 담깁니다.


같은 품종이라 해도

어디에서 자라고, 무엇을 마시고, 어떤 공기를 맞았는지에 따라
올리브오일은 전혀 다른 맛의 지도를 만들어냅니다.


tempImage6XxdXq.heic 시칠리 라구사 지역. 해발 300의 고도에서 재배되는 올리브, 와인도 같이 재배된다고 한다.
tempImage1GG0zu.heic 시칠리 라구사 지역. 해발 300의 고도에서 재배되는 올리브, 와인도 같이 재배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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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스카나 Monte Amiata 해발 600m 구간의 올리브농장. Piro 농장이며 야생으로 시작된 농장이다.

tempImageJS4IC4.heic 토스카나 Monte Amiata 해발 600m 구간의 올리브농장. Piro 농장이며 야생으로 시작된 농장이다.


✈️ 다음 화 예고 – 품종이 다르면, 맛도 달라질까?

고도와 지형만큼이나 올리브오일의 향미에 영향을 미치는 또 하나의 요인,
바로 품종입니다.


다음 편에서는
시칠리아의 톤다 이블레아, 토스카나의 프란토이오등
이탈리아 대표 품종의 향미 특징을 비교하며,
“올리브 품종은 와인의 품종만큼이나 뚜렷한 차이를 만든다”는 점을
함께 글로서 체험해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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