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문화X역사

이원에 숨은 한국 철도 역사의 한편

by 월간옥이네

4월은 과학의 달, 5월은 가정의 달 그렇다면 6월은? 그렇다. 호국보훈의 달이다. 6월 6일 현충일과 6월 25일 한국전쟁 발발일이 함께 있어 이를 기념하기 위한 다양한 행사가 열린다. 옥천에서는 주로 충혼공원(옥천읍 마암리)을 중심으로 추모행사가 열린다.

조금 뜬금없을지 모르지만 6월에는 또 다른 기념일이 있다. 한국 최초의 철도국 창설일인 6월 28일을 기념일로 하는 철도의 날1)이다. 본래 철도의 날은 한국 최초의 철도인 경인선이 개통한 날인 9월 18일이었으나, 경인선이 일제 침탈의 도구로 활용된 것을 이유로 이번 문재인 정부에서 날짜를 변경했다.

호국보훈과 철도, 서로 관계가 없어 보이는 이 두 주제가 만나 이룬 공간이 있다. 바로 옥천에.


순직철도인위령원-전경_02.jpg 순직철도인위령원 전경



이원역에서 약 2km 떨어진 한적한 곳, 이원면 윤정리 초입에 자리한 순직철도인위령원은 1980년에 조성된 추모공간이다. 한국전쟁에서 순직한 287명을 포함한 2천214명의 위패가 모셔져 있는 철도현충시설이다. 매년 현충일에 순직철도인 유가족들이 모여 추모행사를 열지만, 올해는 코로나19 여파 속에 행사가 취소됐다.


한국철도공사(이하 코레일)에서는 순직철도인위령원을 ‘이원성역’이라 부르고 있다. 이원성역에 모셔져 있는 분들은 2005년 1월 1일 이전, 즉 한국철도공사가 아직 철도청이던 시절 공무원으로써 순직한 분들로 코레일에서는 철도승무원 선배들에 대한 존경의 뜻을 담아 이곳을 지속적으로 관리하고 있다. 이원성역은 코레일이 간직한 철도청 시절의 흔적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이원성역은 ‘순직철도인위령원’이라는 현판이 걸린 입구를 시작으로 일주문까지 다양한 관상수가 심어져있다. 일주문을 지나 경내로 들어서면 안과 밖을 이어주는 극락교와 연못이 있다. 극락교를 건너면 정면으로 순직철도인을 기리는 순직비가 있으며, 오른쪽에는 순직철도인의 영을 위로하는 극락정사, 왼쪽으로는 십자가상과 마리아상이 각 1좌씩. 그리고 위패를 모셔놓은 순영전이 자리하고 있다.


이곳을 찾는 사람들은 주로 순직철도인 유족들로 1년에 7~8가족 정도가 방문한다. 그리고 산책 삼아 방문하는 인근 동네주민들, 호기심에 찾아오는 사람들도 간혹 있다고 하며, 정숙한 분위기를 해치지 않는 선에서 경내 관람이 허용된다.




순직철도인위령원-전경_03.jpg
순직비.jpg
순직철도인위령원 전경과 순직비
순영전.jpg
순영전-내부_03.jpg
순영전 외부와 내부 풍경



이원 묘포장 자리에 만들어진 이원성역
이원면 윤정리가 이원성역의 부지로 선정된 이유를 시설관리를 담당하는 김범창 팀장(대전충남본부 노무팀)에게 들을 수 있었다. 부지 선정 당시 풍수지리를 살피는 지관들이 산세와 정기가 좋다고 하여 정해졌다는 이야기와 더불어 현재의 이원성역 자리가 과거 철도청에서 관리하던 이원 묘포장 자리였다고. 당시 이원 묘포장에서 길러낸 묘목이 철도청이 관리하는 전국의 산하시설로 보내졌지만, 다른 지역에도 묘포장이 생기면서 이원 묘포장이 축소됐고, 그로 인해 생긴 부지에 이원성역이 조성된 것으로 추측된다는 의견도 덧붙였다. 이원의 묘목 역사를 또 한 번 확인할 수 있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대전역-동광장에-위치한-호국철도-기념동상-(출처-한국철도공사).jpg 대전역 동광장에 있는 호국철도 기념동상(사진출처: 한국철도공사).


대전전투에 얽혀있는 옥천 이야기
이원성역을 거닐며 들을 수 있는 또 다른 의미있는 이야기는 이원역을 무대로 전해져 온다. 때는 한국전쟁이 발발하고 약 한 달이 흐른 시점. 미군은 영동에 지휘소를 설치하고 중부전선을 방어하고 있었다. 중부전선의 지휘를 맡고 있던 것은 미군 제24사단의 윌리엄 프리시 딘 소장이었는데, 그는 지휘소가 있던 영동이 아니라 최전선이던 대전에 있었다고 한다. 딘 소장이 대전에 있던 이유는 빠르게 남하하는 북한군의 속도를 늦추는 지연작전을 펼치기 위한 것이 첫 번째였고, 두 번째는 대전역에 남겨진 보급품을 후방으로 가져가기 위한 시간을 벌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물밀 듯이 내려오는 북한군에 의해 딘 소장은 이내 고립됐고, 딘 소장의 구출과 보급품의 후방수송 임무를 위해 미군 30명과 철도청 소속의 김재현 기관사와 현재영·황남호 부기관사로 구성된 특공대가 조직됐다.

이 가운데 현재영 부기관사가 옥천 출신이었으며 이들이 임무를 위해 출발한 역이 이원역이었다는 점에서 옥천, 이원을 배경으로 한 중요한 역사의 한 페이지를 확인할 수 있다.

이렇게 조직된 특공대는 7월 19일 작전 수행을 위해 이원역을 출발한다.

하지만 당시 증기기관차는 은‧엄폐가 불가능했기 때문에 외부공격에 취약했고, 대전역과 세천역 사이에 매복해있던 북한군의 집중포화에 27명의 대원이 목숨을 잃고 만다. 대원들의 희생을 뒤로 하고 힘겹게 대전역에 도착했지만 기관차의 물탱크에 구멍이 나 제대로 된 출력을 내지 못하는 상황에서 결국 철수할 수밖에 없었고, 돌아가는 길에 다시 한 번 공격을 받아 대원 2명과 김재현 기관사가 사망하게 된다. 현재영 부기관사 역시 총격을 받은 상황에서 황남호 부기관사에 의해 야전병원이 있던 옥천역으로 겨우 도착할 수 있었다.

딘 소장의 지연작전은 ‘대전전투’로 기록돼 있으며, 이 전투로 인해 연합군은 낙동강 전선을 형성하여 방어에 성공할 수 있었고 후에 인천상륙작전까지 이어져 전쟁의 양상을 바꾸게 된 계기로 평가받는다.2)

이 이야기는 대전에 고립됐다가 북한군의 포로로 잡힌 딘 소장이 포로교환 때 풀려나 1954년에 쓴 회고록을 통해서 자세하게 전해질 수 있었고, 살아남은 현재영3), 황남호 기관사의 증언 역시 남겨져 있다.

딘 소장 구출작전에 참여했던 3명의 기관사는 한국전쟁 당시 나라를 위해 희생한 철도인의 상징이 됐고, 2015년 대전역 동광장에 기념동상이 세워졌다. 구출작전에 사용됐던 ‘미카형 증기기관차 129호’는 등록문화재로 지정되어 국립대전현충원에 전시돼 있다.



현재영-부기관사-(출처-한국철도공사).jpg
황남호-부기관사-(출처-한국철도공사).jpg
김재현-기관사-(출처-한국철도공사).jpg
사진 왼쪽부터 현재영 부기관사, 황남호 부기관사, 김재현 기관사(사진출처: 한국철도공사)



1) 철도국 창설일은 음력 6월 28일로 양력으로 환산하면 7월 30일이다. 하지만 철도의 날은 양력 6월 28일로 지정되었다.
2) 배은선 저 ‘기차가 온다’ 참고
3) 옥천 출신인 현재영 부기관사는 1986년 철도청에서 퇴직 후, 구출작전의 날짜와 같은 2010년 7월 19일에 돌아가셨다.





월간 옥이네 VOL.36(2020.6)

글 사진 이상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너무 좋은 책 혼자 볼 수 없어서 직접 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