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는 어떻게 여자들의 놀이터가 되었나
조애나 러스 지음, 나현영 역 | 포도밭출판사 | 가격 20,000원
김초엽 작가의 SF 소설집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은 2019년 출간 이후 지난 1년간 10만부 이상의 판매고를 기록했다. 역시나 SF 작가 정세랑의 장편소설 <시선으로부터>는 연일 불황이라는 출판계에서 출간 열흘 만에 3만 5천부 이상의 판매 기록을 세웠다. 바야흐로 ‘SF 전성시대’가 도래했음을 선언한 셈이다.
교보문고가 최근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SF 문학의 구매자 중 여성이 64%, 그중에서도 20대가 약 25%로 전체 독자 중 가장 높은 비율을 보인다. “SF는 어떻게 여자들의 놀이터가 되었”을까. 어쩌면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이 책 속에서 찾을 수 있지 않을까.
<SF는 어떻게 여자들의 놀이터가 되었나>는 2011년 뇌졸중으로 운명을 달리한 미국의 SF 작가이자 비평가, 페미니스트이면서 퀴어 활동가이기도 했던 조애나 러스의 SF 비평을 담고 있다. 1930년에 태어난 작가가 주로 1970년대에 쓴 비평임에도 그가 지적한 문제점이 현대 사회와 여전히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것을 보며 작가의 서늘한 통찰력에 놀라면서도 한편으론 씁쓸함을 감출 수 없게 될지도 모른다.
작가는 “성차별주의적인 문학 속의 여성은 오직 불필요하거나 의도적인 행동만을 한다”와 같은 통쾌하고도 정확한 비판을 통해 당시 SF 문학이 어떻게 여성을 ‘대상화’하고 있는지를 지적한다. 아주 오래도록 “문화의 성별이 남성”인 역사 속에서 “모든 오래된 플롯이 남성”이었음을 밝히며, 대상화된 존재로 변방에 머물던 여성이 완전히 새로운 규칙의 세계를 만들기 위해 ‘SF’라는 장르를 선택하게 된 것이라 말한다.
우리 사회가 금기시하는 것에 질문을 던지는 것이 바로 SF의 특징이자 매력이 아닐까. 흑인에 대한 차별이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던 1960년대 미국, 23세기를 배경으로 제작된 SF 드라마 <스타트렉>에서 흑인과 백인의 키스신을 방영했듯이 말이다. 미국의 SF 작가 코니 윌리스는 그의 소설 <여왕마저도>에서 일찍이 생리하지 않는 여성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SF는 기존의 관습에 반기를 들며 소외된 존재를 만드는 사회 시스템과 낡은 편견을 성찰하게 한다. 여자는 더 이상 판타지라는 누더기를 껴입은 성녀의 모습도, 창녀의 모습도 아니다. 퀴어, 장애인 역시 소수자로 그려지지 않는다. 이런 세상은 자연스레 우리에게 질문을 던진다. 당신은 어떤 세상을 꿈꾸고 있느냐고.
SF는 과거에도, 현재에도 없는 규칙이 존재하는 세계를 꿈꾸는 것에서 나아가 기어코 새로운 세계를 창조해내기에 이른다. 이 세계에는 ‘현실’에서 소외된 인물의 편에 서고 싶어 하는 이들의 마음이 깃들어있다. 이 마음은 끝내 더 존중 받아야 할 많은 존재의 입을 빌려 우리가 아는 세상이 새로운 방향으로 변해야만 한다고, 변할 수 있다고 선언한다.
서문에서 작가는 말한다. “SF에 특별한 애정을 갖는 것은 SF가 현실을 바꿈으로써 현실을 분석하기 때문”이라고. SF 작가 정세랑은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미래의 사람들이 이 시대를 경멸하지 않아도 될 방향으로 궤도를 수정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세계는 더디게 더 많은 존재들을 존엄과 존중의 테두리 안에 포함시키는 방향으로 나아갈 거라고 믿는다”고.
최근 출판계에 부는 SF 열풍에는 이런 배경이 있을 것이다. 기존 관습에 저항하며 ‘다른 존재’를 포용하는 것에 대한 필요성과 공감. SF가 우리의 마음을 두드리는 가운데, 이 책은 이렇게 말하는 듯하다. 더 나은 미래를 생각하는 마음으로, 현재 시점에서 이루어지지 않은 것에 대해 던지는 물음으로, 자신이 가진 소수성을 위한 투쟁으로, 실은 당신과 내가 크게 다르지 않다는 근거로. SF는 이렇게, 우리 안에 존재하고 있다고.
글 서효원
월간옥이네 2020년 8월호(VOL.38)
월간 옥이네는 자치와 자급, 생태를 기본 가치로 삼아 지역의 공동체와 문화, 역사, 사람을 담습니다. '정기 구독'으로 월간 옥이네를 응원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