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둠벙에 빠진 날 5탄 - 다큐 <서둘러, 천천히> 상영회

by 월간옥이네

'둠벙에 빠진 날' 5탄이 돌아왔습니다. 이번 '둠벙에 빠진 날’은 다큐멘터리 <서둘러, 천천히> 상영회로 채워졌습니다. 영화 <서둘러, 천천히>는 음악을 통해 새로운 삶의 방식을 이야기하는 다큐멘터리로, 록밴드 '아나킨프로젝트'가 덴마크 자유도시 크리스티아니아에 다녀오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10월 20일 금요일 오후 7시 진행됐던 <서둘러, 천천히> 상영회와 현영애 감독과의 대화 현장을 지면에 담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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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해’하고도 ‘자연스러운’

“it's a beautiful life 난 너의 곁에 있을게.(crush-beautiful)” 영화 상영에 앞서, 지역에서 노래하는 청년 김진혁(25)씨의 목소리가 둠벙에 울려퍼졌다. 담담하면서도 달달한 감성을 담은 그의 목소리에 관객 모두가 주목한다. “억지로 몸을 끌고 나와 조용한 카페에 앉아서 길을 지나가는 사람들의 표정을 보다 왠지 나만 이런 것 같아(로이킴-북두칠성)” 외로운 감성 우뚝 솟아있는 두 번째 노래를 들으면서는 모두가 각자의 외로움을 쳐다보지 않았을까. 노랫말이 사람들의 귀에 닿고, 마음에 닿아 오롯한 공명이 생긴다.


노래의 여운을 이어받아 곧바로 영화 <서둘러, 천천히>가 상영됐다.


“긴 생머리 얼굴은 고양이상이야 음대생이고 지금은 졸업반이야 내 차는 아니지만 매일 바래다 줬잖아 아직도 모르겠니 나의 순수한 마음 어떻게 해요 걱정만 돼요 어떻게 해요 걱정만 돼요 보스는 나를 좋아해 나도 보스를 좋아해 보스의 여자친구도 좋아해 보스의 여자친군 돈 좋아해 보스의 여자친군 돈 좋아해(아나킨프로젝트, ‘보스의 여자친구’)”


조금은 ‘난해’하게도 느껴졌던 그 가삿말을 흥얼거리는 그들은 록밴드 아나킨 프로젝트다. 문화활동가, 목수, 바리스타의 직업을 각자 병행하며 밴드활동을 잇고 있는 그들은 공동체에 관심을 가지고 덴마크의 ‘크리스티아니아’로 떠났다.


자유도시, 자유공동체, 히피공동체 여러 가지 이름으로 불리는 그곳, '크리스티아니아.' 그곳에서 만난 예술가 벤자민 헤덴그란은 이렇게 말한다.


“이 제도(실직자에게 생활비를 지원하는 대신, 구직 활동을 요구하는 제도)는 내 삶의 방식에 적합하지 않아요. 왜냐하면 나는 성심껏 일하고 있기 때문이에요. 내 안의 목소리는 내가 이 세상에서 할 일을 말해줍니다. 세상과 나를 위해 열심히 일하고 있는데, 저에게 판매원 같은 직업을 강요한다면 저의 개발을 막는 것이 됩니다.”


“그래서 공무원에게 말했죠. 당신네 시스템은 제가 하는 영적인 일을 정의하지 못해요. 당신들 시스템엔 영적인 존재에 관한 정의가 없어요. 이건 제 책임이 아닙니다. 그건 당신의 책임입니다. 시스템을 바꾸세요.”


이 말 역시 한국사회에선 ‘난해’한 말일 수 있다. 그러나 그에겐 그리고 그곳에서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생각과 생활 태도일 수도 있다. 희한한 것과 자연스러운 것, 현실과 비현실 간의 구분이 모호해지는 순간이다.


서둘러, 천천히

다른 삶을 꿈꾼다는 건, 다른 공동체를 꿈꾸는 것인지 모른다. 크리스티아니아를 상징하는 동물은 달팽이다. ‘서둘러, 천천히’ 작은 행동 하나씩 하면서, 이상을 추구하는 건 좀 더 길게 보자는 의미에서다. 이 말은 크리스티아니아의 모태와도 연관이 깊다.


“당시 유럽에 ‘스쾃(공간 점유)’이란 청년운동이 활발할 때기도 했고, 돈도 없고 집도 없는 주민들이 왜 땅을 비워놓고 있냐며, 벽을 부수고 들어가서 점거를 하고 들어간 거에요.” 당시 정부가 이를 ‘사회적 실험’이라 명명하고 2~3년간 살도록 허용을 해준 것.


현영애 감독은 이어 “다양한 사람들이 함께 사니까, 매일 회의만 하고 합의점을 찾아내는 게 어려웠다고 해요. 그렇게 다른 사상을 가진 사람은 많이 떠나기도 했고, 같이 사는 사람들끼리 어떤 사안에 대해 투표나 다수결 원칙을 거치는 게 아니라 만장일치 합의가 될 때까지 계속 희의를 거친대요. 반대하는 사람이 안 나타날 때까지 말이에요.” 처음엔 반대하는 사람이 많더라도, 생각이 바뀌거나 혹은 회의에 참석하지 않을 때까지 ‘천천히’ 합의점을 찾아나가는 것.


만약 내게 날개가 있다면

중국에 놀러 가야지

만약 내게 날개가 있다면

벤츠에다 오줌을 눠야지

만약 내게 날개가 있다면

비행기 옆에서 자랑을 해야지


영화 <서둘러, 천천히> 중반부에 느릿느릿 기어가는 달팽이와 함께 흘러나왔던 노랫말이다. 영화 속 등장하는 크리스티아니아에서 한 가지 ‘특이’했던 점은 집을 공유한다는 점이다. 인간이 땅을 소유할 수 없다는 관점을 모두가 만장일치로 합의했기 때문이다.


“집을 공유한다는 건 대단한 일이라고 봐요. 그런 삶과 공동체가 지속되려면, 영성에 관심을 갖는 게 중요할 것 같아요. 록밴드 아나킨 프로젝트의 노래에서도 끊임없이 말하는 것이, 삼겹살 먹는 등 현재를 진심으로 즐기고 있는 일상을 강조하더라고요. 영성이란 게, 어떤 외계인과의 연결점을 찾는 게 아니라 그렇게 자연스럽고 편안한 일상을 즐기는 것인 것 같아요.” (고갑준 아자학교 대표)


“한국에서도 여러 형태로 공동체가 많이 등장하고 있어요. 일례로, 서울에서도 ‘스쾃’ 형태로 점거한 땅이 있어요. 경의선 철길 구간을 지하화하면서 비어 있게 된 공간을 대기업 사유지로 돌리려는 과정에서, 많은 공동체가 ‘경의선 공유지 시민행동’라는 이름으로 다양한 주체들이 자발적으로 모인 거에요. 땅을 인수해 독점하는 경향이 대다수이긴 하지만, 한국에서도 느리게나마 공동체가 등장하고 있어요.”(루카)


크리스티아니아를 해석하는 다양한 관점 속에서 영화 <서둘러, 천천히>가 주는 울림은 더욱 커진다. 현영애 감독은 다시 한 번 ‘자연스러움’의 의미를 꺼낸다.


“땅은 인간이 소유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것, 같이 아름답게 꾸미고 필요에 따라 집을 나눈다는 것. 거기에선 오히려 그게 자연스럽고 편안해보였어요. 그 모습을 보고 한국에 돌아오니, 부동산 투기하는 모습이 오히려 기괴하게 느껴지더라고요. ‘뺏기지 않을까’ 하는 마음을 사회가 조장하는 게 아닌가 싶고, 그러다보니 자연스러움을 놓치고 사는 게 아닌가 싶어요.” 이에 감독과의 대화 진행을 맡은 월간 옥이네 장재원 편집장이 묻는다. “이곳에서 공동체를 만들고 싶은 생각은 없나요?”


“예전엔 현실 조건을 따지면서, 땅 등 어떤 조건이 갖춰져야지 하는 마음을 갖고 절망도 했었어요. 하지만 지금은 생각이 바뀌었어요. 사람과 대화를 나누는 이 순간 자체가 이미 공동체의 시작이라고 봐요. 가치를 공유할 수 있는 사람이 하나씩 모이고, 그런 활동 자체가 이미 공동체구나. 공동체를 만드는 일은 이미 진행 중이에요. 옥천에서도 이런 문화 공간과 미디어가 그런 일을 계속 해나갔으면 좋겠어요.”



월간 옥이네 2017년 11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2017년 11월호 구입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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