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디자인> 2018년 3월호
바나나맛우유, 메로나, 초코파이, 새우깡, 돼지바… 이들의 공통점은? 짧게는 26년, 길게는 50년 가까이 된 장수 제과·빙과 브랜드라는 점이다. 강산이 바뀌어도 몇 번은 바뀌었을 시간 동안 묵묵히 한자리를 지킨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이 정도면 그동안 대중과 쌓아온 유대감을 우정이라고 표현해도 크게 어색하지 않을 것 같다. 그런데 이 한결같음은 때로 양날의 검이 되기도 한다. 익숙하고 편안한 제품은 자칫 너무 뻔해 별 기대를 하지 않게 되기 십상이기 때문. 최근 몇 년 사이 장수 브랜드들이 보여준 다양한 커뮤니케이션 전략이 흥미롭게 여겨지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이들은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지난해 다양한 종류의 프로젝트를 봇물처럼 쏟아냈다. 패션, 코즈메틱, 리빙, 문구, 심지어 디지털 애플리케이션까지. 왜 이처럼 과감한 전략을 수립한 것일까? 그리고 밀레니얼 세대를 주축으로 한 소비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일까? 장수 제과 브랜드들의 최근 행보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다.
2016년 11월 빙그레 바나나맛우유와 CJ올리브영의 자체 브랜드 라운드어라운드가 협업해 출시한 뷰티 제품은 다소 보수적이었던 제과업계가 컬래버레이션 프로젝트에 자신감을 얻는 계기가 됐다. 출시 열흘 만에 초도 물량을 완전히 소진시킨 데 이어 2017년 1월에는 매출 10억 원을 돌파하며 푸드메틱의 대명사가 되었다. 패션 브랜드 역시 장수 제과 브랜드에 눈독을 들였다. 실제로 지난해 매스 패션 브랜드들의 최대 화두 가운데 하나는 장수 제과 브랜드와의 협업 프로젝트였다. 비이커는 지난해 발렌타인데이를 맞아 초코파이와 협업으로 한정판 에코백과 티셔츠를 선보였다. 여름이 되자 본격적으로 컬래버레이션 제품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SPA 브랜드 스파오는 빙그레 메로나, 비비빅, 붕어싸만코 등의 아이덴티티를 활용한 여름 패션 상품 ‘쿨~라보레이션’ 컬렉션을 공개했다. 휠라 역시 대표 슈즈 라인인 코트디럭스와 슬리퍼 ‘드리프터’에 메로나의 색감과 그래픽을 입힌 제품을 선보여 출시 2주 만에 ‘완판’시키는 기염을 토했다. 이에 질세라 에잇세컨즈는 농심 새우깡과 ‘서머 프렌즈’라는 콘셉트로 티셔츠, 파자마, 원피스 등 의류 제품을 비롯해 모자, 양말, 에코백, 맥주잔 등 총 45종의 컬래버레이션 제품을 선보이기도 했다. 패션 및 뷰티 브랜드와 장수 제과 브랜드의 공생 관계는 앞으로도 한동안 계속될 전망이다. 스파오는 지난 1월 서울우유와 새로운 협업 제품 라인을 출시했고 같은 달 올리브영 역시 빙그레와 16종의 보디 케어 제품으로 이뤄진 ‘라운드어라운드×바나나맛우유 시즌 2’를 공개했다.
굿즈 전성시대의 열풍은 제과업계까지 이어졌다. 롯데푸드는 돼지바의 아이덴티티를 활용한 휴대용 선풍기, 노트, 펜, 보조 배터리, 스티커, 에코백 등을 선보였다. 판매용이 아닌 이벤트 경품용이었지만 소셜 미디어상에서 화제가 되었다. 굿즈는 브랜드 확장에서 소비자들에게 있을 수 있는 심리적 장벽을 허무는 데에도 탁월한 역할을 한다. 돼지바의 경우 돼지바 핫도그로 제품 영역을 확장하면서 핫팩과 담요를 이벤트로 증정하는 방식으로 굿즈를 활용했다. 또 농심은 모닝글로리와 손잡고 새우깡 노트 2종을 비롯해 바나나킥, 오징어집, 닭다리, 포스틱 등 인기 스낵 브랜드를 활용한 노트를 출시했다. 지난해 출시 25주년을 맞이한 메로나는 메로나 수세미를 제작해 세븐일레븐에서 한 달간 한정 판매하기도 했다. 애경은 메로나 모양을 본뜬 ‘2080×빙그레 칫솔’을 출시했는데, 생필품이긴 하지만 이를 수용하는 소비자들의 심리는 굿즈 수집과 유사했다.
굿즈나 이종 영역 브랜드와의 컬래버레이션 같은 이벤트 성격의 프로젝트와 별개로 제과 브랜드들의 중·장기적인 관점이 엿보이는 변화도 있다. 일례로 빙그레의 경우, 2016년 1인용 투게더를 출시했는데, 오래전 CM송 가사가 “엄마, 아빠도 함께 투게더~ 온 가족이 함께 투게더~”였다는 것을 떠올려보면 이러한 방향성의 선회는 상당히 흥미롭다. 1인 가구의 증가가 가족을 타깃으로 했던 대용량 아이스크림의 아이덴티티를 변화시킨 것이다. 디저트 시장의 확장도 이들의 변화에 한몫했다. 지난해 11월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가 발표한 ‘국내외 디저트 외식 시장 조사 결과’에 따르면 2016년 국내 디저트 시장 규모는 매출액 기준 8조 9760억 원으로 전년 대비 13.9% 증가했다. 이러한 시대적 변화에 발맞춘 제과 브랜드의 능동적 대처는 주로 디저트 카페 형태로 나타났다. 빙그레는 2016년 현대시티아울렛 동대문과 2017년 제주도 중문관광단지에 바나나맛우유를 콘셉트로 한 옐로우카페를 오픈했다. 오리온도 지난해 말 현대백화점 판교점에 디저트 전문 매장 ‘초코파이 하우스’를 열었는데 이곳에서는 오리온의 대표 브랜드 ‘초코파이情’을 재해석한 프리미엄 디저트를 맛볼 수 있다.
글: 최명환 기자 ⓒ월간 <디자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