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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 십 대 후반에서 이십대에 걸치는, 인생의 젊은 나이.
'청춘'. 봄처럼 푸르다는 의미가 아름다우면서도 억울하게 느껴지는 애매한 단어. 그 시절을 지나온 사람들에게는 터무니없이 어리고 부러운 나이일 터. 하지만 정작 당사자들에게는 '청춘'이라는 젊음의 시기가 마냥 낭만적으로만 느껴지지는 않는다. 알 수 없는 미래는 언제나 불확실하게 다가오기에 어른이라는 무게가 더해지는 내일이 두려운 때다. 각자가 처한 현실은 모두 다를 테지만 동시에 우린 '기대'와 '불안'이라는 공통의 정서를 안고 살아가고 있다.
아직 어리지만 그래서 더 아파야만 하는 역설을 안고 살아가는 그대들에게, ‘그레타 거윅Greta Gerwig’의 영화는 따뜻한 위로를 전해준다. 영화 <작은 아씨들>(2020)을 연출한 감독이자 영화배우인 '그레타 거윅'은 여러 작품을 통해 현시대를 살아가는 젊은 여성들의 삶과 심리를 섬세하게 풀어낸다. 때로는 엉뚱하고 어설프지만 한편으로는 꿋꿋이 살아가는 '그레타 거윅'의 캐릭터들이 사랑받는 것은 그녀의 자전적 시행착오가 작품을 통해 묻어나기 때문이다.
미국 인디영화계로 첫발을 내디딘 그녀지만 '노아 바움백' 감독과 <프란시스 하>(2012) 각본 작업을 통해 배우와 연출가로 대중에게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그레타 거윅'이 각본을 쓰거나 연출한 작품들의 특징은 바로 '여성', 과 '성장'이다. 영화의 대부분은 실제 그녀의 고향이었던 미국의 한적한 도시 '새크라멘토'와 그 대척점에 있는 찬란한 대도시 '뉴욕'이 주 무대를 이룬다.
익숙한 공간을 벗어나 도시에서의 성공을 동경하는 여성 캐릭터를 통해 '그레타 거윅'은 꿈을 향해 나아가는 청춘들의 성장기를 그려낸다.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허덕이지만 절대 좌절하지 않는 '달려라 하니' 같은 캐릭터들. 그런 '그레타 거윅'의 청춘 기록이 가장 잘 드러나는 작품 세 편을 시간의 서사를 덧대 소개한다. 10대의 사춘기를 겪는 소녀 <레이디 버드>(2018), 꿈을 향해 분투하는 20대 <프란시스 하>(2012), 그리고 완벽한 결혼과 사랑을 꿈꾸는 <매기스 플랜>(2015). 어린 시절의 사춘기 소녀부터 어른 아이가 되기까지, 처음부터 끝까지 어설프지만 그래서 더 아름다운 우리들의 지금에 대한 의미를 다시금 되짚어본다.
감독 : 그레타거윅 / 주연 : 시얼샤 로넌
“원래 행복하지 못한 사람도 있어.”
그레타 거윅의 첫 연출 장편작 <레이디 버드Lady Bird>. 주인공인 '크리스틴'은 질풍노도의 사춘기를 겪는 고등학생 소녀다. 통통 튀는데 어딘가 촌스러운 이 아이는 자신의 이름을 '레이디 버드'라고 정하고 모두에게 그렇게 불리기를 원한다. 고향을 떠나 새로운 곳으로 도망치고 싶은 '레이디 버드'는 현재의 상황들이 모두 마음에 들지 않는다.
구석에 처박힌 작은 동네, 재미없는 학교와 가족과의 다툼은 새로운 삶에 대한 열망을 더욱 부추긴다. 자신의 이름, 학교, 친구들 그리고 심지어 가족까지 '크리스틴'을 규정하는 모든 정체성을 거부하면서 자아를 찾기 위해 발버둥 치는 그녀는 자신이 주체적 존재로 살아가고 있다고 굳게 믿는다.
진짜 자신을 찾기 위해 고향을 떠나 새로운 환경에 놓인 '레이디 버드'. 하지만 그곳에서 그녀는 자신이 그토록 외면하려 했던 '크리스틴'을 인정하게 되는 아이러니한 감정을 겪게 된다. ‘그레타 거윅’은 어린 시절 겪었던 방황의 순간들을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찾고자 발버둥 치는 사춘기 소녀의 모습을 표현하고자 했다.
‘떠난 후에야 사랑했던 고향에 러브레터를 쓰고 싶다’는 동기에서 비롯된 이 영화는 고향과 가족에 대한 소중함을 되새기게 해준다. 가장 소중한 것은 내 손에 없을 때 비로소 그 가치를 알게 된다는 사실. 그리고 사랑받지 못할까 봐 ‘나’라는 정체성을 부정하고 또 다른 ‘나’를 찾아 헤매려던 어리숙했던 날들을, 애정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게 해주는 가장 사랑스러운 성장 영화다.
감독 : 노아 바움백 , 각본 & 주연 : 그레타 거윅
“사랑해, 친구야. 나보다 핸드폰을 더 사랑하겠지만”
친구 '소피'와의 세계가 가장 소중한 '프란시스'는 브루클린의 작은 아파트에서 세상을 정복하겠다는 당찬 꿈을 안고 살아간다. 무용수로 성공하고 싶다는 기대와는 달리 현실은 연습생 신세만 이어진다. 우정, 사랑, 일 무엇 하나 제대로 되는 일 없는 그녀가 홀로서기를 하는 과정들은 웃픈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그레타 거윅'이 공동 각본 작업을 거친 <프란시스 하>는 실제 그녀가 대학을 졸업하고 친구들과 함께 살며 겪었던 일화들을 캐릭터에 투영시켰다고 한다.
뭐든 할 수 있을 것만 같은 자신감과 동시에 아무것도 될 수 없을 것 같은 절망감이 공존하는 그런 나이. 자신의 직업을 묻는 질문에 ‘진짜 하고 싶은 일이지만 진짜로 하고 있지 않다’라는 '프란시스'의 답변은 이상과 현실을 저울질하는 사회 초년생들에게 익숙한 동질감을 느끼게 한다.
꿈을 이루려 노력하지만 무언가를 희생하기엔 지극히 불안한 상황 속에서 청춘들이 어떻게 버티며 살아가는지를 보여주는 유쾌한 영화. 엉뚱한 캐릭터들의 매력과 보통의 청년들이 겪는 현실적 스토리들이 더해져 보는 이들로 하여금 친근감을 느낄 수 있도록 한다.
극중 ‘프란시스’의 찌질하고 어설픈 모습들은 꿈을 향해 나아가는 ‘미생’들에게 애정과 위로를 전해준다. 다수의 보통 사람들과는 다른 길을 가더라도 자신만의 기준을 가지고 꿋꿋하게 살아가는 그녀를 보며 용기를 얻는다. 단 하나의 길만이 행복에 대한 정답은 아니라는 것을. 그리고 정해진 기준은 없기에 우리의 삶이 불완전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어렴풋이 느끼게 된다. 그래도 영화는 괜찮다고 말한다. 어떤 모양새로든 살아가고 있는 것 자체가 이미 꽤 잘하고 있다는 증표일 테니까.
감독 : 레베카 밀러 | 출연 : 에단 호크, 줄리안 무어, 그레타 거윅
“나로 사는 게 지긋지긋해”
<매기스 플랜>에 ‘매기’의 사랑관은 조금 특별하다. 아이는 갖고 싶지만 결혼은 하고 싶지 않은 감성파 뉴요커 '매기'. 독특한 그녀에게는 연애, 결혼, 출산에 걸친 인생 '계획'이 존재한다. 자신의 아이를 갖기 위해 완벽한 정자 기증자를 찾아 나서는데 그러던 와중에 우연히 대학교수 '존'을 만나 사랑에 빠진다. 예정에 없던 스토리지만 우연처럼 만난 남자와 불같은 사랑에 빠져 결혼을 하게 되는 그녀. 그 후 '존'의 전처인 '조젯'과의 불편한 삼각관계로 둘러싼 영화는 예측 불가능하면서도 복잡한 현대인들의 사랑을 재치있게 풀어낸다.
현실에선 '막장 드라마'에 불과하지만 어딘가 사랑스러운 로맨스 스토리. 긍정적인 태도로 일생을 살아가는 '매기'에게도 인생은 계속해서 수수께끼 같은 질문을 던진다. 완벽한 플랜대로 살아보려고 하지만 뜻대로 되는 일이 그다지 많지 않다는 사실을, 우리 모두 알고 있을 것이다. 인생 계획을 세운다는 것이 얼마나 부질없는 짓인가에 대한 메시지를 주지만 <매기스 플랜>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살아가자고 다독여주는 듯하다.
매기의 계획은 계속해서 엇나간다. 하지만 그녀는 그것을 실패로 남기지 않고 모든 우연을 수용하며 살아간다. 결국 틀린 플랜은 하나도 없다는 것. 그리고 우리 삶에 일어나는 모든 일들은 다 각자의 의미가 있다는 것을 긍정하게끔 한다. 예측할 수 없는 미래에 대한 낙관을 던지며 '매기'는 다시 또 새로운 사랑에 빠지게 된다. '매기'라는 순수하고 천진난만한 캐릭터를 표현한 '그레타 거윅'의 연기가 매력적인 영화. 그렇게 그녀의 작품들은 청춘의 기록을 남기며 우리의 마음속에 긴 여운을 준다.
글 | 김지아
편집 | 김희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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