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은 우리 모두가 매우 따분하고 비슷한 방식으로 보게 합니다. 나는 항상 그림이 우리로 하여금 세상을 볼 수 있게 만들어준다고 생각해왔습니다. 그림이 없다면 누가 무엇을 볼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다고 봅니다.
'있는 그대로' 존재하는 대상은 없다. 모든 존재들이 그의 눈에는 매순간 새롭게 다가온다. 풍경과 사물 그리고 사람들을 자신만의 시선으로 풀어내는 데이비드 호크니의 화법은 한마디로 정의하기 어려운 독창적인 매력을 지니고 있다. 80세를 넘긴 나이에도 불구하고 그는 아직도 어린아이처럼 실험을 멈추지 않는다. 매일 아이패드로 주변의 풍경들을 놀이하듯 그려내며 순수한 호기심을 투영하는 호크니. 그림을 보다 보면 대상을 섬세하게 관찰하고 묘사하고자 하는 진솔함이 느껴진다. 호크니의 작품 속 지극히 사적인 대상들이 우리의 마음을 매혹하는 이유다.
생존 작가 중 최고 경매가를 기록했던 데이비드 호크니는 화가이자 사진작가, 판화가, 무대 디자이너 등 영역을 제한하지 않고 다방면적 예술가로 인정받고 있다. 1937년 영국 요크셔 출생으로 브래드퍼드 미술학교와 런던 왕립 미술대학을 거쳐 예술가로서의 활동 영역을 넓혀갔다. 학생 시절부터 작가로 주목받았던 그는 1960년대 미국 로스앤젤레스로 작업 공간을 이동하면서 본격적으로 대중적인 인지도를 쌓기 시작했다. 그의 작품은 회화, 사진, 판화, 일러스트레이션처럼 방법과 소재를 불문하고 여러 영역을 실험하듯 이뤄진다. 그는 자신만의 스타일에는 무척 고집스러운 화가였지만 표현 방법에 있어서만큼은 상당히 개방적이었다.
자연과 일상 속 풍경, 물, 지인들 그리고 인체. 호크니는 순간에 몰두할 수 있도록 이끄는 대상들에게 매력을 느꼈다. 그에게 눈으로 본다는 것은 객관적인 시선을 넘어서 더욱 깊이 마음을 읽는 행위였던 것. 어떤 대상이나 광경을 볼 때, 그곳을 유심히 관찰한 사람만이 알아볼 수 있는 것이 존재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세상이 어떻게 생겼는지, 그리고 사람들이 그것을 어떻게 재현하고 해석하는지가 삶을 관통하는 핵심적인 질문들이 되었다. 즉 '사람과 그림'을 통해 호크니는 인생을 되묻는다.
호크니의 그림은 지극히 사적이다. 그의 작품적 특징 중 하나인 '이중 초상 기법'은 두 인물을 내세워 표정이나 분위기 묘사를 통해 섬세한 심리를 그려낸다. 주로 주변 가족, 친구들, 연인, 유명인 등을 그려냈다. 대표 작품으로는 그의 뮤즈였던 의상 디자이너 셸리아 버트웰을 그린 <클라크 부부와 애완묘 퍼시>,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1년 전에 완성한 <나의 부모님>이 있다.
호크니의 이중 초상화는 인물들의 특징뿐만 아니라 그 사이의 서사를 전달한다. 관객을 응시하고 있지만 쉽게 파악할 수 없는 표정들은 작품 속 무덤덤한 인물에 대한 호기심을 일으키게 한다. 당시 유행하던 추상주의에서 탈피하고자 했던 호크니는 자연주의 기법에 따라 대상을 최대한 실제와 가깝게 묘사하고자 했다. 그는 하나의 얼굴을 오랫동안 들여다보며 많은 의미를 부여했다. <클라크 부부와 애완묘 퍼시>를 작업할 당시에도 원하는 얼굴을 얻기 위해 모델의 자세를 정하는 데 무척 애를 썼다고 한다. 의도적인 인물의 시선과 사물의 배치는 인간관계의 미묘한 긴장감과 갈등 그리고 근원적 고독을 표현해낸다. 눈으로 보고 마음으로 느꼈던 호크니의 세밀한 시선이 작품을 통해 드러난다.
추상화의 한계를 느끼면서도 호크니는 피카소의 추상주의 철학에 큰 영향을 받았다. 호크니에게 물은 추상을 위한 대표적인 도구였다. 물은 어떤 방식으로든 자유롭게 표현이 가능했고 이를 통해서 그는 자신만의 또 다른 스타일을 창조할 수 있었다. 대표작 중 하나인 <더 큰 첨벙>을 시작으로 이어진 수영장 시리즈는 그의 특징이 가장 잘 드러난 연작이다.
1960년대 초 영국에서는 동성애가 불법이던 시절, 그는 LA로 이주한 뒤 자신의 성적 욕망과 취향을 표현하는 작품들을 선보이기 시작한다. 수영장이 배경이 된 이유는 물이라는 소재와 더불어 나체인 남성의 모습을 마음껏 보고 그릴 수 있었기 때문이다. 단순하고 절제된 풍경 묘사와 대비되는 과감한 인체 묘사는 관객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또한 물의 파동과 흐름을 섬세하게 묘사해 정적인 그림 속에서 파장을 일으키며 사람들로 하여금 그림 속의 장면을 상상하게 한다.
물속에서 헤엄치고 있는 사람과 그를 물끄러미 내려다보는 주황색 재킷의 또 다른 남자. <예술가의 초상>은 유일하게 이중 초상 방식과 수영장을 모두 담아낸 호크니의 역작이다. 자신의 오랜 연인이었던 피터 슐레진져와 이별한 아픔을 주제로 만들어진 작품이다. 밝은 햇살과 평온한 풍경을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헤어진 후 겪는 복잡 미묘한 심정과 감정의 단절을 표현해낸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오른쪽에 서 있는 남자는 호크니가 직접 찍었던 피터의 모습을 바탕으로 그린 것이다. 피터와 단절된 채로 물속에서 부유하는 사람은 사랑을 잃고 방황하는 호크니의 모습일 터. 전환점에 다다르는 그가 어떤 선택을 내릴지는 알 수 없다. 호크니의 가슴 아픈 서사가 담긴 이야기로 인해 가장 개인적인 작품이기도 하다.
호크니에게 풍경화는 무엇보다 계절의 변화와 생명의 순환을 담기 위한 중요한 수단이다. 50개의 작은 캔버스가 합쳐져 높이 4.5 미터, 길이 12미터인 작품 <와터 근처의 더 큰 나무들 또는 새로운 포스트>는 미술 역사상 가장 큰 풍경화다. 거대한 회화 작품의 차별점은 단순히 크기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다. 관객은 캔버스 앞에서 작품을 들여다보지만 동시에 그 작품 속에 존재하게 된다. 마치 그 장소에 있는 것처럼 친밀감을 느낄 수 있게 하는 것이 호크니의 궁극적인 목표 중 하나다.
<와터 근처의 더 큰 나무들>의 주제는 평범한 시골 마을의 작은 잡목림이다. 빨간 벽돌의 집과 곡선을 그리며 멀어져가는 길, 전경에는 만개한 수선화 몇 포기가 있다. 거대한 크기의 작품 앞에서 사람들은 실제 나무 앞에 서는 듯한 감정을 느끼고 그와 동시에 다양성 속에서 길을 잃게 된다. 호크니가 표현해내고자 했던 '자연의 무한성'이 구현되는 것이다. 현실에 대한 또 다른 해방구이자 새로운 종류의 공간을 창조해낸 그의 작품들은 소설과도 같은 시각적 경험을 제공해 준다.
당신의 마음은 이미 그 안에 있습니다. 이 작품은 당신을 감싸 안습니다. 최종 작품은 보는 이에게 그곳에 존재한다는 감각을 일깨워줄 것입니다.
'호크니 자체가 하나의 장르다'라는 말이 있듯이 그는 양식의 엄격함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스타일로 세상을 그려낸다. 그는 객관적인 시각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믿는다. 모든 사람의 기억과 감정이 모두 다르기 때문에 같은 풍경을 보더라도 필연적으로 다른 요소들을 바라보게 된다. 오랜 시간 동안 호크니가 사랑받는 이유는 자신이 보는 것들을 가장 솔직하고 충실하게 표현하기 때문일 것이다. 남들이 뭐라고 하던 자기가 좋아하고 느끼는 것들을 세상 속으로 내던진다. 그렇게 지극히 사적인 방식으로 '더 큰 첨벙'을 일으키는 호크니의 청량함은 오늘도 계속되고 있다.
글 | 김지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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