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리 카우프만의 애니메이션 영화 <아노말리사>는 사랑의 본래 의미를 드러낸다. 주인공 '마이클'은 성공적인 자기 계발서 작가이다. 그런데 그는 실존적 위기에 빠져있다. 그의 눈에는 모든 사람의 얼굴과 목소리가 똑같기 때문이다. 택시 운전기사, 호텔 직원의 목소리와 얼굴이 마이클의 아내, 아들의 목소리와 똑같다. 아이와 어른, 남자와 여자의 구별도 없다. 이 영화에서 실제로 모두가 똑같이 생긴 사람인지 끝내 드러나지 않는다. 다만 마이클의 눈에는 모든 사람들이 똑같이 생긴 인형인데 그들은 자신이 남들과 다르다고 주장한다.
혼란스러운 생활을 이어가던 중 마이클은 강연을 하기 위해 '신시시티'에 방문한다. 그는 호텔에서 어떤 여자의 목소리를 듣게 되는데, '그녀'의 목소리는 규격화된 목소리와 다른 개성을 간직하고 있었다. 놀란 그는 그녀를 만나기 위해 달려간다. 그리고 운명적으로 그녀와 만난다. 그녀의 목소리도 얼굴도 남들과 다르다. 그녀는 자신의 얼굴이 이상적인 얼굴과 다르다는 이유로 스스로를 비하하지만, 마이클은 그녀의 고유함에 빠진다. 그는 계속 그녀의 목소리를 듣고 싶어 한다. 곧 그녀의 목소리가 나오는 입술을 사랑하고, 그 목소리로 들려주는 사소한 일상까지 사랑하게 된다. 그는 그녀의 다름(anomalie)에 끌린다. 남들과 다른 그녀와의 만남을 통해 마이클은 같은 것들이 반복되는 지옥 속에서 구원받는다.
영화 <아노말리사>는 현대인이 겪고 있는 익숙한 경험을 그리고 있다. 마이클의 시점 속 인형들처럼 오늘날의 사람들은 남들과 달라지려고 하지만 결국 모두 비슷해진다. 우리는 인스타그램을 하다가 그 속의 사람들과 닮아간다. 전시 가치를 가진 아름다운 외양에 도달하기 위해 우리는 피트니스센터에 가거나 성형 수술을 한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고유성을 상실한 채 점점 서로 비슷해진다. 전시 가치의 기준에 부합하지 못할 경우 우리는 그녀처럼 스스로에게 열등감을 가진다. 이 지점에서 이 영화는 곧 우리의 세계가 된다.
이 영화의 메시지는 현대에 재조명해야 할 '진정한 사랑'이다. 열등감에 사로잡힌 그녀는 마이클의 사랑을 의심한다. 외적인 면에서 그녀는 사회가 원하는 조건을 갖추지 못했다. 하지만 그녀는 그녀만의 얼굴과 목소리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그녀의 고유함은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빛을 잃어가던 마이클에게 절대적인 희망이 되기도 한다. 스스로를 남과 비교하던 그녀는 '비교 가능한 것'에서 '대체 불가능한 단 하나의 것'이 된다.
비슷한 외관은 아무리 아름답다 할지라도 고유하지 않다. 비슷함은 무난하고 쉽게 얻을 수 있지만, 그것들은 곧 마이클을 둘러싼 인형들처럼 무미건조해진다. 우리가 가진 고유함이야말로 사랑의 본질이다. 사랑이란 고유함에서 발생한다. 타자와의 차이에서 오는 고유함은 끌림을 야기한다. 다른 두 타자가 서로에게 끌려 만나게 되는 충돌이 바로 사랑이다. 우리는 스스로의 고유함을 사랑하고 발견하고 방출해야 한다. 혹시 당신은 SNS와의 비교를 통해 스스로를 학대하고 있지는 않은가. 그러나 사랑이란 전기 가치로부터 오지 않는다. 사랑은 전시 가치의 준거점을 넘어선 당신만의 고유함에서 온다.
글 | 박지원
편집 | 김희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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