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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월간 도슨트 Jan 23. 2021

르 코르뷔지에, 자신만의 기준으로 현대건축의 문을 열다


 
  현대의 우리는 대부분 비슷한 모습을 가진 건물에 살고 있다. 네모난 구조물 안에 위아래 층마다 다른 가구가 살고 있는 아파트는 돌이켜 생각해 보면 다소 독특한 모양이다. 하지만 제한된 공간을 효율적으로 활용하여 다수의 거주를 책임지고 있기도 하다. 아파트의 모태는 20세기 프랑스 건축가 르 코르뷔지에로부터 시작된다. 그는 당시 ‘권위의 상징’이었던 건축을 ‘인간을 위한 주거 공간’으로 바꾸며 주거 혁명을 일으켰다. 르 코르뷔지에의 건축은 현대 건축의 시작점 중 하나로, 같은 건축이라도 자신만의 중점을 따른다면 전혀 다른 결과물을 낸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그는 어떻게 당대의 관념에 굴하지 않고 자신의 철학을 펴낼 수 있었을까?



르 코르뷔지에 ©Time&Life



  르 코르뷔지에는 1887년 스위스의 작은 마을인 라 쇼드퐁에서 태어났다. 그는 미술에 대한 관심과 아버지의 가업을 잇는 시계 장인이 될 생각으로 라 쇼드퐁 미술학교에 입학했다. 하지만 그곳에서 그의 꿈은 완전히 달라지게 되었다. 자신의 재능을 알아본 학교 선생님이 건축가의 길을 권유한 것이다. 르 코르뷔지에는 고민했지만 점차 건축의 매력을 느끼며 스승의 권유를 받아들였다. 그는 19세까지 총 7개 정도의 설계를 했으나 전부 고전적인 방식을 따른 것으로 오늘날 르 코르뷔지에의 건축 특징이라 불리는 양식은 아니었다.



파르테논 신전(좌), 아테네 아크로폴리스(우) 여행 스케치 / Ⓒ 르 코르뷔지에 재단




  그러다 1911건축 공부를 위해 떠났던 동방 여행은 르 코르뷔지에에게 인생의 전환점이 되었다그는 터키와 그리스 등 다양한 나라의 문화를 체험하며 건축의 여러 형태와 분위기를 눈에 담았다아름다운 비례에 관심을 보이며 보기 좋은 건축이나 사물을 보면 자를 꺼내 치수를 채기도 했다하지만 미적 탐구에만 그쳤던 관찰은 아니었다르 코르뷔지에는 낯선 풍경 속 건물에서 사람의 삶을 느꼈다건축에 중요한 요소가 장식보다 삶과 밀접한 무언가라는 사실을 깨닫는 계기였다동방 여행은 1917년까지 수차례 반복되며 그의 인간 중심적 건축 철학의 밑거름이 되었다.


  르 코르뷔지에는 30세에 파리에 정착해 본격적인 건축 활동을 시작했다당시 20세기 초 건축계는 철유리콘크리트 등의 새로운 건축 자재 활용을 실험하고 있었다사회 문제로 떠오르던 산업혁명과 제1.2차 세계대전으로 인한 거주지 부족 현상도 건축이 해결해야 할 과제였다 코르뷔지에는 시대의 흐름에 발맞춰 자신의 건축 이론을 정립해 나갔다.




Dom-Ino House 설계도 / Ⓒ 르 코르뷔지에 재단




  르 코르뷔지에가 제시한 도미노(Dom-Ino)’ 시스템은 철근 콘크리트로 뼈대를 먼저 만든 후 벽을 조립하는 건축방식이다도미노 시스템을 이용하면 기존의 벽을 쌓아 올리던 조적식 건축과는 달리 벽면과 창문지붕 등을 자유롭게 설계할 수 있었다대규모 복층 구조물을 짓는 것이 가능했을 뿐 아니라 기술자 없이도 빠르게 건축할 수 있었다도미노 시스템은 시민의 거주지 문제를 완화하는데 큰 도움을 주었다.




모듈러 이론 / Ⓒ 르 코르뷔지에 재단



  또한 훌륭한 비례는 편안함을 주고 나쁜 비례는 불편함을 준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던 그는 인체에 편안함을 주는 치수를 규정해 건축에 적용했다. 이것이 모듈러 이론인데주로 대규모 공동주택에 적용되었다대표적으로 1952년 건축된 유니테 다비타시옹 각 층의 높이창문의 크기나 발코니 등이 인체에 적합한 비례로 설계되었다모듈러 이론은 건물 바깥의 시선에서 형태를 빚었던 이전의 건축가들과 달리 내부에 살고 있는 사람의 시점으로 건축을 채워 나간 결과다.



빌라 사보아 / Ⓒ Brabbu Design Force



  이처럼 르 코르뷔지에는 인간을 위한 건축을 한 건축가로 유명하다특히 그가 남긴 집은 살기 위한 기계다라는 말은 그의 건축 철학을 잘 표현한다그가 제시한 ‘현대 건축의 5원칙인 필로티자유로운 파사드열린 평면수평창, 옥상정원에서도 건축이 거주자의 삶에 얼마나 만족감을 줄 수 있는지를 고심한 흔적이 보인다. 5원칙이 적용된 빌라 사보아 넓은 창문을 통해 찬란하게 들어오는 햇살을 맞거나옥상에서 신선한 바람을 즐기는 등 집이라는 한정된 공간에서도 쾌적한 삶을 누릴 수 있다.


  하지만 혁신적인 업적에도 불구하고 르 코르뷔지에의 건축은 당대의 보수적인 건축가들에게 끊임없는 비난을 피할 수 없었다근대 이전은 한 마디로 땅 위의 회화 작품처럼 아름답고 장식 요소가 가미된 건축이 찬사를 받던 시대였다웅장한 건축은 종교나 권력을 드높이는 역할을 맡기도 했다그러나 르 코르뷔지에는 건축의 중점을 사람의 편의에 두고 시작했으니그의 건축이 괴짜 취급을 당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했다.



잡지 에스프리 누보 / Ⓒ Eurozine



  르 코르뷔지에가 비판을 이겨내고 자신의 소신대로 건축을 계속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그가 창간했던 예술 잡지 에스프리 누보에서 실마리를 찾아보려고 한다에스프리 누보는 회화조각건축 등 예술 분야 전반에 걸쳐 아방가르드적 견해를 피력하는 잡지였다르 코르뷔지에는 잡지를 통해 뜻을 같이하는 예술가와 교류함은 물론 자신의 의견을 세상과 나누려고 노력했다자신의 관점을 글로 정리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건축 철학에 대한 정당성도 되새겼을 것이다르 코르뷔지에의 스스로에 대한 확고한 믿음은 자신과 끊임없이 대화하고 동료들과 의견을 나누며 생긴 힘이 아니었을까잡지는 창간 5년 뒤 폐간되었지만 그의 생각은 기고했던 글을 모아 엮은 그의 책 건축을 향하여” 등에 고스란히 실려 있다.





인간에게 가장 절실한 것 중 하나, 건축.
이것은 행복한 사람들이 만들어냈고, 행복한 사람들을 만들어낸다.
행복한 도시에는 행복한 건축이 있다.


- 르 코르뷔지에




  ‘인간 중심적’이라는 자신의 가치관을 따라 일으킨 르 코르뷔지에의 주거 혁명은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자신만의 시각은 기존의 취약점을 보완하는 독창적인 아이디어의 출발점일 수 있다. 게다가 자신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선택한 기준은 어떤 어려움에도 나아갈 힘을 주기도 한다. 아직 자신만의 기준을 정하지 못했거나 스스로에 대한 확신이 없어 외부의 기준을 따르려고 한다면, 잠깐 멈춰서 자신의 의견을 돌아볼 시간을 가져 보자. 그리고 르 코르뷔지에처럼 자신만의 기준을 중심으로 어떤 일을 시작해 보는 것은 어떨까? 언젠가 마주할 일의 마무리에서 나만의 만족할 만한 결과를 만날 수 있으리라 기대하면서 말이다.







글 | 차주영

편집 | 김희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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