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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월간 도슨트 Jan 27. 2021

시작이라는 욕망의 춤 | 영화 '분홍신'



©영화 '분홍신' 포스터



“길을 잃었다 어딜 가야 할까”



  길을 잃었을 때, 이 노래를 흥얼거려 본 적이 있는가? 이는 안데르센의 동화 <빨간 구두>를 모티브로 한 노래, 아이유 <분홍신>의 첫 구절이다. 빨간색은 욕망, 정열, 사랑과 같은 단어들처럼 붉게 타오르는 강렬한 이미지를 지니고 있다. 노랫말 속 갈색 머리 아가씨는 이 빨간 구두를 신고 ‘열두 개로 갈린 조각난 골목길’ 가운데 이끌리듯 길을 찾아 춤을 춘다.



©영화 ‘분홍신’




  우리 또한 무언가를 시작하기에 앞서 여러 갈림길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그리고 우리가 향하는 길은 바로 마음속 ‘욕망’이 가리키는 곳이다. 각자 욕망이란 빨간 구두를 신고 그것이 이끄는 곳으로 향하는 것이다.

  그런데 가끔 남의 구두를 신고 길을 떠나거나 내 구두를 남에게 신기는 일들이 발생한다. 가령, 부모님이 자신의 꿈을 자식이 대신 이뤄 주길 바라는 것, 혹은 남이 정해주는 길이 오히려 편하다고 생각하는 것들 말이다. 즉, 욕망의 주체가 뒤바뀌는 것이다.

  영화 ‘분홍신(The Red Shoes)’은 이런 욕망의 주체가 엇갈리면 어떤 결과를 초래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타인의 욕망으로 점철된 이와 그 타인에게 자신의 욕망을 덧씌우려는 이들이 모여 어떤 결말을 맞이하는지 그 길을 따라가보자.




꼬여버린 붉은 실타래



  우연히 무용수인 빅토리아와 작곡가 줄리안의 재능을 알아본 유명한 극단 감독 보리스는 둘을 스카우트한다. 이후 안데르센의 동화 <분홍신>을 각색한 발레 공연에서 빅토리아에겐 주연을, 줄리안에겐 편곡을 맡긴다. 무대는 성공리에 마무리되지만 그 안에는 서로 다른 욕망이 얽히고설켜 서로를 파국으로 이끌 조짐이 숨겨져 있다.

©영화 ‘분홍신’



  완벽한 예술을 위해 발레리나에게 사사로운 감정은 필요 없다고 생각하는 보리스는 극단의 프리마돈나였던 이리나가 결혼하자 그녀의 춤이 형편없다며 비하했다. 이후 이리나 대신 주연으로 내세운 것이 ‘살기 위해 춤을 춘다’고 말했던 강렬한 붉은 머리의 빅토리아였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그가 인연을 만들어준 극 <분홍신>을 계기로 빅토리아와 줄리안은 사랑에 빠지고 만다. 일이 꼬여도 단단히 꼬여버린 것이다. 보리스는 그전처럼 수석 무용수를 잃지 않기 위해 줄리안의 음악을 깎아내리기 시작하고, 이들의 갈등은 점점 커져만 간다.


 




뒤틀린 욕망의 주체


  욕망의 주체는 스스로여야 한다. 자신을 위해, 자신이 직접 이루는 욕망만이 가치 있다. 그러나 서로를 통해 욕망을 실현하려 드는 이 세 사람의 욕망은 뒤틀려 있다. 자신의 예술을 위해 빅토리아에게 춤과 사랑 중 하나만 선택할 것을 요구하며 그녀를 통제하려는 보리스. 계속 춤추고 싶어 하는 빅토리아를 외면하고 자신의 음악적 뮤즈로서, 사랑하는 연인으로서의 빅토리아만을 원하는 줄리안. 이들은 자신의 분홍신을 빅토리아에게 신기려 한다.




분홍신을 신게, 비키. 그리고 우리를 위해 춤춰줘.





  어느 누구도 빅토리아에게 그녀 자신을 위해 춤추라고 하지 않는다. 그녀를 지켜봐 온 극단 사람들을 위해, 관객을 위해 춤을 추라고 한다. 이는 본인의 의지가 아닌 분홍신에 이끌려 춤출 수밖에 없게 된 극 분홍신과 맞닿아 있다.






선택하지 못한 자의 최후


©영화 ‘분홍신’



  최고의 무용수가 되기 위해선 줄리안을 버리고 자신의 극단에서 분홍신을 연기하라는 보리스, 자신과 헤어지기 싫으면 춤추기를 포기하라는 줄리안. 꿈과 사랑 이 두 가지 갈림길에서 어느 한쪽도 선택하지 못한 빅토리아는 분홍신에 이끌리듯 발코니에서 뛰어내리고 달려오는 기차에 치이게 된다. 이후 무대에선 욕망 자체인 분홍신만이 홀로 춤을 춘다.


  이 세 사람의 욕망은 분홍신을 최고의 무대로 만들었지만, 뒤틀린 욕망 안에서 선택지를 정하지 못한 빅토리아는 죽음을 맞이했다. 타인의 욕망으로 점철되었던 삶의 끝에서 빅토리아는 줄리안에게 마지막으로 말한다.




분홍신을 벗겨줘요.




  이는 자신의 의지가 아닌 타의로 신게 된 욕망의 구두를 벗겨 달라는 빅토리아의 마지막 부탁일 것이다. 그러나 끝끝내 스스로의 힘으로 분홍신을 벗지는 못하는 모습은 어딘가 씁쓸함을 자아낸다. 결국 마지막 순간까지도 그녀는 줄리안과 보리스의 분홍신이었던 걸까.



©영화 ‘분홍신’







시작은 욕망으로부터 시작한다

  우리는 무엇을 욕망하는가? 그것은 누구를 위한, 누가 행하는 욕망인가? 영화 분홍신은 욕망의 주체가 엇갈리면 어떤 비극을 맞이하게 되는지 말해준다. 빅토리아의 욕망을 외면한 채 자신의 사랑만을 고집했던 줄리안은 결국 그녀를 잃게 된다. 완벽한 무대를 만들기 위해 빅토리아를 원했던 보리스 또한 분홍신의 주인을 잃은 채로 공허한 극을 올려야만 했다. 이는 자신의 욕망을 실현시키기 위해 타인을 이용하려 했던 이들의 몰락이다. 반대로 자신의 욕망이 타인에 의해 좌지우지됐던 빅토리아 또한 죽음으로 몰락한다. 이들 중 그 어느 하나 욕망의 주체가 자신이었던 이가 없다.


©영화 ‘분홍신’

 

 

  무언가를 시작한다는 것은 곧 무언가를 욕망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그 욕망이 뒤틀리는 순간 그 시작은 변질되어 몰락의 길을 걷기 쉽다. 그 시작의 본질을 지키기 위해선 우리 안의 욕망의 주체를 바로잡는 것이 우선되어야 할 것이다. 지금 여러분의 분홍신은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 묻고 싶다.



©영화 ‘분홍신’






글 | 김민경

편집 | 김희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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