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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월간 도슨트 Feb 13. 2021

까치까치 설날은 왜 '어제'였을까?





까치까치 설날은 어저께고요
우리우리 설날은 오늘이래요

곱고 고운 댕기도 내가 드리고
새로 사온 신발도 내가 신어요





민속 대명절 '설날'.

요즘은 잘 부르지 않지만,
설날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노래일 테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우리 민족은 삼국시대부터
설을 기념하는 풍습을 가지고 있다.

그렇다면
이 노래도 삼국시대부터 불렸을까?
왜 까치까치 설날은 어저께였을까?













구전 동요인 만큼 그 유래와 의미에 대하여
다양한 설이 존재하지만,

노래 창작 시기를 고려하면
일제를 향한 저항 노래라고 보는 편이 타당하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설날' 동요는
*작곡가 윤극영의 작품이다.


*동요 <반달>의 작곡가.
  푸른 하늘 은하수 / 하얀 쪽배에 / 계수나무 한나무 / 토끼 한 마리 ...



1903년부터 1988년까지,
즉 일제 강점기가 시작되던 무렵부터 근현대사까지
그야말로 한국사를 가로지른 인물.

윤극영 선생이 20살이 될 무렵인 1924년에는
일제의 문화통치가 박차를 가했으며
조선 전통 동요는 자취를 감추고
일본 동요가 거리에 울려 퍼졌다.

일제 치하에서
한민족의 얼이 흐려져가고 있던 그때
윤극영은 바로 이 동요 <설날>을 작곡한다.





©세마치 동요동산





1절 첫 소절부터 등장하는
'까치 설날'과 '우리 설날'.

까치 설날은 바로 일제의 설,
우리 설날은 한민족의 설이라고 볼 수 있다.




일제는 조선을 식민지로 삼은 후
조선의 전통을 지워나갔는데,
그 중 하나가 음력설이다.

한민족이 사용하던 음력설을 없애고
양력 1월 1일을 공식적인 설로 지정한 것.

다시 말하면
일제는 한민족의 달력을 바꿔버렸다.




이 동요는
입춘, 경칩, 하지, 동지 등
음력 달력을 따르며 살아가던
선조들의 삶을 기억하기를,

일제가 정한 양력 1월 1일이 아니라
음력 1월 1일을 기억하기를,

조선의 아이들이 일제의 문화에 물들지 않고
우리 민족 고유의 삶을 기억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만들어진 동요다.













이 동요가 작곡되고 60년 뒤,
해방 후 40년 뒤인 1985년에

음력설이 '민속의 날'로 명명되고
공휴일로 지정되면서
우리 전통이 빛을 본다.

그리고 1989년에는 비로소
음력설이 '설날'로 지정되면서
일제 이전 한국인의 삶이 제자리를 찾는다.

이전까지 음력설은
'구정'이라고 불리며 옛것으로 취급되었고
근대화에 반대된다며 홀대받았다.



지금의 우리가 음력 설날이 되면
가족 친지들과 모여 시간을 보내는 전통은

일제 통치 시작 후
80년만에 되찾은 한국인의 일상인 것이다.





음력설을 맞아 고향에 가는 귀성객들 ©국가기록원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설날을 맞아 부르는 동요, <설날>.

익숙하게 흥얼거리던 가락 속에는
우리 것을 회복하기 위한 열망이 어려있었다.

캄캄한 어제를 뒤로하고
빛나는 오늘을 약속하는 동요 <설날>을 부르며
우리 민족의 유산을 되새겨보자.






글, 편집 | 김희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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