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동생
내 주위엔 맏이인 친구들이 많다. 친구들이 모여 동생 얘기하는 걸 듣고 있으면 답답하다 어쩐다 해도 동생에겐 너그러운 모습이 느껴진다. 본인들이 그 나이 때에는 당연하다는 듯이 했던 것들도 동생들이 못하면 그럴 수 있지라고 생각한다.
난 누구 챙겨주란 말이 싫었다. 누가 그런 말을 시작하면 속으로 온갖 반발 섞인 생각들이 후루룩 지나갔다. 왜 내게 자꾸 본인들이 못하는 것들을 대신해주길 바라는 걸까. 그렇게 도와주고 챙겨주고 싶으면 자기네들이 더 잘해주면 되는 거 아닌가.
이런 내겐 주민상 생일이 7월 7일인 2살 어린 동생이 있다. 2살 터울이면 공유하는 추억이 많다. 나와 동생은 같은 초등학교, 중학교를 나왔고 고등학교, 대학교는 다른 곳을 다녔지만 둘 다 고등학생이고 대학생이던 시절이 있다. 초등학생 땐 동생이 용돈 모아 게임씨디를 사거나 컴퓨터에 게임을 깔아두면 나중엔 내가 더 신나게 하기도 했다.
공감대도 많고 추억도 많지만, 특히 어릴 땐 언제나 비교의 대상이 되고 세상에 둘도 없는 피붙이란 이유로 차별도 당연시되었다.
동생보다 내가 약간 학교 성적이 좋았다. 내가 공부를 잘한 것도 아니고 동생이 공부에 통 관심이 없었다. 종종 어른들이 모이면 내겐 동생 좀 많이 도와주어라 동생에겐 보고 배우라며 동생을 깎아내리며 나를 칭찬하는 잔혹하고 무자비한 말들을 내뱉었다. 난 배려라곤 찾아볼 수 없는 저런 사람들을 어른이라고 할 수 있나 싶었다.
난 동생이 기분 좋지 않을 거란 생각에 차마 그쪽으로 고개를 돌리지도 못했다. 그런 비교는 일종의 선의의 경쟁을 위해서라거나 충격요법이라 종종 포장되기도 했지만 난 그딴 건 배려 없이 말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의 변명이라 생각한다. 그런데도 동생은 한 번도 내게 원망스러운 말들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난 알고 있었다. 내 동생은 학교 교과목 성적을 잘 받는 것에 약했을 뿐 멋 모르는 사람들이 말하는 것처럼 머리가 나쁜 아이가 아니다.
어릴 때 나와 동생이 한동안 바둑과 오목에 빠져 하던 때가 있었다. 어느 쪽이든 10번 하면 1번 동생을 이기기도 힘들었다. 내 수를 너무 빠르게 파악 당했고 동생의 수가 보일 때쯤엔 게임 셋인 상황이었다. 이 밖에도 자세히 기억나지 않지만 내게 뭔가 물어 알려주면 가끔 생각지도 못하게 제대로 반박하거나 내가 못 보던 면들을 파악해서 나를 놀라게 했다. 물론 어떤 것들은 말이 막힐 정도로 몰라서 알려주다 주다 화내다시피 말한 적도 많았다.
이토록 각자의 강점이란 게 있는 거라지만 현실에선 크게 인정되지 않는 것 같다. 각자 아니면 사회가 생각하는 능력 간의 서열 같은 게 있어서 더 쓸모있는 능력을 갖춘 사람이 나은 사람으로 평가된다.
성격도 나와 많이 다르고 내게 없는 면모를 갖춘 친구다. 누구에게든 먼저 말을 걸어 빨리 친해질 줄 알고 웃음도 많아 반달웃음을 달고 살며 일단 하고 싶은 게 생기면 쪽팔린다 어쩐다 고민하지 않고 과감하게 진행한다.
초등학생 때 급식을 하다 보니 매일 수저를 챙겨가야 했다. 한 날은 수저를 집에 두고 와서 점심을 먹지 못할 상황이었다. 이를 등굣길 그것도 이미 학교에 거의 다 온 시점 깨달아 집에 되돌아갈 수도 없었다. 같이 등교하던 동생에게 얘기했더니 동생은 자기 수저를 내주었다. 어차피 자긴 점심 별로 안 먹는다는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했다. 미안해하면서도 나는 그 수저를 받아 점심을 먹었다. 나도 내가 무슨 생각이었는지 잘 모르겠다. 그날 동생 담임 선생님이 일회용 수저를 챙겨주셔 동생이 점심을 굶는 불상사는 없었지만, 엄마는 어이없어하시며 나를 혼내셨다. 너무 당연한 일이다. 성인이 된 지금은 모르겠지만 천성이란 게 있다면 동생은 그런 아이였다. 기본적으로 마음이 여리고 사람에 대한 연민이 있었다.
내가 생각하는 동생의 가장 큰 장점은 감정 표현 능력이다. 나는 감정을 솔직하게 말하는 데 서툴다. 내뱉고도 너무 가식적이어서 내 말에 짜증 나거나 해야 할 말은 못 하고 정작 안 할 말을 해버리는 일이 많다. 동생은 화가 나거나 서운하거나 좋은 게 잘 드러나고 솔직하게 말한다.
형제지간에 사랑한다거나 칭찬을 하는 일은 잘 없는 것 같은데 동생은 그런 말을 잘도 한다. 그럼 나도 잘 대답해줘야 하는데 ‘그래…’라거나 ‘별것 아니다, 너도 다 할 수 있는 거다’라는 정도로 어물쩍 말해 버린다. 자기라면 그렇게 못할 거라며 내게 칭찬할 때면 한편으론 어릴 때 받은 비교 때문에 동생이 나를 미워하진 못하고 자기가 정말 못하는 사람이라 생각하게 돼버린 건 아닐까 미안함과 속상함 때문에 말이 잘 나오지 않는다. 나보다 나를 더 좋게 봐주는 동생의 얘기를 듣고 있으면 더 잘되고 좋은 사람이 돼야겠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둘 다 오래 산 건 아니지만, 동생과 나는 다른 진로를 밟았고 앞으로도 그럴 것 같다. 그런 동생을 보면서 내 길만 알았다면 생겼을 편견들이 조금은 덜 생겼고 겸손해야겠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또한 사람들이 자신은 편견 없는 사람이라 말하면서도 자기와 조금이라도 다르게 가는 사람들을 얼마나 쉽게 일반화시켜 평가내리는지도 보게 되었다.
어릴 땐 하루도 싸우지 않고 넘어가는 날이 없었고 성인이 돼서도 어떨 땐 남보다 못하다 싶게 싸우지만 어떤 날은 외동이었다면 얼마나 힘들었을까 싶기도 하다.
나와 동생이 훨씬 나이가 들면 동생에게 말해주고 싶다.
넌 내게 비교될 필요 없는 좋은 사람이다. 남들의 기준에 맞춰가지 말고 원하는 대로 살고 행복이 인생의 목표는 아니라지만 행복했으면 좋겠다. 무엇보다 비교당할 때 마음 아팠을 너를 뻔히 알면서도 옆에서 가만히만 있어 너무 미안했다. 그리고 나도 사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