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전화가 왔습니다. 정확하게는 세 달이 조금 모자른 시간이 지난 후였습니다. 전화를 받았습니다. 차분한 목소리로 제 안부를 물어오네요. 별 일없다고, 아픈 곳도 없다고 대답해주었습니다. 별 다른 뜻 없는 안부를 묻는 것도 참 반가웠습니다. 장마가 시작되고 밖에서는 축축한 빗소리가 귓 속으로 흘러왔습니다. 이번에는 밥은 먹었냐고 물어옵니다. 이제 막 시계 시침이 한 시를 가리키고 있었습니다. 이른 점심을 먹었다고 말해주었습니다. 저 또한 밥은 먹었냐고 물어봅니다. 아직 먹지 않았다고 하네요. 잠깐의 정적이 흘렀습니다. 그리고 수화기 너머로 목소리가 넘어옵니다. 세 달전 마지막으로 같이 있던 날에 이야기를 꺼내옵니다. 미안하다고 하네요. 저는 벌써 다 잊었는데 바보같이 아직 마음속에 그 일이 가득한가 봅니다. 괜찮다고 벌써 다 잊었다고 말해주었습니다. 사과를 너무 늦게 해서 미안하다고 하네요. 그것도 괜찮다고 말했습니다. 이번에는 키우는 강아지 멍순이는 잘 있냐고 물어옵니다. 암컷인데 멍멍 짖는다며 그녀에게 참 잘 어울리는 이름을 지어주었습니다. 멍순이는지금 저기 창 틈을 내다보며 여느때처럼 지나가는 사람을 구경합니다. 눈이 마주치면 꼬리를 흔들때도 있지만 대부분 멍멍 짖습니다. 멍순이도 참 잘지내고 있다고 말해주었습니다. 멍순이 밥만 잘 챙겨주지 말고 저보고도 밥을 잘 챙겨먹으라고 하네요. 아마 훨씬 더 잘 챙겨먹고 있을텐데 말이죠. 식사 후엔 맛있는 과일도 멍순이와 나눠먹고 종종 멍순이 간식을 줄때면 저도 같이 과자를 먹고 초콜렛도 먹습니다. 참. 지금도 과일을 먹는 중이라고 잘 챙겨먹고 있다고 걱정하지 말라고 말해주었습니다. 알겠다며 나중에 또 전화를 한다고 합니다. 잠깜의 정적과 함께 전화를 끊으려던 순간 목소리가 들려옵니다.
“아 참. 이 달 말에 내려갈게. 엄마”
기분 좋은 소식이 들려옵니다. 이 달 말이면 삼 주도 채 남지 않았습니다. 저는 알겠다고 먹고 싶은건 없냐고 물어보았더니 자신있게 라면이라는 대답이 들려옵니다. 라면 말고도 맛있게 잘하는 요리가 많은데 왜 라면이냐고 물어보려 했지만, 수화기 너머로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들려와 조심스럽게 말을 삼키고 얼른 들어가보라고 말했습니다. 알겠다고 또 전화한다며 바삐 끊는 모습에 괜시리 마음이 가라앉습니다. 이제는 아이가 아니니까 애써 걱정을 덜어내봅니다. 모든 걱정을 덜어내기는 힘들겠지요. 모든 부모님이 그렇듯이.
회색하늘에 비가 내리는 오늘, 오랜만에 걸려온 전화에 제 마음은 평온함이 감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