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 없는 Parenting 이지만 공유하자
양육, Parenting 에는 크게 4가지 유형이 있다고 한다.
허용적 양육, 방임적 양육, 권위적 양육, 독재적 양육.
나의 양육은 허용적 양육 이고자 하나,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내가 어떤 양육관을 가지고 아이들을 길렀는가는 솔직히 우리의 아이들에게 물어봐야 할 문제 일 것이다. 내가 허용적 양육을 선택한 이유는 쿨한 엄마가 되고자 함이 아니다. 아이들의 인생을 나의 인생과 불필요할 만큼 결부시키지 않고 아이들이 스스로 하나의 독립된 인격체로 그들의 인생을 선택하고 만들어 나가길 원하기 때문이다.
10대 청소년 둘을 키우는 한 엄마로서 내가 하는 양육의 방식이 허용인지 방임인지 스스로 매일 되묻고 어디까지 아이들에게 자유를 줘야 하는지 도무지 갈피를 잡을 수 없을 때도 많다.
50개가 넘는 국적의 엄마들을 만나고 이야기해본 결과 러프하게는 서양권 부모는 좀 더 허용적/방임적 양육에 가깝고 동양권 부모는 대부분이 권위적 양육 혹은 독재적 양육 쪽에 가깝다. 세상에 양육의 방식만큼 다양한 답이 있는 분야도 드물 것이다. 세상에 똑같은 아이가 없는 것처럼 양육은 아이 by 아이 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 가지, 동서양을 막론하고 꽤 괜찮은 아이를 길러내는 부모들의 공통점을 몇 가지 찾아볼 수 있었는데 그중 한 가지는 그들은 대부분 허용적 양육을 하되 엄격함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대부분은 아이의 자유 의지에 맞기지만 몇 가지 정해놓은 규칙 안에서는 반드시 그 룰을 따르도록 엄격한 태도를 취한다.
그리고 어떤 형태로든 가족 간의 contribute를 독려한다는 것인데 어떤 점에서는 개인시간보다 가족시간을 중요하게 해야 하고 집안일의 작은 부분이라도 참여하는 것이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그건 집안에 집안일을 해주는 사람이 있어도 (여기 말레이시아에서는 메이드를 두는 것이 흔한 일이다) 반드시 본인 손으로 본인이 해야 할 일을 정해 두는데 그것이 한마디로 “내 앞가림을 하는” 행위의 일부로 보기 때문이다.
그런 가정에서는 자녀가 입시생이라 해도 “너는 공부만 해라 나머지는 엄마 아빠가 다 할게” 따위의 정책은 없다. 그들이 생각하는 양육의 목적은 한 사회구성원으로서 아이를 성장시키고 독립시키는 데 있다. 가정에서 기여했듯이 나아가 사회에 기여하고 해서 더 나은 사회를 만드는 것이 궁극적 목표라 하겠다.
많은 우리는 이 점을 간과하고 아이의 직업이나 사회적 지위만을 목적으로 아이를 양육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 보게 된다. 사회는 결코 직업군으로만 이루어지지 않으며 모두가 하나의 사회 구성원으로서 성숙된 자세로 임하고 기여할 때 우리의 사회가 좀 더 성숙해지고 발전하게 되는 게 아닐까?
나도 너무 우리 가정 중심적인 방식으로 아이를 양육하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보고 좀 더 넓은 시야를 가져야겠다고 다시 다짐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