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희망퇴직 외에 선택지가 없었다.
2024년 11월 18일 (월)
인사팀으로부터 돌아온 답변은 이전과 다르지 않았다.
“현재 인력 TO가 없어 이동이 불가능합니다.”
불과 며칠 전만 해도 회사는 해당 포지션에 자리가 있다고 했는데, 상황이 이렇게 바뀌는 걸까?
그리고 하나의 옵션이 추가되었다.
해당 포지션에서 근무 중인 직원들의 평균 연봉이 현재 나의 연봉보다 현저히 낮기 때문에, 20% 이상의 연봉 삭감에 동의한다면 포지션 이동을 다시 검토할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나는 14년 넘게 회사에 몸담아 온 장기근속자다. 연봉이 삭감되면 퇴직금에도 큰 손해가 발생한다. 그뿐만 아니라, 지금의 연봉에 도달하기까지 내가 얼마나 치열하게 버텨왔는지 알기에, 그 조건은 나 자신이 용납할 수 없었다.
희망퇴직 대상이 된 우리 본부원들과 터놓고 이야기를 나눠보니, 모두 동일한 제안을 받았다고 했다. 대부분은 포지션 이동을 거절하고, 희망퇴직을 선택했다.
그 제안을 받아들인 사람은 나 혼자였다.
지금 생각해 보면, 회사는 애초에 내가 희망퇴직을 하도록 답을 정해두고 있었던 것 같다. 정리해 보면 이렇다:
“희망 부서를 말하면 이동을 고려해 보겠다.” (정말 이야기한 걸까? 고려라도 했을까?)
“희망 부서에는 TO가 없으니, 회사가 필요로 하는 포지션으로의 이동을 제안한다.” (그 포지션에 20명이 결원이 있다는 말부터가 의심스러웠다.
“포지션 이동을 수락하면 연봉 삭감을 제안한다.” (결국 퇴사를 유도하기 위한 전략이었다.)
대부분은 이쯤에서 희망퇴직을 선택할 것이라고 회사는 계산했을 것이다. 혹시라도 연봉 삭감을 수용하면? 이제 남은 선택지는 'TO 없음'을 이유로 대기발령을 주거나, 퇴직을 유도하는 수밖에 없다.
취업규칙을 다시 살펴보니, 대기발령 후 3개월 이내에적합한 팀이 없을 경우 해고가 가능하다는 문구가 있었다.
나는 이 일방적인 연봉 삭감에 대해 노무사의 상담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크몽을 통해 노무사와 전화 상담을 진행했다.
노무사의 답변은 간단했다.
“직원이 서명만 하면 모든 건 합법입니다.”
회사를 상대로 싸울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단 하나였다. 서명을 끝까지 거부하고 일단 당하는 것.
희망퇴직을 거부하고, 대기발령을 받고, 회사가 실제로 해고 조치를 취해야만 ‘부당해고 구제신청’이라는 법적 절차를 밟을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취업규칙에 이미 ‘대기발령 후 해고 가능’이라는 조항이 존재하기 때문에, 법적으로도 부당해고로 인정받지 못할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정년 보장이나 연장 같은 제도적 장치는 결국 허상이었다.
근로기준법은 나를 지켜줄 수 없었다.
회사는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직원을 내보낼 수 있는 구조를 이미 완성해두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그 현실을 되돌릴 수 있는 힘이 없었다.
결국 내가 선택할 수 있었던 최선은, 희망퇴직에 동의하고 퇴직금에 더하여 석 달 치 위로금을 받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