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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아상 Aug 01. 2024

사랑하는 것을 미워하지 않기

사랑하는 것을 사랑하며 살기

                                                       [책]  GV 빌런 고태경 - 리뷰


 저자인  장대건은 고대 철학과를 졸업하고 한국영화아카데미에서 영화 연출을 전공했다. 2020년 《한경신춘문예》에 장편소설 『 GV 빌런 고태경』이 당선되며 소설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한국영화아카데미가 있다는 걸 무식하게도 나는 이 책을 읽으며 처음 알았다. 그 아카데미는 굉장히 힘든 과정을 거치는 듯하다.) 


  작가가 영화 연출과 소설 쓰기 공부 과정을 빡세게 해서일까.  소설의 구성력과 연출력이 탄탄하다.  남자 작가가, 여자로 소설의 주인공을 바꾸었다고는 해도 저자의 경험담이 많이 들어간 것 같다. 그래서 사실적인 이야기가 울림을 준다. 영화를 전공하는 사람들의  속 사정을 알 수 있고, 특히 예술하는 사람들이 공통으로 느낄 수 있는 어려운 상황과 마음이 잘 나타나 있다. 예술을 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겪게 되는 어려움이지만, 무언가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겪게 되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예술을 하다 보면 어려움이 많다. 그 분야의 공부는 기본적으로 열심히 해야 한다. 하지만  공부한 것을 작품에 완벽하게 녹여내기도 어렵거니와  적용한다고 예술 작품이 훌륭하다는 보장도 없다.

  예술가의 입장에서도 확률적으로 예술 분야에서의 성공은 희박하다. 재능이나 실력이 있어야 하지만 재능과 실력을 갖춰도 다 성공하는 것도 아니다. 

  예술은 비교하는 것이 아니라지만 끊임없이 비교당하고, 작품 하는 과정에서 비난과 평가도 수없이 받게 된다. 비난을 견뎌야 하고 칭찬 또한 독이 될 때가 많다. 

작업에 들어가는 돈은 많지만, 성공 전에 수입이 없어서 경제적으로도 힘들다.

소설에서도 이야기하듯,  운 좋은 몇몇 예술가를 제외하고, 많은 예술가가 좌절을 겪으며 지치고 사랑하는 것을 미워하게 되기도 한다.


                                                                                    * * *


  제목의 GV란 Guest Visit의 약자로 영화 상영 시 감독이나 영화 관계자들이 영화에 대하여 설명하고, 관객과 질의응답도 주고받는 무대를 말한다. 빌런( villain)이란 악당, 악역을 말한다.  뜻을 조합해 보면  영화 상영 후, 감독과 관계자들의 대화 중, 곤란한 질문을 던지는 악당 같은 관람객을 말한다. 

  소설의 주인공 '조혜나'는 영화가 좋아 영화 아카데미를 졸업하고 신인 감독의 길을 간다. 대부분의 예술가가 겪는 어려움을 주인공도 경험하며 오랜 슬럼프 기간을 보내고 있다. 그러던 중 영화가 끝나고 방청객과의 대화에서, 난처한 질문을 받게 되고, 그 영상이 유튜브에 퍼진다. 알고 보니  질문을 한 사람은,  영화계 사람에게 "GV 딜런"으로 알려진 고태경이란 중년 아저씨였다. 처음에는 "진상 고객" 정도로 생각하며 그를 주인공으로 다큐멘터리를 찍는다.  처음엔 '사람 우습게 보이게' 찍으려는 마음이 은연중에 있었지만,   그의 삶에 대해 알아가게 되며, 마음이 바뀌고, 주인공이 성장하는 데 도움도 받는다. 고태경은 영화를 사랑하는 영화계 선배였고, 그의 옛사랑 이야기도 듣게 된다.  남들에게는 어떻게 비칠지 몰라도, 절망과 실패한 것처럼 보이는 삶 속에서도 고태경은 사랑의 길을 묵묵히 걸어가고 있었다.


  소설은 주인공(조혜나)과 고태경의 삶을 중심으로 그 외 영화인의 길을 가는 주변인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사랑해서 영화를 시작했지만,  힘든 상황을 견디지 못하고, 사랑하는 것을 미워하게 되는 친구도 있다. 사랑은 빠지고 돈이나 성공의 길만 가려는 사람도 있다. 주인공도 갈등을 겪지만, 고태경의 다큐를 찍고 소설의 마지막 부분에서 

 "나는 앞으로도 실수하고 후회하고 반복하겠지만, 적어도 내가 사랑하는 것들을 미워하지는 않을 거다."라는 생각을 한다. (p256)


                                                                                  * * * 


  사랑하는 대상이 나를 힘들게 한다. 사랑하지 않는다면, 사랑하는 것이 없다면 아픔도 없다. 사랑하기 때문에 사랑에 대한 기대가 있었기 때문에 미워진다. 이는 예술 작품을 해나가는 과정에서 뿐 아니라 무언가를 사랑하는 과정에서 겪게 되는 일이다. 그러나 아프더라도 사랑을 지켜낸다는 건 성장하는 일이다.

  사랑하는 대상이 나를 기쁘게만 해서 사랑한다면 그건 조건에 대한 사랑이다. 영화를 사랑한 것이 아니라 영화가 주는 영광, 주목받음, 부를 좋아한 것이다. "내가 만든 영화가 지질하다는 평가를 받을 때는 나도 지질한 인간"이 되는 것 같다.  좋은 평가를 받을 때는 자만심이 커지기도 한다. 

  사랑하는 대상이 나를 힘들게 하는 것 같지만, 사랑은 나의 문제와 어린 점들을 보여주고 끝없이 점검하게 한다.  사랑은 나를 성장하게 한다.


  사랑하는 대상이 나를 아프게 해서 힘들 때 한번 읽어볼 만한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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