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기력한 삶과 고난 있는 삶

by 무아상

- 양귀자 소설 <모순> 리뷰 -


'양귀자' 작가, 이름은 알고 있었지만, 그의 소설을 읽은 건 처음이다. 책은 많이 읽는 편이지만, 우리나라 소설은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그런데 요즘은 우리나라 소설이나 영화가 재미있다. 문화와 정서가 비슷해 남의 이야기 같지 않다. 이 책은 1998년에 출간되어 베스트셀러 자리를 꾸준히 지켜왔다. 읽어 본 사람은 결혼하기 전과 후, 나이가 들어 읽을 때마다 느낌이 다르다고 한다. 약간 코믹한듯해서 재미있지만, 삶에 대한 무게와 섬세함, 통찰도 있다.


(줄거리. 스포일러 있습니다) 주인공 '안진진'은 25세가량의 직장인 여성이다. 가족은 아버지, 엄마, 남동생이 있다. 아버지는 평소엔 순수한 남자지만, 술을 마시면 살림을 부수고 폭력적으로 변했다. 직장을 그만두고 사업한다며 몇 차례 말아먹고 집을 나가 몇 년에 한 번씩 집에 들어오곤 한다. 남동생은 조직 폭력배 보스의 삶을 어설프게 추구하며 말썽을 일으킨다. 엄마는 시장에서 양말과 속옷 장사를 하며 가정을 이끌어간다.

엄마는 이모와 일란성쌍둥이다. 어릴 때는 모든 것이 똑같았지만, 결혼하며 삶은 정반대가 된다. 이모는 완벽하고 부유하지만, 심심한 남편과 산다. 주인공 남매와 나이가 같은 남매를 두고 있는데 미국에서 박사학위가 끝나면 그곳에서 자리 잡을 예정이다. 주인공은 이모와 각별히 친하다. 바쁘고 삶에 찌든 엄마보다 우아한 삶을 사는 이모를 주위 사람들이 엄마로 착각할 때, 가끔 즐기기도 한다.

(소설 속 시대엔) 결혼 정령 기인 주인공 진진은 두 남자를 만나며 누구와 결혼해야 할지 갈등한다. 사랑이나 결혼에 대한 확신은 없다. 후보자인, 나영규는 자신을 좋아해 주고 주도적이고 추진력과 결단력, 계획성이 있다. 그 계획성이 좀 숨 막히게 한다. 진진은 감정적으로 끌리지 않아 부담이 없어서, 가족사의 치부도 솔직하게 털어놓고 힘든 감정도 표현한다. 결혼한다면 경제적으로도 안정된 삶을 살아갈 것 같다. 다른 후보인 김장우는 작은 꽃을 보고도 눈물 흘릴 만큼 마음이 여리고 착하지만, 데이트할 때는 여자가 이끌고 데이트 비용도 걱정해야 한다. 감정적으로 더 끌리지만, 그래서 진진은 김장우에게는 자신의 삶을 솔직하게 다 이야기하지 못한다. 어쩌면 김장우가 가진 자신에 대한 환상을 깨지 못한다.

진진의 엄마는 불행한 사건을 해결하고 감당하기 위해 씩씩해져 가고 있었는데, 갑자기 이모가 자살한다...



고통의 지혜와 타인의 삶

이모 딸인 동갑의 사촌은 이모부(주인공 아빠)에 대해 '잘못'이라고 흑백 논리로 판단하고, "결혼은 사랑하는 사람과 해야 한다."라고 합니다. 이런 말에, 주인공 진진은 사촌이 곱게 자라 삶을 모르며, 좁은 시야를 가졌고. 가난과 고생을 겪어 자신은 인생을 좀 안다고 생각합니다. 아버지나 동생, 환경을 받아들이고 원망하지 않는 성숙한 태도를 보이는 것으로 보아 성숙한 것은 사실인 것 같긴 합니다.

하지만 사람이란 외부적 조건만으로 모릅니다. 가난하고 고생한 사람은 삶을 더 안다고 부자를 무시하고, 부자는 가난한 사람을 인격적으로 무시하는 경우가 흔합니다. 인격적으로 성숙하고 미숙한 사람이 있긴 하지만 겉으로 보이는 조건만 봐서 남을 쉽게 판단할 순 없습니다.

미성숙해 보디는 사촌, 정이 안 가는 이모부, 이모의 죽음을 보면서도 진진의 결혼 선택은 달랐습니다.


현재의 부재

진진의 배우자 후보인 나영규는 미리 정해놓고 행복하리라 생각한 대로 실행합니다. 무언가를 " 하고 있는" 순간에 의미가 있다기보다는 "했다"라는 결과만 중요한 것 같습니다. 너무 계획적이라 현재 순간은 상실된 느낌입니다. 김장우는 환상 속에 사는 것 같아서 현실이 없는 것 같습니다. 남동생은 영화에 나오는 멋진 보스를 흉내 내느라, 아버지는 술에 취해 사느라, 엄마는 문제가 해결된 후의 삶을, 이모는 타인이 낭만과 사랑을 불어넣어 주는 삶을 원해서 현재와 자기(Self) 다움이 없습니다.


다른 삶을 살아가는 쌍둥이

이모와 엄마는 외모, 능력 등 모두 똑같았습니다. 배우자 선택이라는 우연한 외부적 요인에 의해 삶이 극명하게 바뀌었습니다. 엄마는 생활에 찌들고 자존심 상하고 고생스러운 삶입니다. 이모는 남편이 기념일도 챙겨주고 해외여행 다니며, 물질적으로도 풍족하고 자식들도 미국 명문대 박사과정입니다. 더 이상의 목표도 고난도 없습니다.

엄마는 긴장감을 늦출 수 없지만, 일이 터질 때마다 더욱 생기가 돕니다. 이모는 모든 것이 충족된 것 같지만 외롭고. 결국 자살합니다.


비극은 가난과 불행 속에만 있지 않아

여자라면 당연히 이모의 삶을 선택하겠죠. 하지만 아무리 편한 자세라도 오랫동안 그대로 있어야 한다면 고욕입니다. 온실의 화초처럼 궁전에 혼자 갇혀있어야 한다면 답답합니다. 사랑과 노력 없이 부와 편안함, 쾌락을 갖고 싶어 하는 사람은 많지만, 막상 그런 삶을 살면 생기를 잃습니다. 삶에서 폭넓은 경험이나 배우는 것도 없습니다. 육체는 편하지만 마음이 힘들어서 이모는 죽음을 택했을 겁니다.


삶의 목표와 삶의 의지

그렇다고 끊임없이 불행한 일과 사건이 있는 엄마의 삶도 부럽지 않습니다. 인생에 극복해야 할 고난이 있어야만 삶을 살아갈 에너지가 생기는 것일까요?

삶이 게임이라면 이모는 고난이나 노력 없이 -즉 게임을 해보지도 않고- 목표 지점에 도착해 있고, 엄마는 고난을 피하기 위해 불행한 게임을 하는 상태입니다. 게임을 하는 동안은 활기가 생기지만 원치 않는 게임이라 괴롭고, 안 하면 지루하고 살아갈 의미도 없습니다. 그야말로 모순입니다.


외부적 요인에 기대는 삶

엄마와 이모의 삶은 개인의 능력이나 의지로 선택한 삶이 아닙니다. 외부에서 주어진 삶이고 내면에서 원해서 이끄는 삶이 아닙니다. 엄마는 주체적인 것 같지만 원하는 삶을 추구한다기보다는 외부의 부정적인 것을 피하는 삶입니다. 단기적인 목표는 될 수 있지만 엄마도 만약 목표를 이루고 나면 이모처럼 다시 허무해질 겁니다.

주변에서 이런 사람을 많이 봅니다. 외부에만 시선을 두고 물질적이고 가시적인 것만 추구합니다. 외부에서 주어지는 무의미한 게임을 하며 시간과 물질을 소비를 할 때만 살아 있음을 느낍니다. 타인이 자신을 부러워해주고, 타인이 놀아줘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시간이 공허해서 견디질 못합니다. 스스로 삶을 풍성하게 채울 줄 모릅니다.


물질적이고 외부에서 주어지는 대로 사는 삶은 이원성의 세계입니다. 이원성의 세계는 한쪽으로 기울면 반대편의 부작용이 생기게 마련입니다. 계속되는 모순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당신이 잘되면 좋겠습니다>책 리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