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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아상 Jan 25. 2024

식물이 주는 꿈 꾸는 현실공간

   베란다의 작은 정원은 꿈이 가장 가득한 내면의 공간인 동시에 물리적인 현실 공간이다. 식물은 정서적 교감과 안정을 주고 꿈도 꾸게 하지만 실내장식, 공기정화 효과도 줄 뿐 아니라 주관적 상상만으로 키울 수 없는 과학이고, 노동이며, 날마다 새로운 모습을 바라보게 하는 현실이다.


   모든 것이 그렇듯 내면과 외면적인 것에도 부정과 긍정적인 면이 있다. 내면에 긍정적 측면은 꿈과 상상, 내면과의 대화, 진정한 자기(self) 등이 있고, 부정적 측면은 무의식에 쌓인 과거에 묶여 살기, 은둔형 외톨이, 자폐적 성향, 사회 부적응, 망상 등이 있다. 외면적인 것에도 객관적 판단력처럼 좋은 면도 있지만 꿈과 사랑이 없고 내면의 소리를 듣지 못하고, 냉정하고, 창의적이지 않고, 페르소나, 겉 자아(ego)를 진짜 자기로 착각하는 부정적인 면도 있다.

   서로가 반대되는 것은 남과 여, 삶과 죽음, 밝음과 어둠..처럼 상대적인 것을 알 때 더욱 잘 알 수 있고 서로가 소통되어야 삶의 균형을 잡을 수 있다. 마음의 내면과 외부 세계도 한쪽에 치우쳐 있기보다는 균형을 잡을 때 건강한 내면과 외면 세계를 경험할 수 있다. 교류하려면 생각이 그 중심에 서 있어야 한다.

   

   어린 시절에는 놀이와 꿈, 가상 세계의 내면과 소통하는 공간이 있었다.  어릴 때 한옥에 살았었는데 구석진 마당 한 쪽에는 소꿉장난하는 공간이 있었다. 플라스틱으로 만든 작은 그릇들이 있고 빨간 벽돌을 빻아 고춧가루라고 하고 나뭇잎들도 주워다가 반찬을 만들곤 했다. 비록 내 방이 없어 벌려 놓기 전에는 한쪽에 치워져 있었지만, 실내에는 인형 놀이, 동화책 읽기, 집짓기 놀이(요즘으로 보면 블록)를 하는 공간이 있었다. 그곳은 의식 있는 자아가 내면 자아와 소통하고 상상을 현실로 연습하는 공간이었다.

    어른이 되니 개인적인 내면의 꿈꾸는 공간이 부족하다. 부엌, 식당, 현관, 거실, 화장실, 엘리베이터 등은 기능적 공간이다. TV나 영화, 도심에 있는 잘 꾸며진 상업적 공간, 앞으로 늘어난다는 메타버스의 세상은 상업적 가치를 위해 만들어진 콘셉트로 남의 꿈을 구경하고 체험하는 곳이다. 인터넷 공간에서 만남이 확장되었다고는 하지만 각자는 숨어서 밖을 내다본다. 보여주고 싶은 만큼만 보여주는 공간은 다른 목적 없이 다 내어놓고 각자의 내면과 만나는 공간과는 다르다. 자기 내면과 소통하기엔 좀 부족하다.  


   어른에게도 내면과 대화하고 놀이와 꿈이 가득한 공간이 필요하다. 아이 때는 잘못을 했거나 슬픈 일이 있어도 용서받고 금방 사랑하는 것에 몰입한다. 성인은 부정적인 강정을 해결하지 않고 무의식으로 밀어 넣고 자기 의지로 극복하려는 경우가 많다. 부정적인 과거 기억이 무의식에 남아 있으면 부정적인 내면세계에 머물게 된다. 치유 공간이 없는 성인은 아이보다 과거를 짊어지고 있어서 자책하고 슬픔과 화, 좌절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한다.  

   

  누군가에게 보여주고 자랑하기엔 부족하지만, 성인이 된 나는 내면의 꿈꾸는 공간, 놀이공간이 있다. 베란다와 빛이 드는 창가에 식물을 키우는 공간이다. 아침에 일어나면 제일 먼저 베란다로 가서 식물들을 살피고 나도 아침 해를 본다. 컴퓨터 앞에 앉아 있다가 머리를 식혀야 할 때도 식물을 보러 간다. 위로가 필요하거나 휴식이 필요할 때 공원까지 갈 시간이 없을 때, 짧은 눈길만으로도 초록은 휴식을 준다.  


   외부 세계에서 상처받고 은둔한 내면세계는 건강하지 못하다. 상처를 치유하지 못하고 내면에서 상처를 반복한다. 이때에 외부 손길을 거부하게 되는데, 외부는 위협적이라는 상처 때문이다. 식물은 위협적으로 다가오지 않고 조용하게 안전을 느끼게 해 주고 안전함은 응어리진 마음을 편안하게 이완시켜 준다.

  사랑하는 것은 봄의 따뜻함처럼 딱딱한 껍질을 깨고 새싹을 돋게 하는 힘이 있는 것 같다. 식물을 사랑하며 돌보는 것은 안전한 놀이이고 내면세계를 치유해 주고 외부세계로 이끌어준다. 나의 밖에 있는 식물과 안전한 교감을 연습을 하기 때문이다. 식물은 꿈속에 있는 것이 아니다.

   식물은 성장하는 물질이다. 나의 주관적 기분이나 생각대로 키울 수 없다. 공부하고 이론을 알면 더욱 잘 키울 수 있다. 육체노동도 이에 맞춰해야 한다. 분갈이, 물, 거름 주기, 주변 청소하기... 식물은 말을 하지 않아서 온도, 물, 빛, 해충, 바람, 습도 등을 미리 기미를 알아차리고 잘 자라고 있는지 파악해야 한다.

   무엇보다 식물이 현실감을 일깨워 주는 이유는 매일 새로운 모습이기 때문이다. 내 주변의 물건은 내가 부여한 주관적 의미를 갖고 보게된다. 과거를 보게되고 선입견을가지고보게된다.하지만 식물은 매일 변한다. 변하는 식물은 '지금-여기(here and now)'의 시선으로 바라보게 된다. '지금-여기'는 심리 상담이나 마음공부 하는 곳에서 강조하는 실천 과제로, 부정적인 과거 습관에서 벗어나는 데 도움이 된다.

  

   사랑하는 것을 바라보면 닮아간다. 메말랐던 식물이 싹을 틔우고 성장하는 것을 보면 나도 살아나는 듯하고, 식물을 돌보는 것은 나를 돌보는 것 같고, 식물을 사랑하면 나도 사랑받는 것 같다. 매일 변하는 모습에서  지금 - 여기 현존하는 법을 배운다. 재촉하지 않아도 씨앗은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듯, 식물은 재촉하며 않으며 나를 외부 세계와의 경계로 이끌어 중심에 서서 삶을 균형 있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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