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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아상 Jan 29. 2024

더 많은 씨앗을 남기고 가는 식물의 죽음과 상실

    선생님의 개인전 소식이 카톡에 올라왔다. 고등학교 때부터 나를 보아왔으니  오랜 시간 삶의 하소연도 들어주셨던 분이다. 워낙 건강하고 성실하셔서 개인전을 꾸준히 하셨다. 인터뷰한 동영상도 올라왔고, 마르고 낯선 사람의 사진이 있었지만,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이나 해설자이겠거니 눈여겨보지 않았다. ‘마지막 전시’라는 문구가 언뜻 스쳐지나 갔다. 

  "왜 마지막이라는 거지? 그림을 안 그리시기로 하셨나? 절대 그럴 분이 아닌데”라며 흘려보냈다.

   계속 궁금해지고 전시회를 가려면 정보도 찾아봐야 해서 며칠 후 자세히 보니, “장례식장 대신 갤러리에서, 살아서 웃으며 만나고 떠나기 위해 마지막 전시”를 한다고 했다. 언제 가야 하나 주저하고 있던 일요일 아침, 선생님으로부터 전화가 와서 지금 올 수 있냐고 했다.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여름날 인사동 전시장을 찾았다.     

   인터넷 올라 온 여윈 분이 선생님이셨다. 선생님께 인사와 몇 마디를 나누고 전시를 보았다. 큰 건물 3층에 걸쳐 초창기 작업부터 많은 작품이 걸려 있었고 손님들과 선생님, 사모님 모두 밝은 표정이었다. 사모님을 뵈니 사모님도 좀 여위셨다. 이럴 때 뭐라고 위로해야 할지 서투른 나는 “힘드시겠어요.”라고 하자, “선생님만 하겠어.”라고 대답했다. 맞는 말이라 더 이어갈 말이 없었다. 선생님은 말기암 판정을 받으셨다. 선생님은 수술이나 기타 연명치료를 일절 하지 않으셨고 배에 차는 복수를 빼기 위해서만 병원에 가셨다. 

   나도 죽음의 고비를 넘겨봐서 안다. 사람들의 위로가 겉돌고 아무리 가까운 사이라도 투명한 막에 나뉘어 벌써 다른 차원의 세계에 사는 듯한 거리감이 든다. 위로의 말도 서로가 엇갈리는 내용이지만 그냥 이해하고 대할 수밖에 없다. 서로가 다른 차원이니까.     


   선생님은 집에 가서 좀 쉬었다가 몸이 괜찮으면 저녁에 다시 나오겠다고 하셨지만 뵙지 못했다. 많은 손님과 선생님을 향한 그들의 관심과 애정을 보고 아들이 사모님에게 “아빠는 참 잘 사셨나 봐!”라고 했다. 선생님은 평생 하시고 싶은 그림을 그리셨고 사람들과도 깊은 애정을 나누셨으니 잘 사신 게 맞다.   

  

  전시장에는 큰 화분, 화려한 꽃다발, 난초 등이 화원을 방불케 할 만큼 가득했다. 전시가 끝나는 시간까지 손님들 접대와 팔린 작품 포장을 도왔던 나에게 사모님은 화려한 꽃다발이나 바구니 중에 가져가라며 고르고 계셨다. 화려한 꽃들 사이에서 나는 작은 크기의 ‘무늬 벤저민 화분’을 가져왔다.

                           


  

  올해는 장맛비가 심하게 내리지 않았던 탓인지 겨울에 눈이 많이 내렸다. 밖에 나와 있을 때 선생님의 부고 문자를 받았다. 집에 들러서 장례식장에 가려고 문자를 자세히 보니 ‘고인의 뜻에 따라 빈소를 차리지 않은 점 양해 바랍니다’라고 적혀 있었다. 며칠 후 사모님께 전화하자 유난히 밝은 목소리로 받으셨다.      

“빈소를 차리지 않으셨나 봐요!”라고 하자

“비 오는 날 사람들 그렇게 많이 와줬는데 눈 오는 날 또 뭘 오라고 해!”

“어디... 납골당에 모셨어요?”

“선생님, 납골당 제일 싫어하시잖아. 아파트도 싫어하시는데... 그냥 집으로 가져왔어”라고 하셨다.

     


  

   무늬 벤저민은 겨울이 오자 갑자기 시들었다. 무늬가 있는 식물은 더 까다롭고 아직 어렸으며 키워보지 않은 식물이어서 좀 예상은 했었다. 무엇보다 내가 의미를 부여하고 애지중지하는 식물을 오히려 금방 죽었다. 자기를 잘라 물꽂이를 미리 해놓긴 했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뿌리가 나지 않는다.      

   식물들의 죽음은 피할 수 없다. 관리를 잘못한 탓일 때도 있지만 이유도 모르게 죽기도 한다. 갑작스럽게 죽었을 때는 어쩔 수 없어도, 식물은 환경이 좋지 않을 때 씨를 많이 내고 죽음 후에는 거름이 되어 준다. 겨울을 나는 식물은 꽃이 지고 나면 더 많은 씨를 품고 겨울을 견뎌낸다. 식물은 죽으며 더 많은 씨앗을 주고 떠난다.                                                 

  사람이나 애완동물, 재물이 떠나면 분노하듯 슬퍼하는 사람은 많다. 요즘은 애완동물을 키우는 집이 많다. 그들이 ‘무지개다리’를 건너면 비통해하며 몇 달씩 앓아눕기도 하고 장례 절차나 납골당도 점점 화려해진다.  식물이 죽으면 그렇게 분노에 가깝게 슬퍼하는 사람은 없다. 의미를 부여한 식물에 대해 의미를 애통해하고 미안해하는 정도다. 식물의 죽음은 요란스럽지 않다. 요란스럽지 않은 죽음은 죽음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법을 배우게 한다.

   빈 화분을 보면 언제 그렇게 화려하게 피었었는지, 환영 같고 꿈같다. 조용한 죽음은 꽃이 핀 지금, 이 순간은 다시 오지 않으며 이 순간을 사랑하게 한다. 좋아하는 일 미련 없이 하고 사람과 세상을 사랑하다 죽는 일, 사람이 그 외에 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봄이 오면 빈 화분에 새 식물을 심어야겠다.   

                             


   어릴 때 가까운 사람의 죽음을 경험해 보지 않았고 냉정한 편이어서 이별이나 상실의 상처가 나에겐 없는지 알았다. 상실에 대한 심리학책을 읽던 중 나에게도 상실의 아픔이 많이 있었던 것을 알고 놀란 적이 있다. 가까운 사람의 죽음은 아니라도 꿈이나 일상의 사소한 것과 사건에서도 이별이나 상실은 많았고, 상처로 남아 있었다. 그때 난 대부분 남겨진 사람이었을 것이고 성격 탓도 있겠지만 냉정함과 담담함은 상처로 인해 몸에 밴 거리감이었다.

   나이가 드니 또 다른 상실을 경험하게 된다. 나를 기억하던 사람들이 하나, 둘 떠나기 시작한다. 예전에는 꿈과 미래에 관한 상실이었다면 이제는 내 과거에 대한 상실을 경험하게 된다. 과거 기억이 어렴풋해지는데 나를 기억하던 사람들조차 떠나니 내가 하나, 둘씩 지워지는 느낌이다. 환영 같이 기억 속에 남아 있던 나의 한 때가 죽어가는 것 같다.  

  우리는 땅에서 땅이 만들어낸 물질들을 먹고 취하며 잠깐 물질인 몸을 빌려서 살고 있다. 언젠가 다시 땅으로 돌아가 다른 생명에게 물질을 내줘야 한다. 상실의 상처는 크지만 ‘나’를 잃어야 할 마지막 상실의 순간이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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