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친절한 금자씨>
눈이 내려왔다. 죄가 세상으로 돌아오던 날, 그곳에는 눈이 내리고 있었다.
경주 여자 교도소. 주인공 이금자는 그곳에서 13년을 보냈다. 19살에 애를 배고, 20살에 흉악범이 되어 자수했기 때문이다. 원치 않는 세월을 그녀는 몸소 살아내어 보이는 수밖에 없었다. 원모를 죽이지 않았음에도 그녀가 거짓을 말하고, 거짓을 연기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단 한 가지다. 자신의 일부가 바깥세상에 붙잡혀 있었기 때문이다.
좁은 교도소 방 한 칸에서 일어나는 일들, 그리고 그 속에서 만난 이들을 중심으로 이야기는 흘러간다. 그녀는 구원이 절실했다. 나를 이렇게 만든, 혹은 이런 죄책감 속으로 집어넣은 백한상을 향한 시뻘건 원망. 몇 날 며칠을 울어도 사라지지 않는 잔혹한 현실을 뒤엎을 수 있는 기회. 이야기는 완벽한 복수를 향해 흐른다. 모두가 죄인이고, 모두가 자기 자신이 죄인임을 알고 있는데 그녀는 자기 자신이 공공연한 죄인이라는 것부터 받아들여야 했기 때문이다. 그녀는 아마 죄를 없앰으로써 죄가 사라질 수 있다면, 살인을 함으로써, 살인이 없어질 수 있다면, 하고 바랬을 테다.
이태리 타올과도 같은 기도를 배우기에 가장 적합한 장소. 모두가 하릴없이 구원만을 바라고, 저 여기 있어요-라며 간증을 내뱉는 그런, 교도소. 그녀가 선택한 무기는 친절함이었다.
몇 번이고 다시 죽어도 괜찮다며 새벽에 우는 사람을 달래어주고, 비누를 벅벅 문질러 미끄러지게 했다. 신장을 서슴없이 떼어주고, 3년을 락스를 먹이고, 똥까지 닦아 주었으니 할 말 다 한 것 아닌가. 제목에서부터 나와있듯이 이 놀랍도록 ‘친절한’ 서사. 그 속에서 필연적으로 보이는 것은 여성에서 여성으로 전해지는 호흡이다.
그들은 서로 돕는다. 모두가 그렇다는 게 아니라, ‘친절한 금자씨’에게만큼은 그렇다. 인간의 기본 신뢰 관계라 함은 대체적으로 기브 앤 테이크를 기반으로 하지만 만약 당신이 조건 없이 모든 것을 받았다면? 그것도 당신이 가장 원하던 눈앞의 구원을 얻었다면? 다음 차례에 당신은 당신의 모든 것을 줄 수밖에 없다. 그것이 금자만의 긴 꿈이었다. 그녀는 재지 않았다. 아니, 더 잘 쟀다. 그렇게 하나씩 조각을 맞춰갔다. 언젠가 출소 후 누군가 그녀에게 물었었다. 복수극을 벌써 시작했냐고. 그녀는 이미 13년 전에 시작했다 말했다.
그녀는 그렇게 낡고 빛바랜 것들을 손에 넣었다. 오래전 그날 입었던 물방울무늬 옷을 다시 한번 나풀거리며 출소했다. 아무리 흘러간 세월이 무색한 얼굴일지라도, 세월은 마땅히 흘러갔다. 시간은 멈춘 적이 없고, 아침은 한순간에 오지 않았다. 당신이 알기 전부터 이미 여명은 밝아오고 있었을 뿐. 이영애를 화면 속에 담아낸 정정훈의 카메라는 자신이 있어야 할 곳을 정확히 알고 있는 사람 같았다. 더도 덜도 말고, 그저 친절한 것. 실수는 없었다.
그녀가 출소 이후 가장 먼저 한 일은 원모네에 찾아가서 용서를 비는 일이었다. 다른 무엇보다 먼저 실질적으로 행한 일이었다. 그녀는 그들 앞에서 손가락을 잘랐다. 당신네 아들의 목을 졸랐을 거라 생각한 그 손가락을 세상에서 없애려 했다. 이것은 아픈 손가락에 대한 메타포가 아니었을까. 미안하다고, 정말로 미안하다고 말하는 그런 몸부림.
하지만 그날의 일은 단순 해프닝으로 종결되었다. 그녀는 끝끝내 용서한다는 말을 듣지는 못한 채로 다시 너덜너덜한 손가락을 붙이는 수밖에 없었다. 그 뒤로 그녀는 그곳을 다시는 찾아가지 않았다. 여기까지면 됐으니까. 더 할 수 있는 게 없었으니까.
나는 조금 소름이 끼쳤다. 그 뒤로 막히는 것 하나 없이 술술 풀려나가는 복수극과, 금자가 공을 들이는 모든 것에 소름이 끼쳤다. 굳이 그렇게 해야 해? 총이야 잘 쏴지기만 하면 되지.라는 말에 ‘이쁜 게 좋다’ 던 그 말. 심장 소리가 들리고 이마의 땀방울이 보이는 위치가 유효 사격 거리라던 그 말. 사람 죽인 손으로 만든 이쁘고, 맛있는 케이크. 이 괴리가 영화의 전 부분을 관통했다.
아름답기에 더욱이 이상해져 버린 무언가. 자신이 지나치게 완벽하길 바라는 무언가. 그녀를 알고 있던 모든 이들이 말하는 것처럼 그녀는 변했다. 친절해 보일까 봐, 눈 위에 가짜 피멍을 만들었다. 그녀는 그렇게 구원을 목전에 두고 있었다. 하지만 잠시, 그녀는 숨을 골랐다. 그녀는 하던 일을 멈추고 호주로 향했다. 새하얀 세상에 남겨둔 자신의 일부를 확인하러 갔다.
나를 왜 버렸냐며 자신의 말조차 알아듣지 못하는 엄마에게 말을 걸던 딸은 목에 칼을 들이밀며 자신을 한국으로 데려갈 것을 요구한다. 금자는 ‘하는 수 없이’ 그녀를 데려온다. 그리고 잡아둔 백 선생의 주머니에서 주렁주렁 딸려 올라오는 반짝였던 것들을 마주한다. 그녀는 거기서 다시 한번 멈춘다. 잊힌 것들, 여전히 잔재하는 것들을 그녀가 목격하게 된 것이다.
그녀는 자신의 딸에게, 제니에게 말한다. 너와 있어서 행복하지만, 나는 그것조차 누릴 수 없는 죄인이라고. 그리고 미안하다고 말한다. 미안하다는 말을 네 번 한다. 제니가 적어도 3번의 사과를 바라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녀는 네 번 말했다. 하나도 준 적 없는 딸에게, 하나라도 더 주고 싶었으니까.
그렇게 진범을 밝혔더라면 안 죽을 수 있었던 4명을 마주한 그녀는 지극히 개인적이었던 자신의 복수극의 주체를 바꾼다. 알지 못하는 이들을 초대한다. 아이들이 그때 죽지 않고 조금이라도 더 살았더라면 다녔을 어딘가의 텅 빈 초등학교로. 그녀는 그들에게 말한다. 보기 힘드시더라도, 꼭 보라고. 저 사람의 얼굴을. 당신들이 들었던 그 마지막 목소리들은 사실 모두 죽고 나서의 것들이라고.
패닉에 빠진 유가족들은 갈팡질팡 하더니 결국 금자와 같은 개인적 복수의 길을 택한다. 손에 하나씩 줄어든 무기, 피 튀기지 말라며 뒤집어쓴 우비. 복도에 주르륵 앉아있는 그들의 모습에선 어떠한 희망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가장 먼저 교실에 들어선 원모 엄마가 백 선생에게 묻는다. 이렇게 멀쩡하게 생기신 분이 도대체 왜 그러셨느냐고. 그는 사모님, 세상에 완벽한 사람은 없습니다,라고 답했다. 어김없이 악은 평범했다. 평범하기 그지없었다. 그래서 그녀는 그를 사정없이 찔렀다. 다음에 들어간 사람들이 자신들끼리 되묻는다. 지금 와서 이런다고 죽은 애가 돌아오는 건 아니라고. 하지만 이 새끼를 살려 보내는 게 진짜 몹쓸 짓인 거라고. 그들 또한 그를 사정없이 찔렀다. 세 번째로 들어간 사람들은 제 심장이 멎기 직전까지 삭혀 둔 울분을 다 쏟아내고 나왔다. 마지막으로 들어간 은주 할머니는, 은주의 가위를 그의 목에 푹 찔러 넣고 돌아 나왔다. 백 선생의 의자는 그가 죽은 뒤에도 넘어가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그들은 사진을 남겼다. 숭숭 비어버린 사진을. 떨고 있는 기억을 남겼다. 나중에 가서 밀고되지 않기 위해, 자기 자신이 타인에게 살인자임을 또다시 당부하는 금자의 모습에는 진심으로 마음이 아팠다. 그녀는 둔덕에 무릎을 꿇고 앉아 이미 죽은 얼굴에 대고 총을 두 발 쐈다. 안녕히 가세요,라고 머릿속에 그리던 것처럼, 연습했던 것처럼 말할 수는 없었다. 흐릿한 마음과 함께 총은 구덩이 속에 파묻혔다.
앞서도 말했듯이 그들은 알고 있다. 분명히 알고 있다. 이렇게 한다고 한들 자신들의 일부가 돌아오지 않는다는 걸. 오히려 잃게 된다는 것을 말이다. 영화는 이 즈음 모노톤으로 전환되는데 그 시점이 아무리 봐도 명확하지는 않다. 이것은 언제 넘었는지는 모르지만, 분명히 어디선가 넘어버린 선을 의미하는 것일 테다. 불분명하게 어느샌가 스며드는 것. 그렇게 나를 바꾸는 것. 우리는 어느샌가 기괴한 검은 케이크를 맛있게 먹는 검은 사람이 되었다. 어른이 된 채로 우리는, 이대로 아무것도 되지 못할 테다. 그런 정답 없는 슬픔이 나를 찾아왔다.
계획했던 모든 일들이 다 끝난 뒤, 그녀는 멍을 닦아낸다. 더 이상 무언가를 해야 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화장실 바닥에서 구슬이 도르륵, 굴러가는 소리를 듣는다. 그토록 바라던 원모를 만난다. 하지만 언제나 그랬듯이 괜찮다고 용서받을 수 없었다.
그녀는 흰 케이크를 만들어 싸 들고 길을 나선다. 뒤에 졸졸 쫓아오는 근식이 ‘빨간 구두 아가씨 혼자서 가네’라며 노래도 부르고, 말도 걸어오지만 눈길조차 주지 않는다. 나루세에서 나와 집에 다 도착하기도 전, 마중 나와있던 제니를 발견하고 그녀는 정체 모를 표정을 하고 달리기 시작한다. 제니도 그녀를 향해 내달린다. 둘은 끌어안는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렇게 끌어안는다.
금자는 상자를 열어 케이크를 보여주며, 하얗게 살라고, 죄짓지 말고 이것처럼 하얗게 살라고 말한다. 제니는 손가락을 뻗어 한입 훔친다. 그러고는 그녀를 향해도 내밀었다가, 그녀가 끝내 먹지 않자 혼자 다시 한번 맛본다. 그리고 하늘을 향해 입을 벌린다. 더 하얗게! 눈은 이미 내리고 있었지만, 그녀는 마냥 더 하얀 세상을 꿈꿨다.
두부를 닮은 케이크를 바라보던 금자는 끝내 그 속으로 머리를 파묻는다. 어떻게 해도 자신이 다짐할 수 없었고, 어떻게 해도 자신이 얻을 수 없었던 구원에 머리를 파묻는다. 구원이라는 게, 면죄부라는 게 애초에 다 그런 것이었다. 누구도 다른 누구를 살릴 수 없다. 이해도, 용서도 없다. 나를 받아들이는 건 오직 나만이 할 수 있는 숭고한 일이었다. 금자는 그 사실을 받아들였다.
그녀에게 필요한 것은 행복이 아니었다. 만족할 수 있는 행복이란 없기에, 그녀에겐 무엇보다 마음 놓고 울 수 있는 슬픔이 필요했다. 그녀가 오래전 잃은 것은 행복이 아니라 슬픔이었다. 제니는, 그녀에게서 떨어져 나가 있던 그녀의 마지막 일부분이다. 자신의 가장 흰 것. 영원토록 흰 하나의 부분. 맨발과 잠옷 차림의 작은 아이가 휘청이는 검은 엄마를 뒤에서 꼭 끌어안는다. 아이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둘의 품은 꼭 그렇게 맞춰져 있는 것처럼 쏙 들어맞는다. 제니는 바스러져가는 그녀를 붙잡고, 오래전 슬픔이 되어주었다. 마지막 쇼트는 길고 담담하게 그 자리에 남는다. 그렇게 아득히 멀어진다.
눈발을 날리며 박찬욱 복수 시리즈 3부작의 막이 내렸다. 영화의 시작부터 끝까지 일관되게 쏟아지던 눈이 그치지 않은 채로 말이다. 이것은 감독이 금자에게 준 흰 눈. 계속해서 상기시키고 싶었던 제니라는 면죄부에 관한 이야기일 테다. b급 유머와 괴리로 가득 찬 휴먼 드라마. 더 이상의 '친절한' 금자씨는 없었으면 좋겠다 바라게 되는 영화. 내게는 그렇게 기억될 테다. 십삼 년이 지나도.
나는 당신이 슬픔을 아는 사람이기를 바란다. 우리의 인생은 어느 순간 흑백처럼 무뎌지고 분명 해질 테고, 지겹도록 눈이 내려와도 그걸 신경 쓸 여유조차 남지 않을 수도 있다. 아직도 두려운 순간이 있다는 것은 아직 잃을 것이 남았기 때문일 테니, 그대 오늘도 이 영화의 마지막처럼 열심히 사랑하기를. 누군가에게 건네줄 수 있는 가장 흰 것을 꼭 잊지 않고 붙잡고 있기를. ‘친절한 금자씨’를 흰 눈이 오는 날 꺼내어 볼 수 있는 이토록 친절한 세상에서, 당신도 열심히 살아가기를, 그리고 가장 행복한 순간에 영원토록 머물기를, 나는 바란다. 안녕, 금자씨.
2017.11.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