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Thank You, Next

writer. 정혜원

by 무드이십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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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려의 대표적 정의인 ‘반려자’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내 평생 반려자가 없었던 순간은 손에 꼽는다. 역사의 시작은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 챙겨보던 <이누야샤> 속 ‘셋쇼마루’. 이후로 학력이 오르며 점차 그 수가 늘어갔다. 애니메이션과 아이돌을 정신없이 살피며 한 번에 약 6명의 반려자를 두기도 했다. 무대 위, 종이 위, 스크린 위 어디든 상관없다. 나에게 반려자의 조건은 실존 여부가 아닌 ‘내가 사랑하는가’니까.


그렇게 거쳐온 사랑의 연대기는 이러하다. <이누야샤>, 소녀시대, 카라, 슈퍼주니어, <블리치>, 인피니트, B1A4, 빅뱅, 티아라, 엑소, 샤이니, 빅스, <원피스>, <어벤져스> 시리즈, <킹스맨>,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 <언더테일>, <오소마츠상!>, NCT, 김지온(뮤지컬 배우), 하츠투하츠 등 ….



바깥으로 돌기를 싫어했던 내가 활발해지기 시작한 것 역시 이들 덕분이다. 특히 반 친구들과 교류하는 것만으로 충분했던 아이돌과 달리, 애니메이션에 빠졌던 때는 세상과 소통하려 애썼다. ‘서울코믹스’, ‘디페스타’처럼 큰 행사에 출석해서 1시간 넘게 기다리며 인기 굿즈를 구매하고, 캐릭터를 직접 만나며(코스프레를 한 사람들) 기쁨의 비명을 질렀다. 심지어는 친구들과 직접 코스프레를 해보기도 했다. -<언더테일>의 유령 ‘냅스타블룩’. 천을 뒤집어쓰면 끝!-


고등학생 시절, 나는 <오소마츠상!>의 ‘카라마츠’라는 캐릭터와 진심으로 결혼하고자 했으며 그 사실을 굳이 숨기지 않았다(애니메이션에 대한 편견이 심했던 때였으나, 나는 당당했다). 이런 나를 위해 아무것도 모르는 친구들이 <오소마츠상!> 캐릭터들을 공부하고 함께 좋아해 주었던 기억이 난다. 쌍둥이 여섯 명의 특징과 이름을 외우더니 불쑥 찾아와 자랑했던 친구도 있었다-정말 고맙고 사랑스러운 친구-.



하지만 가장 마음을 쏟았던 반려자는 따로 있다. 정말 연애라도 하듯이 온종일 소식을 찾고, 메신저를 쳐다보고, 걱정에 매일 밤 눈물을 쏟았던 반려자. NCT의 ‘제노’.


임금 제(帝), 힘쓸 노(勞). 노예인 줄로만 알았으나(‘제노예요’ 밈) 임금이었던 사람. 목격담도 없을 정도로 심각한 집돌이, 그런데도 사랑이 많고 따뜻한 구석이 있어 팬과 멤버들에게 사랑을 듬뿍 받는 사람. 일을 사랑하기에 연습을 게을리하지 않고 누구보다도 팀을 사랑하는 사람. 사모예드를 닮은 데다 웃는 얼굴이 예쁘고 성격이 순해서 멤버도 팬도 의심의 여지 없이 ‘강아지’라 칭하는 멤버. 이제는 NCT라는 그룹과는 이별했으나, 제노에게만큼은 미련을 가지고 어느덧 7년째 응원을 이어 가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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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CT의 일부 NCT DREAM은 멤버들이 흩어질 뻔한 위기를 겪으며 멤버간, 그리고 팬과의 깊은 애착 관계가 형성된 팀이다. 마침내 팀이 고정된 후에 나를 비롯한 팬들은 팀의 의미를 성적으로 증명해주고자 했다. 음반 판매량과 스트리밍 점수를 올리기 위해 온종일 휴대폰을 들여다보았다. 매일 투표권을 사들이며 치열하게 노력한 끝에 대상 트로피를 안겨준 날엔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닿고 싶은 마음과 물욕도 커져갔다. 콘서트는 물론 팝업스토어, 팬미팅 등에 최대한 출석하며 모든 엠디를 섭렵했고, 제노의 모든 포토 카드를 모으기 위해 비싼 금액도 기꺼이 지불했다.


그러나 연예인과 팬의 관계에는 한계가 있는 법. 콘서트나 팬미팅 티켓을 얻는 건 하늘의 별따기고, 운 좋게 무대와 가까운 좌석에 앉아도 내 카메라를 봐주는 시간은 1초도 되지 않는다. 이들이 랜덤하게 주는 선물의 주인이 내가 될 확률은 낮다. 최대한의 돈과 시간을 써도, 더 많은 투자를 한 이들에게만 기회가 돌아간다.


2024년. 처음으로 사전녹화에 당첨되어 기쁜 마음으로 서울로 향했다. 막차를 포기해야 할 만큼 늦은 시간에 2시간의 대기를 거쳐 무대 아래 종아리가 터지도록 서 있었건만, 녹화 시간은 얼마 되지 않았고 멤버들은 지쳤는지 자주 말을 걸지 않았다. 조금 기대했던 역조공(연예인이 팬에게 주는 참여 선물)도 없었다. 응원봉을 든 사람들이 방송국 앞에서 뿔뿔이 흩어질 때, 문득 허탈감이 들었다. 서운함을 느꼈던 모든 것을 아이돌이 당연히 보장해줄 필요는 없었지만, 그간 애쓰고 울고 웃었던 시간의 의미가 사라지는 것 같았다. 머릿속이 뒤엉켰다. 이 팀이 정말 좋고 이들의 행복과 성공을 바라나, 그 후에 내게 남는 것은 무엇인지 많이 고민했다. 하다못해 보답이라도 받고 싶었으나 실망한 마음이 사무쳤다. 그날 이후 자연스럽게 팬으로서의 열정이 끊겼다.


하지만 멤버들은 개개인에게는 보답하지 못하더라도 ‘시즈니’에게 꾸준히 사랑을 돌려주고 있다. 제노뿐 아니라 멤버들은 여전히 팬과 일을 사랑하며 진심을 다하고 있으니, 이를 이해하고 관심도를 지나치게 올리지 않으니 만족감이 이전보다 커졌다. 어쩌면 나만의 반려 방식을 찾은 걸지도 모른다. 미지근한 애정!



제노와의 이별 후 나는 그 누구도 새로운 반려로 들이지 않았지만 뮤지컬 관람이라는 새로운 반려 취미를 얻었다. 재능 있는 배우들이 신나고 멋진 음악으로 의미있는 서사를 들려주는 것은 정말 멋진 일이다. 여전히 카사노바의 성격을 버리지 못해 여러 배우에게 눈길을 주고 많은 작품을 보고 있다. 적당한 애정으로 안정적인 마음을 이어가며, 아주 즐겁게!


마치 연애처럼 많은 이들과 다양한 형태로 감정을 주고받으며 나는 성장했다. 열정과 미지근함의 조절을 깨우쳤다. 이제는 정말로 안정적이고 새로운 반려가 필요한 시기! 과연 다음은 누구일까, 내게 어떤 희로애락을 선사할까? 누구든 자신 있다면 일단 소개해 주시기를. 저는 무대도 종이도 스크린도 문제 없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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