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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어PD Dec 14. 2023

찌질했던 나의 ‘소년시대’

내가 기억하는 나의 첫 찌질함은 초등학교 1학년때로 기억된다.  

집 앞에 서 있다가 모르는 친구의 발을 걸어 넘어트렸던 적이 있었다.  

친구도 없이 혼자 집 앞에 서 있던 나는, 다른 친구들과 놀고 있는 그 아이들이 부러웠다. 그래서 일면식도 없는 아이가 신이 나 뛰어가고 있을 때 발을 걸었다. 넘어진 아이는 꽤 다쳤던 걸로 기억이 된다. 부모들까지 나와서 발을 걸었니 안 걸었니 싸움이 났지만 나는 끝까지 모른 척 잡아뗐다.  

그 후로 중학생 때는 집안에서 누나의 발을 걸어 TV장 위의 유리에 넘어져 팔이 심하게 찢어진 적이 있었다. 피를 많이 흘려 응급실에 실려갔었는데, 지금도 그 기억을 떠올리면 괴로움에 온몸에 닭살이 돋는다.


초등학교 때는 동네 골목에서 손가락 만한 고무자석을 지나가던 차에 던지기도 했다. 나쁜 의도는 없었다. 그저 달리는 차에도 자석이 붙을까 하는 호기심이었다. 다행히 착한 운전자를 만나 크게 혼나고 말았다.   

그 외에도 전기 콘센트에 젓가락을 꽂아보거나 성냥이 빼곡히 담긴 팔각형 통에 불을 붙여 보기도 했다.   

그래도 이 정도는 애교로 봐줄 수 있지만 학년이 올라가면서 찌질함의 정도가 달라진다.   

중학교 2학년 때까지 나의 학창생활은 굳이 분류를 하자면 괴롭힘을 당하는 쪽에 가까웠다.  

중2 때, 반에 싸움 잘하는 '성호’라는 아이가 있었다. 정기적인 상납은 아니었지만 가끔 돈을 뜯기기도 했다. 그 아이가 무서워 소풍도 무단으로 빠진 적이 있었는데, 다음날 아이들이 다 보는 교실에서 선생님께 뺨을 여러 대 맞았던 기억이 있다. 지금 생각하면 그 선생은 이유를 알려고도 하지 않고 소풍에 오지 않았다는 사실하나로 다짜고짜 왜 그렇게까지 때려야만 했는지 납득이 가지 않는다. 엄마도 없이 사고 치고 다니는 찌질한 아이 정도는, 선생의 눈에도 화풀이 대상으로 보였을까…


어쨌든 지금 생각하면 왜 그랬을까 싶은 한심하기 짝이 없고 후회되는 행동이다.   

그 외에도 이불킥을 할 만한 일들은 수도 없이 많다.   

중1땐 다른 반과 축구시합을 한 적이 있었는데, 우리 반이 이겼었다. 그런데 상대반에 싸움 잘하는 아이가 화가 나서 축구를 뛴 아이들 모두를 학교 뒷산으로 끌고 간 적이 있다. 전부 무릎을 꿇리고 축구하면서 있던 일을 추궁했다. 나는 너무 무서워서 잘못했다고 싹싹 빌었다. 동급생이었지만 존댓말까지 써가며 빌었던 기억이 난다. 지금 생각하면 뭐가 그리 무서웠을까 싶을 만큼의 찌질한 행동들인데, 어릴 때부터 가정폭력을 겪으며 자라왔던 터라, 힘 있는 누군가의 위력에 한없이 위축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어린 시절 찌질함은 철이 없거나 공포와 두려움이 원인인 경우가 많다.  

하지만 성인이 된 이후의 찌질함은 돈과 관련된 경우가 많다.


사회생활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된 30대 초반, 친구의 결혼식에 축의금 3만 원을 낸 일은 지금도 자다가 손발을 오그라들게 만든다. 그렇게 친한 친구는 아니었지만 그 후로 한 두 번 그 친구를 만날 때면 떠오르는 3만 원의 기억이 나를 괴롭혔다.   

가난한 환경이지만 찌질한 사람이 되기 싫었던 나는, 식당에서 음식을 시킬 때면 먹고 싶은 것보다는 가격에 맞춰 주문을 하고 옷이나 물건을 살 때도 가격이 붙은 택을 먼저 확인한다. 지인과 식사를 하거나 술을 마실 때면 직전에 누가 계산했는지를 떠올리며 돈 낼 순서를 헤아렸다.   

대학교 4학년 때, 친하게 지내던 중학교 친구를 우연히 만나 가깝게 지내다 70만 원을 빌려준 일이 있었는데, 돌려받지 못했다. 믿었던 친구에게 속았다는 생각과 함께 몇 달을 아르바이트하며 모아놓은 돈이 너무 아까워 분했다. 읽지도 않은 메일과 문자메시지를 하루가 멀다 하고 보냈다. 어떤 날은 협박과 쌍욕을 보내고 어떤 날은 나의 상황을 사정해보기도 하고 어린 시절 추억에 기대 하소연 하기도 했다. 훗날 알게 된 사실은, 전문대를 나와  컴퓨터 수리 가게를 차려 운영하던 친구는, 부도를 내고 잠적하기 직전 지인들에게 조금씩 돈을 빌려 사라져 버렸다.   

친구에게 돈 몇 푼을 빌려 잠적한 놈도 찌질했고 7백, 7천만 원도 아닌 70만 원을 빌려주고 욕을 보낸 나도 찌질했다. 만약 그 친구가 사실대로 말하고 나에게 도움을 요청했다면 나는 어떻게 했을까… 그 친구도 내가 진정한 친구라는 느낌이 없었기 때문에 그렇게 속이지 않았을까 싶다. 그때로 다시 돌아간다면 ‘얼마나 힘들었으면 그랬는지 이해한다’하고 내 돈은 신경 쓰지 말고 힘내라는 메시지를 보냈을 것 같다. 결과적으로 나는 돈도 잃고 친구도 잃었다.  


기숙사에서 생활할 때 주인이 불분명한 물건에 손을 댄 적도 종종 있었다. 빨래를 하고 가져가지 않은 티셔츠며 옷가지들, 식당 테이블에 놓고 간 책이나 물건들을 슬쩍 가져온 적이 있다. 대놓고 무엇을 훔칠 만큼 간이 크진 않지만 임자 없는 물건은 주워다 쓰고 싶은 탐욕과 욕심은 가득했던 것 같다.   

찌질함의 본질은 그런 게 아닐까…  


‘찌질하다’라는 뜻을 사전에서 찾아보면 ‘보잘것없고 변변하지 못하다’라고 나와 있다. ‘보잘것없다’는 뜻은 ‘볼만한 가치가 없을 정도로 하찮다’는 뜻이다.   

사전적 의미는 겉모습에 국한된 것처럼 보이나 찌질함은 결국 인간의 마음이다.


공포와 두려움, 탐욕과 욕심이 찌질함의 본질인 것 같다.


인간이라면 대부분 죽음과 폭력에 대한 원초적 두려움을 갖고 있다. 현대사회에서는 직접적인 폭력은 줄었지만  권력과 돈에 의한 힘이 ‘무력’의 역할을 대신해 여전히 존재한다.   

공포가 인간을 한없이 나약하게 만들고 도전을 무력화시킨다면 탐욕과 욕심은 사람을 괴롭게 만든다. 채워지지 않는 욕심은 삶을 지옥을 만들어 버린다. 내가 손에 쥐고 있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깨닫지 못하고 결국엔 다 잃게 만드는 것이 탐욕이다.    

그렇게 두려워하는 과정, 욕심부리는 과정에서 인간은 찌질해진다.   

내가 학창 시절 폭력을 무서워하지 않고 즐겁게 노는 아이들의 행복을 시기하지 않았다면. 내가 갖지 못한 것에 욕심내지 않았다면 찌질하지 않았을까…


그럼에도 인간은 각자의 방식으로 찌질하다. 두려움과 욕심은 사라지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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