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는 리더의 자격이 아니다

by 무어

나는 사람 만나는 일을 한다. 구체적으로는 사람을 미화하는 일을 한다.


미화해야 하는 대상이 정해지면 취재를 통해 그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정리하며 요약한다.

이때 대부분 사람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누구나 다 하는 거 아닌가요? 특별할 게 없는데… 이게 이야깃거리가 돼요?라는 반응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그렇게 말하는 사람일수록 쓸만한 이야깃거리가 더 많다. 오히려 스스로 대단하다고 자부하는 사람들을 만나보면 별로 쓸 말이 없는 경우가 많았다.


어쨌든 사전 취재로 들은 이야기 중 중요한 포인트는 무엇이고, 강조해야 할 부분과 버려야 할 부분을 정한다. 큰 주제와 방향성을 정하고 어떤 사람으로 보이게 할지도 결정한다. 인간적이고 정이 많은 사람, 논리적인 사람, 노력하는 사람, 운이 좋은 사람, 착한 사람 등으로 포장해 줄 수 있다.

보통 악마의 편집이라고 표현하는 그 짓을 통해 세상에 둘도 없는 천사로 만들 수도 있고 쳐 죽일 놈으로도 만들 수 있다.

그래서 PD는 최대한 객관적이어야 하고 개인적인 감정을 프로그램에 반영하지 말라고들 한다.


하지만 나는 AI가 아니다. 너무나도 감수성이 풍부하고 감정적인 ‘사람’이다.

만드는 놈이 ‘사람’인데 객관적인 것을 기대하는 게 애초에 무리다.

인터뷰이를 만났을 때, 첫인상이 마음에 들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감정을 최대한 배제하려고 노력은 하지만 내 취향에 맞는 태도와 외모를 가진 사람이라면 질문이 좀 더 우호적으로 가기도 한다.

촬영 후에는 잘 생기고 예쁜 모습을 찾아 편집하려고 시간을 더 들일수도 있다.

개떡 같은 모습을 일부러 찾아 넣진 않더라도, 손을 한번 더 대는 것만으로도 퀄리티는 높아질 수밖에 없다.

촬영까지 가지 않더라도 사전 취재 단계에서 상대에 대한 이미지가 강하게 박히는 경우가 있다.

그래서 이 단계에서 제작을 포기할 때도 종종 있다.


얼마 전에 사전 취재를 위해 대상자에게 전화를 건 적이 있다. 제작 취지를 설명하고 관련 내용을 듣기 위해서인데, 다짜고짜 본인은 출연할 생각이 없다는 것이다. 물론 나는 대상자의 출연이 절실한 상황이었는데, 긴 설득과 거절이 오간 끝에 그가 한 말이 나에겐 충격이었다. 본인은 업무 하기에도 바쁜데 이런 걸로 왜 피해를 봐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말꼬리를 잡고 싶진 않지만, 나는 ‘피해’라는 단어에 꽂히고 말았다. 내가 하는 일이 누군가에게 피해를 주는 것이었다니… 20년 가까이 일을 해왔지만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는데 이번 일을 통해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말을 처음 들었을 때는 화가 나기보다는 당황스러웠다. 시간이 지나자, 그렇게 말한 그의 마인드와 일을 대하는 태도에 대해 짜증과 화가 올라왔다. 그래서 그 방송 아이템은 바로 ‘킬’ 시켰다. 그럴 땐 더 매달리지 말고 다른 아이템을 찾는 게 현명하다. 이미 나의 감정도 상했고 상대방도 진행할 의사가 전혀 없기 때문이다.

이런 사람의 인상은 오래 남는다. 이 사람의 인상착의와 외모는 오래 각인된다. 그래서 다음에 이와 비슷하게 생기거나 비슷한 말을 하는 사람을 만나면 과거의 데이터를 꺼내 평가하게 된다.


이런 식으로 40년을 넘게 경험하면서 내 뇌에 쌓인 빅데이터에 따라 ‘편견’이라는 것이 생겼다.

그리고 사람을 만날 때마다 나의 빅데이터에 근거해 ‘부정적인’ 태도의 사람에게는 자동적인 방어기제가 나타나게 된다. (물론 상대에게 티가 안 나길 바란다)

그런 사람과 진행한 프로젝트는 억지로 잘 나오게 포장하지 않는 것 자체로, 그 사람에게는 이미 마이너스가 된다. (어쩌면 어설프게 기분 나쁜 상태로 제작을 진행하는 것보다 강한 인상을 남겨 제작 자체를 안 하게 하는 게 상대 입장에선 현명할 수도 있겠다)


나의 업무를 예로 들었지만,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경험하는 일일 텐데, 하고 싶어서 하는 경우와 어쩔 수 없이 하는 경우가 생기기 마련이다. 그래서 일을 할 때, 열정을 갖게 되는 경우가 있고 기계적으로 할 때가 있다. 모든 일에 열정적인 사람이 어디 있겠냐만은... 그 차이를 최대한 줄이는 것이 프로와 아마추어의 차이인 것 같다.

또 어떤 위치에 있는지에 따라 그 차이는 치명적일 수도 있다. 내 일만 하면 되는 ‘팀원’ 또는 프리랜서 일 때는 이게 큰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협업을 해야 하거나 팀의 리더일 때는 이야기가 달라진다.


프리랜서라면 일할 때마다 달라지는 열정의 정도를 스스로 조절하면 된다. 하기 싫은 일도 최대한 티 나지 않게 처리하는 것이 ‘나’로 국한되어 있다. 혹은 안 하면 그만이다. 이런저런 핑계나 명분을 대고 그 일 자체를 피해 버리는 것이다.

하지만 리더라면 일을 메이드 시키는 것이 리더의 역할이기 때문에 개인의 감정을 추스르지 못한다면

리더의 자질이 없거나 훈련이 덜 되었다고 봐야 한다.

그리고 리더는 본인만 열정을 끌어올려서는 좋은 결과를 얻기 어렵다. 오히려 본인만 열정 가득한 상태일때 팀원들의 불만은 거세질 수밖에 없다. 리더의 의욕이 100인데 팀원들의 의욕이 50 미만이면 리더는 깡패가 될 수밖에 없다.

리더는 본인 스스로의 동기부여만큼이나 팀원들의 열정을 올려야 하는 사람이다. 팀원들의 동기부여를 어떻게 잘 시키는지가 리더 역량의 대부분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다.

일을 못하는 리더는 용서가 되지만 팀원들의 사기를 떨어뜨리는 리더는 용서받을 수 없다.


그렇다면 어떨 때 팀원들의 사기가 떨어질까? 나의 직장 경험으로 봤을 때 리더가 팀원을 믿어주지 않는다는 느낌이 들 때 사기가 가장 많이 떨어지는 것 같다. 그런 느낌은 리더의 표정과 말, 말투, 몸짓에서 느껴진다. 인간은 몇만 년을 통해 위계질서 속에서 생활해 온 동물이다. 본능적으로 나보다 강한 사람의 눈치를 보게 발달되어 있다. 아마 리더의 숨소리와 냄새, 목소리에 녹아 있는 기분까지 캐치해 낼 수 있게 발달된 것 같다. 그래서 리더는 마음속으로도 팀원을 무시하거나 불신하면 안 된다. 결국 팀원들은 그걸 어떻게든 잡아내고 본인 스스로를 비하하는데 활용한다. 그래 난 안돼, 부장이 나만 싫어해, 왜 나한테만 그러지… 이런 생각을 해 본 사람이라면, 슬프게도 그 생각이 거의 맞을 것이다. 인간은 자신에게 공격적이고 비판적인 인간들을 찾아내는 특출한 능력을 갖고 있다. 하물며 온갖 세포를 총 동원해 관찰하고 있는 리더에게서 그걸 느끼지 못할 인간은 없다.


내가 경험했던 리더들은 디양한 방식으로 팀원들에게 동기를 부여했다.


위장이 좋지 않았던 나에게 양배추즙 한 박스를 사비로 선물해 준 부장도 있었고

매일 인상을 쓰고 욕을 하며 신경질적으로 공포감을 조성하는 부장도 있었다.


인간이란 참 간사해서 대체로 단기간 성과를 내는 데는 공포만 한 '동기부여'도 찾기 힘들다.

공포심은 그 어떤 싫음과 나태도 이겨낸다. 욕을 먹지 않기 위해, 공격당하지 않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한다. 하지만 그런 경직된 상황에서 뇌는 실수할 확률이 높아지고, 그런 실수는 또 리더의 욕과 공격을 유발하게 된다. 악순환이다. 하는 일이 단순 반복하는 업무라면 그나마 노력으로 실수를 줄일 수 있겠지만, 창의력을 필요로 하는 일이라면 공포로 팀을 이끌기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내가 겪은 부장은 아니지만 자기 분야에서 매우 잘해서 발탁된 부장이 있었는데 부장이 된 후 임원과의 궁합이 맞지 않아 보고 때마다 인격적인 모욕을 여러 사람들 앞에서 당했다고 한다. 그래서 그 임원 앞에만 가면 말을 못 하고 버벅거리다 땀을 흥건히 쏟은 부장이 있다고 들었다.


동기부여를 공포로 하는 리더는 본인이 그런 캐릭터라는 것을 알고 있을까?

대부분은 모른다. 깡패들도 스스로를 깡패로 부르지 않고 건달로 불리기를 바라듯이, 본인이 악당이라는 데에 동의하는 악당은 없다.

누구에게나 세상의 중심은 ‘나’ 아닌가.

타고나길 훌륭한 성품을 지니고 있는 사람도 있다. 반대로 타고나길 못된 성질을 갖고 태어난 사람도 있다.

본인은 알지 못하더라도 주변에 불편함과 공포감을 뿌리고 다니는 사람이 있고 편안함과 긍정적인 분위기를 퍼뜨리는 사람이 있다.

이제는 리더가 무리의 우두머리가 아니라, ‘리더’의 역할을 하는 조직의 구성원일 뿐이다.

무조건 나이가 많다고 리더가 되는 시대도 아니지 않은가.

리더의 말에 무조건 따르고 복종하는 시대도 아니다.

공포가 아닌 믿음으로 조직원의 창의력을 끌어올릴 수 있는 사람이 리더의 자격이 있는 사람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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