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은 무엇일까
사회생활을 오래 하면서 신입사원부터 직급을 하나씩 경험했다. 그러면서 알게 된 것은 사람은 자신의 상황을 기준으로 판단한다는 점이다. 내가 접한 정보의 크기에 한해서 사안을 판단하고 감정을 만들어낸다. 주임, 대리 때 생각할 수 있는 폭은 한정적이다. 회사 전체의 이익을 보기보단 자신이 맡은 업무에 대해서만 생각하게 된다. (이 정도만 생각하는 친구들도 훌륭한 친구들이다) 그보다 직급이 올라가게 되면 부서를 염두에 두게 된다. 회사 전체의 이익보다는 부서의 이익이 우선인 시기이다. 그보다 더 올라가게 되면 어떻게 될까… 물론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회사의 이익을 생각하는 사람들이 조금씩 늘어간다. 그런데 여기서 말하는 회사의 이익이 과연 진정한 회사의 이익이 되는 방향인지는 또 다른 문제다. 회사의 이익이 아닌데 본인만 그런 확신을 갖고 밀어붙이는 경우가 많다. 이때 밑의 직원들은 굉장히 피곤하게 되고 회사 전체로 볼 때도 마이너스가 된다.
최근에 서울-양평 고속도로가 핫하다. 이런 정치적 사안에 대한 글을 쓰는 게 내키지는 않지만 너무 궁금했다. 진실은 무엇일까… 하지만 무엇이 진실인지는 알기 힘들다. 의혹을 제기하는 쪽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일리가 있어 보인다. 누구라도 이상하다고 생각할 수 있는 정황들이다.
그런데 선한 의도가 꼭 전체의 이익이 되는 것은 아니다. (사람의 마음과 의도를 꿰뚫어 보는 건 불가능하기 때문에 선한 의도라는 말 자체가 성립하지 않을 수 있다) 말을 바꿔서 투명하고 공정한 절차에 의한 일이 꼭 전체의 이익이 되는 것은 아니다. 그런 측면에서 장기적으로 무엇이 우리에게 이익이 될지는 알 수 없다.
의도가 어떻든 지금 새롭게 튀어나온 2안이 장기적으로 국가에 더 큰 이익을 줄수도 있다. 원안이 꼭 절대 선이고 대안이 절대 악일 수 없다. 고속도로가 건설되고 10년 후 사람들이 이걸 왜 여기다 지었을까 욕할 수도 있다. 저기다 지었으면 더 좋았을 텐데 하며… 미래를 가보지 않는 이상 결과를 알 수가 없다.
그래서 우리는 절차라는 것을 거친다. 누구도 알 수 없는 결과를 조금이라도 예측해 보기 위해 사전에 많은 과정을 거치게 된다. 우선 비용이 가장 적게 들어가는 방법은 무엇인지, ‘그것’이 완성되었을 때 미치는 영향을 좋은 점, 나쁜 점 등 다양하게 예측해 본다. 이건 국가적인 대규모 건설 사업뿐 아니라 회사에서 하는 크고 작은 사업들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그런 예측을 근거로 토론과 설득의 과정을 거쳐 의사결정권자들은 선택을 하게 된다.
그래서 시간이 오래 걸린다. 하지만 이런 절차 없이 사업을 시작했을 때 겪어야 하는 사회적 비용은 훨씬 더 크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서울-양평 고속도로 사업에서 이런 과정이 무너진 것 같다.
앞서 말했듯이 우리는 접한 정보의 양과 질에 의해서만 사안을 판단하게 된다.
보통의 국민들이 접할 수 있는 정보라는 것이 뻔하다. 언론과 정치권에서 주장하는 내용들이 전부이다.
그래서 선동에 휘말릴 수도 있고 현혹될 수도 있다. 어떤 사안에 대해 ‘모르면 좀 가만히 있어라’, ‘내가 말은 못 하지만 그럴만한 사정이 다 있다’라고 억울함을 토로할 사람들이 있을 수 있겠지만, 보통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한정적인 정보에 의해 판단해 봤을 때 이상한 일임에 틀림없다. 누구도 그것에 대해 명쾌한 설명을 못하고 있다.
이럴 때 수많은 상상력이 작동하게 된다. 직급이 낮은 직원들이 모여 새로운 상상력으로 루머를 만들어내고 이해가 안 가는 부분을 나름의 논리로 퍼즐을 맞춰놓기 시작하면 사람들은 그 말을 믿게 된다. 나중에 밝혀진 진실은 안중에 없다. 본인이 믿는 그 논리가 그 사람에겐 진실이 된다.
이제 이 서울-양평 고속도로 건은 당분간 우리나라의 블랙홀이 될 가능성이 높다. 너무나 좋은 공격 거리를 잡은 쪽과 어떻게든 벗어나려고 발버둥 치는 쪽과의 싸움이다. 암바를 걸고 있는 자와 걸린 자. 둘 다 프로라는 가정하에 시간이 지나면 결국 포기 탭을 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하지만 빠져나오는 방법이 전혀 없는 건 아니다. 팔을 물어뜯거나 급소를 치고 눈알을 찌르는 방법으로 빠져나올 수도 있다. 그건 반칙 아니냐고 항변해 봐도 이미 상대는 암바에서 벗어난 이후일 것이다. 그러면서 더 이상 룰이 있는 스포츠가 아닌 상태가 된다. 나아가 관객들은 이런 막장 스포츠에 관심을 갖지 않게 되고 결국 반칙으로 빠져나온 사람은 다시 칼이나 총을 들고 와서 상대를 제압해 버릴 수 있다. 경기장이 문을 닫으면 선수는 할 일을 잃고 관객은 즐거움을 잃는다.
경기를 하다 보면 질 수도 있고 이길 때도 있다. 실수를 할 수도 있고 전략을 잘 못 짰을 수도 있다. 또는 훈련이 부족했거나 경기 중 다른 생각을 했거나 경기 전 누군가의 승부조작에 당할 수도 있다.
이기고도 찜찜한 경우가 있고 지고도 시원한 경우도 있다. 이 모든 경우의 전제는 결과에 대한 승복이다. 끝까지 패배를 인정하지 않으면 나아갈 수 없다.
지금의 상황을 벗어나고 한발 나아가기 위해서는 잘못의 인정이 필요할 것 같다. 의도를 갖고 고속도로 원안을 변경했든 실수로 했든 절차상 문제가 있는 건 맞아 보인다. 그 부분에 대해 인정하지 않으면 이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