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본잡초와 2만 명의 아버지

by 무어

호주 해안가에는 ‘리본 잡초’라는 식물이 산다.

리본 잡초는 제주도 면적보다 넓게 퍼져있다고 하는데, 모두 하나의 유전자라고 한다.

즉 같은 뿌리에서 자란 ‘하나’의 생명체다.

씨앗 하나가 무려 4500년 동안 자라서 제주도보다 큰 식물이 됐다.

4500년의 시간 동안 얼마나 많은 일들을 겪었을까?


인간의 역사는 생존을 위한 투쟁의 시간이었다.

삶을 위협하는 것으로부터 살아남기 위해 끊임없이 투쟁했다.


환경과 자연으로부터의 위협, 특히 같은 종인 사람이 제일 위협적이었을 것이다. 구석기시대를 70만 년 전에서 1만 년 전까지로 본다면 내 조상들이 생존에 성공해서 ‘나’라는 개체를 만들어냈다는 건 정말 기적에 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나의 아버지의 아버지, 그 아버지의 아버지를 무한대로 거슬러 올라가 보면 누굴 만날 수 있을까? 한대를 30년으로 잡고 만년을 되돌아가면 333명의 아버지를 만날 수 있다.


70만 년으로 치면 23,333명이 된다.

이렇게 계산했을 때 가장 첫 번째로 든 생각이 있다.


그 사람들은 얼마나 많은 죄를 지었을까… 법과 윤리, 도덕과 정의라는 개념이 없을 시기가 대부분이었을 그 시대의 조상들은 얼마나 많은, 같은 종을 죽이고 먹고 치열하게 살아남았을까.


때로는 누군가의 도움을 받았을 거고 도와주기도 하고 배신과 연대를 했을 것이다.


조선말에 노비와 양반이 뒤섞이면서 신분 세탁이 많이 됐겠지만, 지금 남은 성씨와 족보라는 것이 틀리지 않았다는 가정하에 나의 조상은 고려시대 무신이었다 한다. 기껏해야 고작 천년 정도 전의 일이다. 천년이면 위로 서른세 명의 아버지밖에 없다. 의견이 맞지 않는다고 죽이고 나의 출세에 걸림돌이 되어 죽이고 수많은 사람들을 죽이면서 살아남은 조상들. 이 사람들의 유전자를 검사하면 나와 99.9% 일치한다고 나올 것이다.


그렇다면 나에게도 그런 파괴와 생존의 유전자가 남아 있을까?

앞에서 말한 리본잡초는 환경을 이겨내는 힘이 강했을 것이다.


4500년이면 수도 없는 태풍과 녹조, 이상기온, 천적을 만났을 텐데 그때마다 이 ‘잡초’는 바뀌는 환경을 이겨냈다.


사람이 환경을 이겨내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 육체적인 강인함이 제일 중요할 것 같지만 그보다는 살고자 하는 의지가 더 큰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보통, 대부분의 사람들은 죽음을 반기지 않는다. ‘나이 먹으면 죽어야지’라는 말을 입에 달고 다니는 노인도 정작 죽을 때가 되면 더 살고 싶다고 한다. 하지만 이런 ‘죽고 싶지 않은 마음’이 곧 살고자 하는 강한 의지라고 보긴 어려울 것 같다. 단지 죽음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과 공포가 더 크겠지…


누구나 한 번쯤은 죽음에 대해 상상해 봤을 텐데, 나도 그 공포를 실제로 느껴본 적이 있다.


몇 년 전 심한 장염으로 병원에 간 적이 있는데, 당시 탈수증상으로 극심한 두통이 있었다. 병원에서 진정을 위해 링거를 맞다가 온몸에 마비가 온 적이 있다. 침대에 누워 간호사가 팔에 주사기를 꽂고 5분 정도 있었을까? 몸이 추워지고 떨렸다. 호흡이 가빠지고는 발끝에서부터 몸이 움직이지 않는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 ‘마비’라는 것이 종아리로 올라오고 허벅지를 지나 점점 상체로 향하는 느낌이 든다. 급하게 간호사를 호출하고 주삿바늘을 뽑았다. 하지만 움직일 수 없는 그 느낌은 점점 위로 올라왔다. ‘저것’이 팔 끝에서도 시작되어 점점 심장과 머리를 향하는 순간 이게 죽는 느낌일까 하는 생각이 들고 간호사에게도 그렇게 물었던 것 같다. ‘저 이렇게 죽는 건가요?’


병원에서 구급차를 불러 더 큰 병원으로 옮긴 후에야 진정이 되었다. 재밌는 건 구급차를 가는 도중에 괜찮아졌다. 같이 구급차에 탄 회사동료는 구급차가 사이렌을 켜지 않고 차선을 정상적으로 주행하길래 죽지는 않겠다고 생각했다고 했다. 구급대원은 내 얼굴에 호흡기를 대고는 별로 대수롭지 않다는 듯, 호흡을 천천히 하라고 했다. 생각해 보니 몸이 추워지면서 내 호흡이 엄청 빨라져 있었다. 과호흡에 의한 마비증상이라고 했는데 몸속에 갑자기 산소량이 증가한 게 원인이라고 한다. 호흡기의 역할은 내가 숨을 쉬기 어렵게 만들어서 산소량을 줄이는 것이라고 했다. 의식적으로 호흡을 천천히 하는 것 밖에 방법이 없다고 한다. 공황장애의 증상과도 비슷한데 극도의 스트레스를 갑자기 받았거나 알레르기 증상일 수도 있다. 아무튼 그렇게 나의 과호흡으로 인한 마비는 오래가지 않아 풀렸다.


이때는 의도치 않게 죽음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지만 ‘자발적인’ 죽음도 생각해 본 적이 있다.


어릴 때부터 소화기관이 좋지 않았던 나는 자주 토했다. 그런 일은 꼭 새벽 2시에서 3시 사이에 일어나곤 했는데, 심하게 토할 때는 토하면서 눈물이 난다. 온몸의 액체가 입을 통해 빠져나오는 느낌이다. 그렇게 힘을 줘 토하다가 허벅지에 쥐가 나기도 한다. 그럴 때, 차라리 죽는다면 이렇게 고통스럽지 않을 텐데라는 생각을 한 적이 몇 번 있다.


그렇게 토해내고 병원에 가서 수액을 맞고 진통제를 맞고 집에 돌아와 누워 있다 보면, 사람은 왜 살까라는 의문이 든다. 리본잡초도 갖은 시련을 겪으면서 잎이 타들어가고 병들어 떨어지고 뜯겨 나가면서 그런 생각을 했을까…


생존과 삶에 대해 ‘왜’라는 물음을 다는 것만큼 어리석은 생각이 있을까 싶지만, 그보다 더 발전적인 의제도 없다. 당신은 왜 사냐는 질문에 나는 무엇 무엇 때문에 산다고 콕 집어서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사실 대답을 못하는 게 정상이다. 왜 사냐는 질문처럼 고급지면서 정답이 수만 가지이기도 하고 또 하나이기도 한 질문도 없다. 그런 걸 우린 철학이라고 부르는 것 같다.


농담처럼 죽지 못해 산다고 말을 하는데, 우리는 모두 죽지 않았으니 산다. 도처에 도사리고 있는 죽음이 나에게 오지 않았기에 나는 오늘을 살아가고 있다. 삶에 이유는 없다. 그냥 살아지는 거고 살아가는 거다. 삶에 명분이나 목적이 붙는 순간 비장해진다. 나의 목숨과 삶은 온전히 내 것이 아닌 게 된다.


누구누구를 위한 삶. 무엇 무엇을 위한 삶은 사람을 매진하게 만들지만 결국은 허무해진다.

난 그저 태어났으니 살아야겠다. 사는 김에 재밌게 다양한 경험을 하면 좋겠다.


나의 2만 명이 넘는 아버지들과 리본잡초도 그 의무를 충실히 이행하셨을 거라 본다.


살아남기 위해 최선을 다한 결과, 인간세계의 발전에 힘을 보탰을 것이다. 그 힘은 길게 봤을 때, 우리를 더 나아가게 했을 것이고 더 많은 인간의 행복한 삶에 관여했을 것이다.


keyword
이전 05화내 말은 옳은가. 필요한가. 친절한가.